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중학생에게 친구란
발 없는 ‘말’은 달려가고 날개 달린 ‘소문’은 세상을 온통 휘저으며 날아간다. 어린 시절 나는 새처럼 달아나는 듯 날아가는 날개 달린 ‘소문’을 봤었다. 그건 처음엔 한 두 마리였으나 점점 떼를 이뤄 날아다니면서 여기저기 상처를 줬다. 이건 그 ‘소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내가 초등학교 그러니까 국민학교 1학년일 때는 키가 엄청 컸었다. 남녀를 통틀어서 반에서 가장 컸고 그냥 큰 정도가 아니라 머리 하나 정도는 더 있을 정도로. 그런데 그런 나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큰 친구가 반에 또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던 건 그 친구는 맨 앞에 그것도 교탁 앞자리에 앉았고 나는 맨 뒤에 앉았단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종례 시간쯤 선생님이 그날의 숙제 등등을 적어 주고 있을 때 그 친구의 자리로 와 친구의 것을 먼저 써주고 내 것을 썼다. 그리고 같이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동안 친구와 별다른 말은 없었다. 친구는 친구대로 나는 나대로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 하고 궁금한 게 생기면 보고 가고 그 정도였다. 그렇게 집 근처에 도착하면 내 집인 마냥 그 친구에 집에 들어가 그날 있었던 일을 친구의 엄마, 아줌마에게 말해줬다. 아줌마는 내게 간식을 내어 주었고 나는 그 간식을 먹으며 친구의 방에서 놀았다. 같이 무언가를 한 기억은 딱히 없지만 그 친구의 방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이것저것 말한 것은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할 게 느껴질 법도 했는데, 나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런가 보다~ 그 정도의 느낌만 있었다. 물어도 딱히 돌아오지 않는 답변만 가득한 대화에서도 나름의 대화가 있었겠거니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어린 나라고 해도 그 상황을 이상하게 여겼을 텐데 전혀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이후에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아줌마는 그 상황이 매우 고마웠었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의 공식적인 칭찬 타임이 있었다. '나의 노고를 치하 하노라' 같은… 그날 이후 친구의 노트는 한 동안 다른 친구가 써줬고 친구의 하굣길도 여럿이 동반해서 갔다. 친구는 그 상황에 대해 말이 없었고 나를 찾지도 않았다. 친구가 나를 찾지 않았다는 것에 나는 묘하게 상처를 입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하굣길의 친구들도 점점 줄어 다시 친구와 나, 둘이 가는 하굣길이 되었지만 다시 돌아간 일상에도 변함이 없었지만 그날 이후의 시간들은 그전과는 다르게 묘한 균열이 일었었다. 하지만 나는 곧 2학년이 되었고 친구와 다른 반을 배정받았다.
친구는 요즘 말로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친구였다. 앞서 말한 근거 없는 날아다니는 소문에 의하면, 친구가 키가 큰 것은 우리보다 세 살이나 많기 때문이고, 친구가 그 병에 걸린 것은 아줌마가 임신했을 때 그 사실을 모르고 감기약을 많이 복용해서이며, 세 살이 많음에도 일반(?) 학교에 온 것은 아줌마가 일반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우겨서라는 것이었다. 난 그 말을 다 믿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하는 말을 주워 담아 똑같이 말하고 다녔다. 그날의 나를 외면한 친구가 생각나기도 했고 그냥 그렇게 모른 척하고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2학년인 주제에.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 우리는 같은 중학교에 가게 되었다. 교복을 입고 성장했지만 아이들은 또 그 ‘소문’들을 입에서 입으로 날려 보냈다. 물론 그 무리에 나도 있었다. 그 사이 친구는 수영에 재능을 보여 여러 상을 휩쓸었다. 단상에 올라 상을 받는 모습이 각 반으로 방송되고 친구는 또다시 1학년 때와 비슷한 상황이 되어 친구들을 몰고 다녔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자리에 나는 없었다. '나를 잊었겠거니' 생각하고 나도 더 다가가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또 흘렀다.
중학교 3학년의 여름 방학, 나는 방학 기간에 한 번씩 나와서 하는 청소 당번이 되어 사람 없는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길고 긴 복도를 걸어 다니고 있는데, 저 멀리 키 큰 사람이 한 명 보였다. 친구였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걸어오고 있었다. 서로가 가까워졌고 아무 말 없이 가겠거니 싶었는데, 친구가 한 마디를 하고 나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부끄러움에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
“안녕, 경민아. 오랜만이다”
아무 표정 없이, 눈 마주침도 없이 그 말 한마디만 남기고 친구는 갈 길을 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이 그냥 한참을 서 있었다. 쫓아갈 수도 없었다. 그간 나를 잊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날아다니는 ‘소문’을 주워 담아 나도 하늘에 날려버린 그런 무책임함이 떠올랐다. 나와 같은 방식으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나를 부르지 않았다고 우리가 친구가 아닌 건 아니었는데, 나는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는 여전히 초등학교 1학년의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불러 주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눈물이 안 나온다.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철없었던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하기엔 내 마음속에 뭐가 걸린 것처럼. 그렇게 항상 어딘가에 걸려있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누구나 인사말처럼 물어본다.
“<우영우> 보세요?”
그럼 나는
“응. 화제작이니까 보긴 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잘 모르겠다는 말로 얼렁뚱땅 넘어갔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봄날의 햇살’ 같지도, ‘권모술수’를 부리는 사람조차 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할 수 없었다. 친구도 그저 자폐스펙트럼이 있을 뿐이었지만 ‘수영’이라는 재능을 보이기 전까지는 그저 학교에 꾸역꾸역 밀어 넣은 키 크고 나이 많은 느린 아이였을 뿐이다.
<우영우>는 좋은 드라마이지만 과연 현실의 ‘우영우’들을 저렇게 잘 소통하고 이해해 주는 친구들이 많았을까. 나처럼 오해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미워하지 않았지만 미워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없었을까.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래서 그 드라마는 편하게 재밌게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드라마는 그날의 기억을 자꾸 떠올리게 한다. 아무도 칭찬하지 않아서, 그래서 둘이 집에 돌아가서 같이 함께 창밖을 바라봤던 기억.
다시 친구를 만난다면 난 사과를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못할 것 같다. 중학교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처럼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은 하나 있다.
그저 같이 창밖을 바라보는 것. 오늘처럼 오랜만에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에 날아다니던 새를 바라봤던 것처럼. 진짜 새를 같이 바라보고 있는 것. 그걸 같이 하고 싶다. 친구는 지금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