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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Oct 06. 2024

김슬기

1.

그날도 대표 김씨는 열심히 직원들을 조졌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씩 가지는 물타임, 매일 아침 랜덤으로 한 명 혹은 두 명씩 물을 뜨러 오는 사람들을 불러 조졌다. 아닌 척했지만 정수기를 일부러 그의 방 옆에 둔 것도 이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입장에서는 ’물타임‘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눈 것이고, ’업계 선배‘로서, ’대표‘로서 할 말을 소신 있게 전달한 것일 뿐 전혀 조지는 행위는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사람을 ‘꼰대’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그는 잘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그런 존경을 못 받는 ‘꼰대’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 하는 그였다.


2.

오전 물타임이 끝난 후 혼자 책상에 앉은 그는 전화기 앞에 붙어 있는 직원들의 이름을 훑어봤다. 한 명씩 보다 보니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김슬기… 그래, 김슬기랑은 물타임을 자주 안 가졌었지. 돌아가면서 정기적으로 한 번씩 하는데 그런데 왜 그랬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오전 시간에 함부로 물을 마시려는 시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랬다가는 한두 시간은 그냥 날리는 물타임에 잡히게 된다는 것을. 효율성, 그중에서도 시간의 효율성을 가장 중요시했던 그녀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이 ’물타임’의 중요성은 눈치 빠른 그녀 조차, 아니 눈치가 오지게 없었던 그녀만 모르고 있었다. 이 한두 시간이 가져다줬던 회사 안에서의 안정감을 다른 직원들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만 몰랐다.


3.

김슬기, 김슬기…

김씨는 이전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김슬기’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체 ‘김슬기’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길래 다른 이들은 마땅히 가지는 이 ‘물타임’을 가지지 않는 것인지, 어딘지 묘하게~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분위기는 대체 뭔지 되짚어 보기로 했다.


일단 ‘김슬기’는 존나게 말이 없었다. 잘 웃지도 않았다. 어쩌다 친히 그가 먼저 말을 걸어도 ‘네, 아니요’ 단답스타일로 답을 할 뿐이었다. 그의 고급 ‘유우머’에 잘 웃어주는 법도 없었다. 어쩌다 웃어도 ‘…헤… 헤…….=_=‘ 하고 억지로 웃는 얼굴에 그 자신이 민망해서 피하기 일쑤였다. 먹는 것조차 맞지 않았다. 하루에 단 한 끼도 정성 없는 밥은, 맛없는 못 먹는 그였지만 김슬기랑 밥을 먹으면 어쩐지 밥맛이 없어지는 게 체할 것 같았다. 한마디로 김슬기는 있던 밥맛도 떨어지게 하는 그와는 오지게 안 맞는 타입이었다.

그럼에도 우직하기는 또 오지게 우직해서 그가 시키는 일을 곧잘 해냈다. 다른 이들이 불평불만을 하면서 뭔가를 해 올 때도 그녀만이 아무 말없이 그냥 해 왔다. 그가 흔쾌히 오케이 할 때까지. 그 속은 알 수 없어서 불편하긴 했지만 그 점만 빼면 딱히 불편한 것도 없고, 알아서 그의 손과 눈이 되어 부려먹기 딱 좋은 소 같은 녀석이었다. ‘그래, 잘만 부려먹으면 됐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그녀를 부려 먹었다.


4.

그렇게 그날도 열심히 직원을 조지고 있었다. ‘너넨 참 소울이 없구나. 이래서 책을 만들겠니?’ 직원들의 소울까지 챙겨주는 멋진 대표라는 스스로 포지셔닝을 해대며 사실은 직원들을 조지고 있었다. 직원들을 조질 때 그들의 표정은 참 그들의 성격만큼 다양했다. 사람은 다 달랐지만 그 순간마다 한 가지 기분이 좋았던 것은 그들의 절망 어린 표정이었다. 절망이라기 보단 대표와 직원이라는 고용관계에서 오는 권력의 특수성, 그러니까 권력의 그림자 같은 한 면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권력의 단맛을 맛보는 순간마다 즐거움을 느꼈다. 한참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하나 왔다.


“어이, 김대표! 나 **협회에서 일하는 거 알지? 거기서 일 년에 한 번씩 주는 상 있잖아. 어~ 그래 맞아 맞아! 축하해! 거기 직원 중에 ‘김슬기’라고 있지? 그 직원 이번에 상 받게 생겼어~ 이 상 일 년에 딱 한 명만 주는 거 알지? 축하해!! 내가 자네 회사 직원이라고 더 신경 써서 봤다구~~ 회사 경사 났네”


응? 누구? 김슬기?……… 김슬기! 그 소 같이 일하지만 속 알 수 없는 싸가지 없는 애? 이 전화를 받기 전까지 그녀에 대한 평가의 방점은 싸가지 없지만 ‘소 같이 우직한 녀석’이었지만 이 전화 이후로 소 같이 일하지만 ‘속 알 수 없는 싸가지 없는 애’로 방점이 바뀌어 버렸다.


그는 생각했다. ‘책수저인 나도 못 한 걸 그 싸가지 김슬기가 받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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