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생일을 맞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해맑기만 했던 어린 시절은 모든 것이, 모든 만남이 즐거웠다. 하지만 파워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였을까. 새로운 만남은 낯선 만남을 넘어서 무서운 만남이 되었다.
이유는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사람이 무서워졌다.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들고 눈을 쳐다보고 말하는 게 어려워졌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큰 의미부여를 했고,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를 받았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었던 나는 당연히 그 말들을 곡해했고 더더욱 상처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이 없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말만 잃게 된 것은 아니었다. 말과 함께, 내 감정, 내 분노, 내 슬픔, 내 기쁨을 표출하는 것도 어려운 사람이 돼 버렸다.
그리고 표류하듯 삶을 살았다. 그건 같이 사는 가족들에게 커다란 마음의 짐도 가져다준 꼴이 됐다.
어느 날, 아빠는 내게 선자리가 들어왔다는 소리를 듣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애는 좀 못나서 그런 자리 못 나갈 거야”
사실 그 말 자체에 충격을 받았다. 아빠가 날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내 감정의 못남까지는 다 이해 또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었다.
아빠의 그 말 자체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하루를 꼬박 아버지를 원망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빠다 나를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빠는 이제까지 본 사람 중에 날 가장 사랑한 사람이었는데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그게 말로 튀어나오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의 답은 쉽게 찾을 수 없었지만 한 가지 분명했던 것은 내가 내 삶을 사랑하지 않고 내 자신도 사랑하지 않았고 믿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생활 속에서도 잘 나타났다. 그때의 나에게 물어보았을 때 나는 당연히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당연히 자신은 없었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일들을 그 일들만 하면서 살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에게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라는 생각으로 나는 일단 눈앞의 삶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어쩌면 나도 아빠도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또 그 하루들을 쌓아가다 나는 결혼을 하게 됐고 아이 엄마가 됐다.
아이 엄마가 되기로 한 날부터 엄마가 된 후까지 수많은 감정의 파도를 겪었다. 다른 사람들은 ‘원래 그 시기에는 그래’라던가 ‘원래 산후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와’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지만 사실은 나 자신이 먼저 알고 있었다. 무너지듯 서있던 이 감정의 벽을 더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또 한 번 나는 마치 게임 속 캐릭터의 하나가 된 듯 쏟아지는 내 감정을 하나씩 쳐내기 시작했다. 치열하고 또 치열하게.
그동안 외면했던 모든 감정이 알 수 없는 모든 형태로 쏟아져 나왔다. 한동안은 남 탓도 하고 싸움도 하고 때론 그 감정 앞에서 실패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쏟아지는 감정에 휩쓸려 포기한다면 거기에 떠내려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내 아이와 내 남편, 가족이 걸려 있었다. 더 이상 미룰 수도 포기할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었다. 나를 때론 막고 좌절시킨 이 감정의 파도인지 벽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을 없애버려야 했다. 그래야 우리 가족이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치열했던 딱 3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오늘 난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웃었다.
더 이상 사람의 말을 곡해하지도 않고 타인과의 그리고 지인과의 만남이 낯설지 않고 늘 새롭게 느껴진다.
치열했던 나의 내면과의 전투는 그렇게 나를 사람이 낯선 사람에서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도 설레는 사람이 되게도 만들어 주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끝끝내 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우리 딸 덕분이었다. 우리 딸에게만큼은 나와 같은 고통받는 내면을 물려줄 수 없었다. 훗날 아이가 엄마를 떠올릴 때 못난 사람으로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최선을 다했고 누구보다 자신(나와 딸 모두 포람) 사랑했고 그것을 어려워했지만 끝끝내 표현해서 나(딸)에게 전달하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나는 지금 그 한 발을 떼기 시작했고, 아직까진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온 나 자신에게 자랑스럽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36개월 동안 나의 곁을 지켜준 우리 딸과 남편에게도, 나의 모든 것을 외면하고 살았던 과거의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고 그럼에도 그 벽인지 파도인지를 대면할 수 있게 해 줬던 모든 순간과 인연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오늘은 우리 딸의 3번째 생일이다. 정말 감사하고 사랑하는 딸이다.
쑥쑥아, 고맙다. 네 덕에 살았다.
쑥쑥이 엄마여서 너무 행복하다.
고맙다.
덧.
내게 “우리 딸은 못나서…”라고 말했던 아빠는 누구보다도 나를 가장 사랑하고 사랑했던 첫 번째 사람이었는데, 표현은 늘 하지 못하던 분이셨다.
그런 아빠가 내가 낸 책을 보고 이렇게 문자를 보내왔다.
“경민아 그동안 고생 많이 했네
아빠가 책을 읽고 보니 그동안 혼자서
어려운 과정을 잘 이겨낸 것 같아
아빠가 미안하구나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라
고맙다”
아빠란 사람이 이 문자를 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빠도 부디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끝내는 이겨내길 그리고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길,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사랑한다 말할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나도 그 말을 듣고 싶고,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그랬듯 아빠도 이제 한 발을 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