이 이야기는 픽션, 그러니까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픽션이 아니기도 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판타지라고 할 수도 있겠죠. 물론 이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제게 있긴 했습니다. 당시 제가 느낀 현실은 저에게 있어서는 다른 어떤 픽션, 판타지보다 더 가혹하고 매정해게 느껴졌지만 생각해 보면 이건 굉장히 평범하고 평범한 일이어서 지금 이 순간엔 어디선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반복되며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 정도가 아니라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싶은 일들도 많겠지요. 그렇기에 어쩌면 너무 평범해서 일상 같은 그 순간을 이야기로 쓰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쓰기로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일어나고 있을 일이기네 반드시 써야만 했습니다.
그 누군가 중에는 저와 같은 책상 앞의 ‘노동자’, 도움이 필요한 동물과 사람을 돕지만 사실 그 자신조차도 도움이 필요한 ‘활동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양육보호자’, 매일 제로 세팅하듯 당신의 자리를 산뜻하게 정리해서 마치 우렁각시 같은 ‘여사님’일지도, 또는 매일 아침 사무실 좀비들에게 피 같은 일용한 커피를 공급해 주는 ‘바리스타’ 일 수도 있습니다. 나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고 당신 옆의 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죠.
물론 누군가는 피식 웃을, 딱 정도일지도 아니면 화가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아무 재미도 없을지 모르죠.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영감을 받았던 ‘현실’은 ‘스토리텔링’의 문법과는 또 달라서 각 캐릭터의 역할과 운명, 행동이 정해져 있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욕망에 따라 그 어떤 캐릭터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무규칙적으로 움직일 따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현실이 영화 속 캐릭터 같은 것이었다면 필연적인 해피엔딩을 확신하며 신나게 달려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현실의 저는 매 순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아찔함을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이야기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 속에서만큼은 모두가 행복해지길, 이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할 ‘수국’이 마저 말이죠. 하지만 결과는 글을 쓰는 저도 아직은… 이란 상태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저는 그저 이야기를 따라서 쓸 뿐입니다. 이야기 속 모두가 부디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모두의 행복을 빌어주며 읽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거 다 이야기, 판타지, 픽션인 거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