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개가 싫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에서 개를 키우는 게 싫다. 일단 일하는 곳에서 왜 개를 키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일한 그 18년의 세월 동안 다닌 회사 중 많은 곳에서 개를 키웠다. 환경이 어떻든 상관없었다. 개는 익숙한 듯 사무실에서 똥을 싸고 직원들은 모닝커피를 마시며 똥을 치웠다. 직원들 화장실에서 목욕을 시켰고, 개도 시원하게 사무실에서 털을 털었다. 그동안 나는 그 개님이 내가 열심히 정리해 둔 자료를 씹어 먹던 그 위에 쉬를 하던 상관하지 않았었다. 애초에 개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고 이 또한 월급에 포함된 것이라면 어느 정도 감내해야 되는 일로 치부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걸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일이었는데. 이렇게 내 삶의 각도가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2.
개의 원래 이름은 ‘국수’다. 그렇다. ‘잔치국수’ 할 때 ‘국수’. ‘누들(noodle)’. 나라를 지킨다… 도 아니고 뭔가를 수호한다…는 것도 아니고 식사류의 한 종류. 같은 먹는 것이라도 조금 귀엽게 들릴 수 있는 바닐라, 초코, 민트 다 있는데 ’국수‘… 이유는 단순했다. 김씨의 최애 식사 메뉴… 누군가는 개를 식구, 그러니까 밥을 같이 먹는 가족으로 상정하는데, 그 식사 자리에 올라가는 메뉴로 개 이름을 정한 이유는 대체 뭘까. ‘아휴, 정 주지 말아야지. 이름을 국수로 하건 수국이로 하건…‘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번 머릿속에 저건 이름으론 아니다 싶은데… 하는 생각이 들자 자꾸만 다른 이름을 혼자 마음속으로 하나씩 대입해 보기로 했다. 이것저것 다 마음에 안 들어서 고민하다 국수, 국수, 국수….. 수국? 수국! 그래 수국이! 저렇게 하얗고 꽃같이 예쁜 아이, 이름 순서를 바꿔서 혹시 팔자라도 바꿀 수 있으면 언젠가 주인이라도 바뀌는 기적이 생기지 않을까. 나는 기적을 염원하며 국수의 이름을 수국이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일단 나 혼자.
3.
얄궂게도 수국이는 사람을 참 좋아했다. 그렇게 정을 안 주려고 다짐했던 나조차도 결국 정을 주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가졌다. 그런데 그런 수국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주인 김씨와 그의 직원들이자 수국이의 식사와 응가, 산책을 도맡아 하는 집사들, 그리고 주인 김씨의 방 창문에서 내려다보면 간간이 보이는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 그렇기에 늘 창문 밖을 바라보는 수국이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면 어쩐지 외로운 뒷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도 저렇게 외로울 수 있구나. 평생 개를 키워본 적이 없는 나는 수국이의 뒷모습에서 익숙한 내 모습을 봤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외로웠던 적이 있었는데.
4.
수국이를 데려오기로 한 건 주인 김씨의 결정이었다. 어느날 김씨는 말했다. “내가 개 한 마리를 데려 올 건데. 돈 주고 이미 예약했거등~ 이거에 반대하는 사람 손~”
아무도 손을 들 수 없었다. 그렇게 수국이와 수국이의 케어는 갑자기 회사사람들의 업무 리스트에 올라가게 되었다. 대부분 개를 키운 경험이 없던 예비 집사들이었기에 김씨는 전문가를 한 명 불렀다. 티브이에서 보는 개훈련사 그 정도 되려나. 훈련사는 수국이와 김씨, 그리고 그 외 집사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가르치는 듯, 질문하는 듯 솔루션을 계속했다. 그렇게 그는 한 시간쯤 솔루션인지 교육인지 모를 것을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 개를 왜 키우시는 거죠? 계속 말씀드렸다시피 이 환경은 개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에요. 집도 아니고 마당이 있는 거나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바닥은 업무 공간이니까 맨질맨질해서 강아지 무릎에도 안 좋고요. 게다가 집에 갈 때는 그냥 두고 가실 거라면서요. 그런데도 개를 여기서 키우시려고요?”
예비 집사들이 하고 싶은 말을 훈련사가 대신 시원하게 물어봐 줬다. 집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씨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는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직원들, 아니 집사들은 이에 크게 실망한 눈치였다. 개를 케어하는 것도 문제지만 개를 안 키워봤어도 개가 느낄 감정에 대해서 충분히 상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모르면 몰랐지 뻔히 아는 감정을 무시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국이는 우리의 가족 아닌 가족, 직장 동료, 주인님 미니어처가 되었다.
5.
펫샵에서 아기일 때 이곳에 온 수국이는 어린 데다가 우수한 종자의 콜라보로 남다른 미모와 귀여움을 뽐냈다. 그러나 서서히 시간이 갈수록 그 미모가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귀여운 건 한 때라는 진리가 개에게도 통한 것이다. 사실 애초부터 주인 김씨는 수국이를 집에 데려가지 않았다. 그건 밤 시간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주 어렸던 수국이는 모든 생활을 회사에서 했다. 직원들이 퇴근하는 6시가 되면 작은 스탠드 불에 의지해 혼자 있었다. 그 흔한 애견용 홈캠도 없었다. 수국이는 카메라로도 지켜보는 이 없이 긴 밤을 창밖만 내려다보면 사람을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다 새벽이 되어 회사의 문이 열리면 그렇게 사람을 찾아 뛰어나갔다. 뛰쳐나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도망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침마다 도망가는 수국이를 찾아 집사들이 함께 온 동네를 뛰었다. 회사는 마동구의 대부분의 출판사가 그렇듯 가정집 사이사이에 있었는데, 당연히 아침마다 개모차를 끌고 동네를 산책하던 개엄마, 아빠들이 많이 있었고 이들은 수국이의 아침 런(run)을 바라볼 때마다 한 마디씩 했다. “개가 너무 불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