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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Oct 05. 2024

5분만

1.

“5분만 일찍 태어났었더라도…”

그는 늘 그 5분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시간, 비용, 낭비에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마치 출판사라는 왕실의 비자발적 이단아 같다고 해리 왕자, 줄여서 ‘해리’라고 불렀다.


그의 근원적인 열등감은 그렇게 사소한 5분에서 시작되었다. 5분 늦게 태어나 장남이 되지 못했고 그 5분 때문에 좋소 서열에서 밀렸다. 그깟 5분 때문에 지난 몇 십 년을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살았다. 누구도 먼저 원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더 치열하게 스스로를 증명하길, 그래서 내가 더 나아요!!라고 외치길 원했다. 하지만 그깟 5분의 차이는 사실 굉장하고 또 엄청난 것이었다. 누구보다 간절히 증명할 기회 그 자체를 원했지만 그에게 기회란 좀처럼, 아니 아예 오지 않았다. 그 사실에 절망한 ‘비용의 왕자’ 해리는 누구보다 사소한 그것들에 더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6시, 그는 누구보다 회사에 일찍 왔다. 그리고 익숙한 듯 자차가 아닌 버스를 타고. 물론 돈이 없어서는 당연히 아니었다. 출근 후에는 깔끔히 정리된 책상에 앉아 실시간으로 찍히는 직원들의 출근 시간을 체크하기 위해 프로그램에 접속한다. 책상을 정갈하게 닦고 아끼는 식물에 물도 주고 해도, 나름의 루틴을 다 해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왠지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괘씸한 마음을 달래려 동양화 맞추기 게임을 열었다. 한 손에는 게임, 다른 한 손으론 출근부 확인. 멀티플레이를 하려니 영 게임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앗!! 똥 먹었네! 젠장!!!


이렇게 재수 없는 순간에도 출근하는 인간들이 없다.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반. 심심한 마음에 직원들 자리에 가본다. 요즘 것들은 역시 자리에 하나도 없고 그 요즘 것들을 기다리며 똥 먹는 개만 있다. 그렇게 개를 쳐다보고 있는데 개와 눈이 마주쳤다. 아, 정 주기 싫은 놈, 너나 쟤들이나. 흥!


2.

그도 처음부터 개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회사에 개가 사는 것이 싫을 뿐이었다. 그것도 그의 개도, 회사 개도 아니고 단 5분 먼저 태어난 형의 개가 아닌가. 단지 형의 개가 회사에 사는 꼬라지가, 그래서 그 케어를 해야 되는, 그 개의 사료까지 형 대신 구매해 줘야 하는 자신의 꼬라지가 마음에 안 들뿐이었다. 대표인 형이 개를 어떻게 대하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한 뱃속에 나온 형제인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도 딱히 다르지 않았으니. 그저 그에게 추가된 업무 하나가 개 케어라는 사실이 화가 날 뿐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그놈의 단 5분 때문이라니…


3.

그는 이른바 서자도, 서얼도 아닌 그저 둘째, 그것도 단 5분 늦게 태어난 죄로 쌍둥이임에도 장남, 장손의 자리에서 배제된 자였다. 어른들에게는 그저 둘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 고로 이 좋소에서 역할 하나 준 것으로 만족하면 될 존재였다. 모든 가능성 자체에서 배제된 그는 이 상황의 자연스러움에 화가 났다. 그래서 더더욱 현실적이고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집착했다. 한마디로 손해 보고는 못 살아. 그의 그런 집착은 또 의외로 그를 눈여겨본 집안 어르신들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했다. ‘아, 저 놈에게 회사를 안살림을 맡아서 시키면 되겠다. 지 형이랑 잘~~ 합 맞춰서 하면 회사 말아먹진 않겠지. 회사 적당히 안 망하게 잘 굴려서 나도 좀 떼주고. 망나니 장손 쉐키 긴장도 좀 타게 말이야’라고.


4.

그는 그렇게 이 가‘족’회사에 들어온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형과는 다른 포지션을 확실히 점유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너무 생각만 했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결재 서류를 올릴 때 그는 늘 “아, 그런 건 모르겠고~~”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리고 너무 당당하게 무식했다. 때론 무식은 무례함을 동반하기도 한 법인데 그랬기에는 그는 아주 당당했고 또 무례했으며 모든 일을 알고 싶지 않아 했다. 계속 모른 채로 있겠다… 어차피 알아도 내 거 되는 거 아니지 않은가. 그는 돈 5백 원이라도 아낄 수 있다면, 아끼고 아껴서 내 뽀껫또에 들어오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숫자 외의 다른 모든 것을 모른 채로 형과의 차별점을 두고 싶어 했던 그였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도 형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호기심보다는 숫자, 숫자보다는 내 뽀껫또, 뽀껫또 안의 ‘무엇’,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내 안의 그 5분’이라는 열등감 때론 열패감, 그 모든 것에 집착하는 것이 영락없이 닮았다. 무례와 무식의 이 쌍둥이 형제는 극렬할 정도로 서로를 미워했지만 그만큼 많이 닮았고 그래서 하나의 단어로 묶여 불리기도 했다. ‘해리성 가오 증후군’. 극렬하게 다른 듯했지만 이들은 ‘비용’이라는 ‘공동의 목표’ 앞에서는 누구보다 한마음 한뜻으로 마음속 불을 활활 지펴대며 그 ‘비용’을 지켜냈다. 그리고 소중히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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