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키즈 카페 가 봤어?”

by 김경민

아이는 사회화가 완성되지 않은 인간이라 많은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곤 하지만 막상 키워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어른보다 많은 것을 알고 기억하고 관찰하고 또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누가 자신에게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는지 그 정도는 어떤지는 누구보다도 확실히 알고 있다.


아이가 어릴 때, 나의 아빠는 언제나 그랬듯 원웨이로 사랑을 표현했다. 받는 사람의 리액션이나 감정 따위는 상관없는. 그런 점은 내가 어릴 때도 불만이었기에 당연히 아이에게도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상당히 불만이었다. 그러나 웬걸. 아이는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표현 방식이 다른 사람과 다를 수도 있었지만, 그 표현 방식의 언어랄까 그런 것을 이해한 뒤로는 늘 할아버지를 찾고 할아버지의 목소리만 들려도 설레 했다.


주는 사랑만큼 돌아오는 게 꼭 같지만은 않은 어른의 세계에 사는 나로서는 아이의 그런 변화도 상당히 신선했다. 아이는 사랑을 주면 꼭 사랑을 돌려줬다. 마치 수학처럼.


아이는 눈치도 빨라 새로운 곳에 가면 언제나 탐색의 시간을 가졌다.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이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곳인가. 이곳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가’ 등등. 그런 탐색의 시간과 적응의 시간을 가지고 서서히 그리고 자신만의 속도로 그 장소를 익혀갔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리 가족이 갈 수 있는 곳은 많은 제한이 생겼다. 아이를 케어할 수 있고 아이가 있어도 주변에 불편을 초래하지 않으며 설령 그런 일이 생긴다면 충분히 양해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우선적으로 선택했다. 누구도 그렇게 시키지는 않았고 그것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여러 생각이 있었지만 일단 움직여야 하는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우리 부부도 알게 모르게 눈치를 보는 데 익숙해졌다.


그런 아이가 맘 놓고 가는 곳이 있다. 바로 키즈 카페다. 아이는 키즈 카페가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 그리고 자유를 맘껏 느끼고 있다. 한동안 감기에 걸려 키즈 카페를 가지 않았더니 할머니에게 “할머니 키즈 카페 가봤어?”라고 은근히 가자는 말을 할 정도였다.

아이는 자신이 간 키즈 카페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응. 거기 홈뿌라스 앞에 있던 거기” “공룡 앞에 있던 데” “유치원에서 간 데” “물고기 있는 데” 이런 식으로 말이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감기에 걸린 김에 등원도 계속 거부할 생각이었나 본데, 유치원에서 키즈 카페를 간다니 생각이 살짝 바뀐 듯했다. 아이는 영 탐탁지는 않지만 연휴가 끝나면 유치원에서 등원을 할 모양이다.

키즈 카페. 말로만 들어도 설레는 그곳. 그곳에 가면 아무런 눈치 안 보고 잔소리도 안 듣고 맘껏 뛰어놓고 갖고 놀 수 있다.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따뜻한 눈빛도 받을 수 있다. 비록 그것이 ‘키즈 카페’라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제한된 영역이라도 아이는 맘껏 그리고 자유롭게 뛰놀고 싶나 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은 아이도 많은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가 느끼고 있다는 것도 부모도 알고 있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들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어딜 가도 조심조심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비록 그 노력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고 일부 모습을 보고 눈살이 찌푸려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조금의 여유의 시선으로 바라봐 준다면 우리의 아이들도 바뀔 수 있다. 아이는 느려도 성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아이가 그리고 아이들이 굳이 키즈 카페에 가지 않아도 세상을 좀 더 편안하게 느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준다면 가능한 일이다. 물론 부모들도 그에 맞춰 더 노력할 것이다. 그런 부모와 아이들의 노력을 사회가 좀 더 지켜봐 주고 어루만져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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