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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Sep 01. 2022

한라산에 오르며 우리 인연의 끝을 생각했다

29살, 첫 사수와 안녕을 고하다

10년 전 어느 날의 나는 제주도 한라산에 있었다. 총 등반 예상 시간이 8시간이라는 안내 책자를 보고 의심하며 출발한 길이었다. 정확히는 아침 8시. 적어도 두 시간 반 안에는 1차 코스를 통과하고 또 그만큼의 시간을 쉬지 않고 가야 정상인 백록담까지 갈 수 있었다. 하산 시간을 고려해 등반 시간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백록담을 안 보고 갈 순 없지’라며 호기롭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비교적 평탄한 코스라고 알려졌던 한라산 등반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평소에 운동은 잘 안 했지만 체력만큼은 자신 있었던 나는, 평탄했지만 편안하지만은 않은 그 코스를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다 등산로 사이사이의 돌을 밟으며 걷다 그 돌들이 내 발바닥을 뚫고 나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로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 발이 아무리 아파도 정해진 시간까지는 가야 하는데 앞을 보니 너무 아득했다. 이러다 백록담 근처도 못한 채 힘은 힘대로 들이고 하산당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나는 사실 마음이 복잡한 상태였다. 때마침 퇴사를 결정하고 빠르게 이직을 결정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입사하기로 한 회사도 나도 서로에게 확신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입사가 결정된 것은 선배 때문 혹은 덕분이었다. 나와 회사의 연결 고리는 전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선배. 부족한 경력의 나였지만 선배가 같이 하면 할 수 있겠다고 회사도 나도 생각했다.

어딜 가나 사수 없이  회사 생활을 버텨온 내게 선배는 한줄기 빛 같은 사람이었다. 자신 있게 내 인생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자신감도 없었기에 누군가 한 명쯤은 멘토 같은 사람이 나타나 나에게 조언을 해주길 바래다. 어쩌면 선배는 내 멘토가 될지도 몰라라고 나 혼자 멋대로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퇴사를 결정하고 그동안 함께한 직원들과 회포를 푸는 시간을 가졌다. 섭섭함은 조금도 없이 그저 시원하기만 한 나와 달리 선배의 표정은 어두웠다. 옆에서 다른 직원이 선배에게 말을 했다.

“너나 잘하지. 뭘 데려간다고 그래”

그 순간, 선배가 안은 부담감을 살짝 느끼게 되었다. 우리 둘이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만 단순히 생각했지만 현실은 어쩌면 선배의 ‘허세반 진심반’으로 한 말을 눈치 없이 ‘진심 100퍼센트’로 믿고 의지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에 말없이 선배는 술만 마셨고, 그날의 일은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다. 이렇게 시작도 하기 전부터 삐걱거리는 조짐을 보이는 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안고 간 한라산. 그 초입에서 바라본 백록담은 나의 미래처럼 멀고 아득하게만 보였다. 백록담을 감싸고 있는 구름만 쳐다보면 한 발도 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정해진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까지는 가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명백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걸었고 또 걸었다. 앞이 너무 막막할 때면 그냥 내 발만 보았다. 발이 움직였고 발밑의 풍경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렇게 숨은 그림 찾듯 내 발만 보면서 앞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백록담을 보게 되었다. 풍경을 즐길 새로 없이 세찬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데 갑자기 방송이 나왔다.

“하산하세요. 하산 시간입니다”

이제 방금 올라왔는데, 하산하라니. 내려가는 길은 괜찮겠지 했는데 전혀 안 괜찮았다. 여전히 돌들은 내 발을 뚫다 못해 이제는 심장까지 뚫을 기세였고 그 기세에도 내려가야 했다. 아무래 관광지라 해도 산은 산이기에, 여행 갔다가 산에 고립될 수는 없지 않으니 올라올 때보다도 더 절박하게 살기 위해 내려갔다. 올라가는 데는 세 시간이 채 안 걸렸는데 내려올 때는 네 시간이 넘게 걸렸다.


산을 내려왔고 그 사이 주변은 어두워졌다. 나는 바로 입사하기로 했던 회사에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입사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회사는 황당해했다. “왜요? 이유가 뭐죠”

나는 쉽사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유를 만들자면 여럿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산을 오르며 생각했다. 이런 찜찜한 시작할 자신이 있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그 ‘아니’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용기가 없어서 지금까지 질질 끌어왔던 것이 아닌가. 그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 진행될 앞으로의 모든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이 등산을 하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 발 밑의 돌이 내 발을 뚫는 듯 고통을 주는 것처럼 이 질문들이 머릿속까지 찔러대듯 물어보는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런 내 마음을 친절히 설명할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무례하게도 이유는 말할 수 없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의 그런 무례함으로 선배는 많은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몇 년이 지나 이제 그 기억도 흐릿해질 무렵 선배는 한 통의 메일을 보냈다. 선배는 내가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면서 메일을 보냈다. 그건 마치 내게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 같았지만 난 차마 그 손을 다시 잡을 수 없었다. 미안하고 또 미안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미 인연이 다한 것 같은 느낌은 돌이킬 수 없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었고 정해진 시간 내로 가야 할 곳이 있었던 것처럼. 빨리 판단하지 해서 몸부터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면  정상에도 가보지 못한 채 애써 지금껏 온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그때의 한라산 등산처럼 말이다.

선배를 생각하면 그날의 등산이 생각난다. 내가 선배를 내 이상향의 멘토로 설정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관계가 지금과는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등반에서 함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아쉽지만 우리가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진즉에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한라산에서 본 내 발 두 개가 움직이는 모습. 다른 것은 보지 말고 내 발만 보자. 그 발 모습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 내 바람에 인연을 가두지 말고 내 인생을, 내 인생부터 제대로 한발 한발 걷자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했어도 내 발로 오롯이 서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직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날의 교훈이, 그 인연의 교훈은 내 안에 남아있다. 이래저래 미안하고 고마운 선배님이다. 고맙습니다. 그땐 너무 철이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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