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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Sep 13. 2022

동료를 소꿉친구처럼 생각하면 오는 현타

24살, 회사 안에선 친구 없다. 그걸 인정해야 더 나은 관계가 보인다

어느 날, 티브이를 보는데 한 연예인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스태프를 잘 안 바꿔요. 익숙한 게 좋고. 오래 만나 편한 사람이 좋아요. 이 분이랑 10년 정도 같이 일했고 저 분이랑은 7년 같이 일했어요”


그것을 본 나는 순간 “와, 부럽다. 나는 사람 저렇게 못 믿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도 뭔가 뒷맛이 씁쓸했는데 그 이유는 화면 속 그가 말한 한 문장에서 나와 겹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먼저, 익숙한 게 좋고(이것도 아니고), 오래 만난 사람이 편한 것도(아니고). 그저 혼자서만 그 자리에 앉아 일을 했을 뿐. 물론 그 과정에서 만난 많은 인연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 가 좋아서 오래 일하는 게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 일을 하다 보니 오래 하게 됐다.


그동안 이런 사실에 불편함을 전혀 못 느끼고 있었는데, 저런 말에 순간 움찔한 것을 보니 스스로도 찔리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의 유별난 성격을 생각하면 이렇게, 그렇게 한자리에서 오래 일하기도 쉽지 않았다. 지금 회사에 적을 두기 전에는 많은 회사를 옮겨 다녔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했다.


특히나 사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됐던 이십 대 초중반에는 공사 구분을 정말 못했다. 지각도 밥 먹듯 하고 회사 동료를 내 죽마고우처럼(?) 막 대하기 일수였다. 일을 잘해도 그런 행동은 단체 생활에서 쉬이 용납이 안되었을 텐데 아직 일이 서툰 초짜가 그러고 돌아다녔다는 사실이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고 부끄럽다.


한 번은 같은 시기에 퇴사를 하기로 한 동료가 있었는데, 갑자기 퇴사 의사를 번복했다. 물론 둘이 작당(?)하고 그만두기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히도! 친한 내 친구 같은 동료가 같이 그만둔다니!!! 왠지 모르게 든든한(?)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번복하다니… 내 일도 아닌데 주제넘게도 괘씸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유도 없이 내 눈치만 보던 동료에게 차갑게 대하고 회사를 나와 버렸다. 그리고 우리의 인연은 끊어졌다. 매일 같이 밥 먹고 일하는 건 대충, 늘 놀러 다니던 정말 죽마고우 같은 친구였는데 퇴사와 함께 댕강 인연이 끊어진 것이다.


아마 내가 공사 구분을 잘했더라면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괜한 유치한 감정에 휩싸였고, 그렇게 인연을 끊어내 버렸다.


그 이후로도 난 유치한 행동을 하며 여러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었던 많은 인연을 끊어내 버렸다. 몇 번의 실패를 반복하고 나선 그 인연이라는 것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닫아버렸다. 덕분에 더 이상 회사에서 노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웃지도 않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입력, 출력만 반복하며 내 눈앞의 일만 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일에 집중하는 시간도 필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쓸모없는 감정 소비를 하지 않게 되니 더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아이가~~’ 관계 때문에 어물쩍 넘어가던 표현들도 가능하면 정확하게 했다. 그리고 동료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다.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친구라 해도 막 대할 그런 관계는 절대 아닌데 유치했던 지난날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반성한다.)


동료로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나와 동료들, 또는 같이 일하는 모든 사람)는 치열하고 정확하게, 서로 대화하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과 대화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치기 어렸던 나의 모습이 사라졌고, 동료가 친한 ‘친구’가 아닌 ‘동료’ 그리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많은 부분들이 이해가 됐다. 이해가 되니 내 마음을 한편에 내려놓고 들을 준비가 되었다. 나의 말하는 방식을 바꾸고 듣는 방식을 바꾸니 들리는 게 생겼다. 어쩌면 티브이에 나온 그 연예인도 그런 맥락의 말을 한 것은 아닐까. 비록 처음부터 완벽하진 않았고 지금도 사람을 잘 믿는 사람은 못 되지만, 그렇기에 그 ‘믿음’이라는 것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겁고, 오래 만나 알아온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겁다. 다 그들 나름의 이야기가 있고 세상이 있다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나의 세상도 (다는 아니지만) 내어 슬며시 보여 줄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다.


철없이 동료에게 함부로 했던 내가, 또 자기 자리에서 인상만 팍팍 쓰면서 일하던 내가, 조금씩 변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때론 좌절했기 때문이고, 때론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실망도 많이 했던 내가 그저 실망한 채로 주저앉아있지 않고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래서 돌아갈지언정 어쨌든 원하는 것은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좌절의 상태에 있다면, 끊어진 인연에 아쉬워한다면… 마음껏 아쉬워하되 툴툴 털고 일어나자. 마치 “다 울었니? 이제 할 일을 하자”라고 말한 누군가의 말처럼.


* 저와 함께 일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와 존경과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이제 철들었습니다. 죄송했습니다.
   

사족 1. 어렸던 내가 진심으로 착각했던 것은 ‘격의 없이 사람을 대하는 것’과 ‘진짜 격의 없는 것’. 뭐든지 선을 지키자. 그리고 일터에서는 모든 것이 ‘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때론 노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진짜 놀기만 하면 안 된다. 자기 일은 제대로 해내는 것, 그것이 프로다. 그리고 제때 가자. 정해진 시간에 다 해내는 것도 중요하다.

사족 2. 친구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한국에선 보통 동갑의 동성 또는 이성 포함까지 친구라고 부르는 듯 하다. 하지만 살다보면 알 수 있다. '친구'라는 바운더리는 생각보다 좁다. 그보다 더 넓은 영역이 있다. 무엇이라 부르기 애매하고 모호하지만 그런 애매한 관계라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잘 지낼 수도 있다. 친구는 아니여도 힘껏 안아줄 수 있는 동료. 그러나 마음만 충분히. 돈은 빌려주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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