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다크한 깐족이를 웃게해 준 유쾌한 친구
다크 포스(Dark Force). 영화 <스타워즈>에는 언제나 포스(force)가 함께 하지만 늘 브라이트(bright)한 포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를 장악하는 정서는 다크한 포스다. 영화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하지만 사실 달갑지만은 않아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 이 다크 포스인 것이다.
사실 이 ‘다크 포스’는 남편이 내게 붙여준 별명이기도 했다. 사시사철 위아래 검정 옷, 검정 가방, 검정 아이템들도 뒤덮고 다니는 모양이 영화 속 악당들 모습과 비슷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즐거운 별명은 아니었지만 사실 나를 가장 잘 표현한 별명이라, 억울하지만 나름 수용한 것이었다.
<스타워즈>의 다크 포스처럼 어렸을 때부터 나의 내면에는 다크한 포스가 흘렀다. 가장 어두운 곳은 또 밝음과 대비되어 함께 한다더니. 나 또한 어두웠지만 어둡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든 깨발랄과 다크 사이드를 오가는 ‘다크 깐족이’가 바로 나였다.
그런 다크 깐족이였던 나에게도 간혹 친구가 있었는데 그들도 대부분 범상치 않은 아이들이었다. 비록 남들은 잘 알지 못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포스를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한 친구는 이름이 따로 있었지만, 그 시절의 모두가 그렇듯 친구는 별명이 있었다. ‘옥자’. 왜 붙여졌는지 이유도 알 수 없지만 친구는 새 학기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내 이름은 따로 있지만 다들 옥자라고 불러. 왜 그런진 나도 잘 몰라. 핳핳핳핳(안경을 올리며, 세상 유쾌하게 웃는다)”
이렇게 대놓고 유쾌한 친구는 처음인데…라고 생각했는데 앞뒤 번호가 되서인지 바로 짝이 되었다. 깐족거리지만 부끄럼을 많이 타던 나는 당연히 반에서 짝 이외에는 친한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들러붙듯 친구에게 앵겨붙어 다니곤 했고, 친구도 그런 나를 잘 받아줬다.
사건은 날씨도 좋고 햇볕도 좋고 바람도 좋은 어느 날 벌어졌다. 햇살이 잘 들던 3층 미술실에서는 유화 수업이 한창이었고 선생님은 마침 부재중이었다. 유화는 특성상 기름으로 물감을 묻히고 닦는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지만 난 왠지 유치한 장난을 치고 싶었다. 고딩이었지만 사실상 너무 유치해서 왠만한 어린 아이라도 안 할만한 행동이었다. 나는 유화 기름병을 들고 친구에게 “쏟을까? 쏟는다!”하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친구는 그냥 허허 웃을 뿐. 그러다 누군가 내 옆을 지나가다 발에 걸려 쓰러졌다. 도미노처럼 내 옆을 지나가던 친구, 나, 옥자는 순차적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내 손에는 앞서 말했듯이 유화병이 들려 있었다.
그 순간이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느껴져서 얼른 유화병을 잡고 싶었지만 일은 벌어졌다. 다른 곳도 아닌 친구의 머리 정수리, 그것도 정중앙에 유화는 쏟아졌다. 물도 아니니 당연히 제대로 마르지도 않고 함부로 말렸다가는 큰일 날 일이다. 시끄러웠던 교실도 순간 정적. 나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 시작했다.
“정말 정말 미안해” 그동안의 깐족거림은 싹 빼고 친구를 정성을 다해 닦아주고 또 정성을 다해 빌었다. 친구는 별말 없이 괜찮다고 했고, 주변에 나 못지않았던 슈퍼 깐족이가 이 상황을 비웃고 있었다. 나는 슈퍼 깐족이가 원망스러웠지만 일은 내가 저지른 것이니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친구는 그렇게 젖은 듯 안 젖은 듯 이상한 머리 꼴을 하고 하교했다. 외모에 한참 민감한 시기인 고딩 시절에 그 꼴을 하고 갔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너무 미안하다. 그때의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며칠 내내 친구를 볼 때마다 사과를 했다. 친구는 그런 나를 오히려 이해 못 하는 듯, 정말 괜찮다고 했고 진짜로 괜찮아 보였다. 그렇게 우리의 얼토당토않은 우당탕탕 고딩 시절은 빠르게 지나갔다.
졸업을 하고 사는 게 너무 바빠져 옥자와는 거의 보지 못했다. 겨우 싸이월드로 간혹 안부만 전할뿐. 그렇게 스물다섯 살이 되었고, 나는 한 워크숍으로 영상물을 하나 찍게 되었다. 상영회를 하는데 부를 친구가 정말 없었다. 그래서 면목없지만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옥자에게 급하게 연락을 했다. 옥자는 또 흔쾌히 와주었다. 두 손 가득 꽃을 들고. 당시의 남친과 같이 왔는데, 내 작업물에 대해 짧지만 강렬한 평을 남기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이번엔 서른세 살이 되었다. 또 서른세 살의 철없던 나는 옥자와 나를 모두 알고 있는 제3의 친구와 싸우고 연락을 끊고 있던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내가 결혼을 한다니 제3의 친구는 신경이 몹시 쓰였나 보다. 결혼식 전날, 옥자를 통해 연락을 취해왔다. 나는 사실 그 제3의 친구도 옥자도 보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결혼식에는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도 결혼식에 안 왔다. 심지어 옥자는 결혼도 한 상태였다. 나의 상영회에 같이 왔던 그 남친과 함께. 그리고 또 시간은 흘렀다.
나는 서른아홉 살이 돼 있었다. 카톡에 옥자도 제3의 친구도 그대로 있었지만 어쩐지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왠지 모르게 용기가 나질 않았다. 핸드폰 속 작은 키보드를 누를 용기.
그러다 갑자기 핸드폰이 해킹이 됐는지 나도 모르게 메시지가 산발적으로 여러 사람에게 보내진 일이 있었다. 당황한 나는 정정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그 무리에 옥자도 있었다.
미안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식상한 안부를 건네려는 순간 옥자는 말했다. 마치 어제까지 말했던 것처럼.
“어 그래? 알았어” 쿨내가 진동했다.
그러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게 되었다. 거의 십오 년 가까이 얼굴을 보고 만나지 못했는데, 그 시절의 깐족이와 옥자처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둘은 모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그 사이 변한 모습에 한탄해하고 있었으며, 누가 더 고되게 살았는지 배틀이 붙었다. 하하호호. 메시지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결심을 한 듯, 친구는 만나자고 했다. 그래, 콜! 빡빡한 주말 스케줄의 숲에서 빈 구멍을 찾아 겨우 약속 날짜를 잡았고 날짜가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에 걸렸다.
그래. 이번은 날이 아니었다. 또 약속을 잡는다. 넉넉히 두 달 뒤. 이번엔 애가 아프다.
이번엔 그냥 다음 주에 보자! 설마 일주일 안에 무슨 일 있겠어? 태풍이 왔다!!!
친구와 나는 다시 약속 날짜를 잡기로 했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 올해 안에 볼 수 있겠지.”
“그래 언젠가 살아있으면 볼 수 있겠지. 안 아프면 그날 나오기다! 꼭 보자!”
부디 둘 다 안 아프고 아이도 안 아프고 태풍도 안 와서 친구를 직접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 칭구야, 나의 치기 어렸던 행동을 사과하고 나의 다크 사이드, 브라이트 사이드 모두 받아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우리 꼭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