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이 그렇다. 모든 일에는 ‘근본’이란 것이 있고 그 ‘근본’은 불변하고 때론 타고나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그는 동생의 불만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불만이 있다는 것 자체는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그렇게 꼬우면 먼저 태어났어야지. 단 5분이라도.
쌍둥이 동생과 그는 환상의 콤비를 이루기도 했지만 어쩐지 안 맞는 부분이 많았다. ‘비용의 사유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동생과 그는 본질적으로 다른 목표를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가오’가 중요했다. 자신이 가진 그 ‘근본’에 ‘정당성’을 더하기 위해서라도 가오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었기에. 그런데 그 ‘가오’라는 게 생각보다 갖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들고 나온 출판계의 책수저. 누구나 이름을 대면 한 번에 알 정도의 회사였지만 이 회사는 어쩐지 그가 생각하는 격, 그러니까 가오가 따라주지 않았다. 동생은 매출만 나오면 어찌 돼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정확히는 조금만 직원들을 조지면 뭐라도 될 것 같았다. 회사의 ‘격’과 ‘가오’ 그리고 ‘매출’을 높이기 위해선 대표인 그 ‘자신의 격’과 ‘가오’도 올려야 된다고 생각해야 마땅했지만 그는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왜? 나는 타고난 ‘근본 있는 책수저’니까. 근본 없이 나의 근본에 숟가락 얻으려는 직원들, 니들만 잘하면 돼…라고
2.
직원들을 조져서 그 직원들이 가진 능력을 짜내고 싶었던 그는 그 ‘조지기’에도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브랜딩’이란 이름으로 멀쩡한 로고를 뜯어고치고 의미를 부여해 끼워넣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를 넣으면 ‘간지’가 있어 보일까. 어떤 ‘슬로건’을 내걸어야 직원들이 내 말을 잘 들을까.
그는 깊은 고민을 하다 회사 홈페이지 구석에 쓰여있던 ’인문‘이라는 단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인문… 사람 인, 글월 문. 이걸 조금 바꿔서 ’문답‘의 문, 그러니까 질문하고 배운다로 바꿔보면 어떨까. 그는 순식간에 슬로건을 만들어내고는 스스로 만족했다.
’인간에게서 배우고, 그 배움을 실천합니다 ‘
’내가 만들었어도 참 멋있군‘이라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이를 발표한다.
“앞으로 우리의 슬로건은 이것입니다. ’인간에게서 배우고, 그 배움을 실천합니다‘
이 슬로건에 맞는 기획을 팡팡 해주세요. 물론 많이 팔려야 하는 것도 알지? 안 팔리면 의미 없다~~. 흐흐”
그의 호탕한 웃음 아래로 직원들의 눈빛이 빠르게 오갔다. 휴… 여기서 ‘인간’은 누구인가. 혹시 ‘김씨 일가’ 중 한 사람인가. 그렇다면 그 한 사람을 저 사람??? 직원들은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