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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Sep 14. 2022

결혼식 참석 유무는 그간의 친밀도를 보여준다

33살, 결혼식 축가 약속을 안 지킨 친구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의 나는 이미 인간에 대한 모두 저버린 상태였다(나의 잘못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저 실망만 가득한 상태였으므로).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남편은 발랄했고 재능 있었고 주변에 친구도 많았다. 여기서 ‘많았다’라고 과거형으로 쓰인 이유는 나와 마찬가지로 남편도 많은 인간관계가 정리됐기 때문이다. 그런 계기는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날벼락같기도 했으며, 추적추적 내리는 부슬비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이별의 슬픔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나 조차도 어떤 느낌일지 대략 짐작이 가는 터라 마음은 더 아팠다.


이렇게 인간관계가 정리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결혼식 즈음부터였다. 약 7년 전 팔자에도 없을 것 같은 결혼식 준비에 한창일 때 남편은 많은 사람들에게 서프라이즈! 같은 걸 보여주고 싶었던 듯하다. 지인을 총동원해 축가를 구하고 사회를 구했다.


자신의 여행 스케줄을 취소하고 흔쾌히 사회를 봐준 친구도 있었지만, 축가를 부르기로 했다가 결혼식 당일 잠수를 탄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나와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고, 셋이서 같이 UCC도 찍은 사이였기에(너튜브 아니고 UCC) 설마 그러겠어~ 했지만 정말 그랬다. 그 친구는 음악을 하는 친구였는데 결혼식 직전까지 축가의 선곡부터 연주 스타일까지 완벽을 추구하며 남편을 심적으로 괴롭게 했다고 한다(들은 이야기).

그랬기에 당연히 펑크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결혼식을 진행했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신랑 입장이 시작된 순간, 남편의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고 한다. 느낌이 싸했지만 이미 시작된 결혼식에서 핸드폰을 꺼내볼 수도 없는 상황이라 무시하고 앞을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고 한다(이것도 들음).


식이 한창 진행되고 드디어 축가 순서가 왔다. 사회자는 이렇게 말했다.

“신랑의 절친이시죠. ***씨를 모습니다. 박수 부탁드려요~”

짝짝짝

………..(정적)


남편과 내가 둘이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


“다시 한번 불러 보겠습니다. ***씨~”

짝짝짝

………..(정적)


이렇게 세 번을 부르고 축가는 결국 사회자가 불렀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 설명이 없었다. 남편의 흔들리는 눈빛이 보였다. 둘 다 얼른 멘탈을 부여잡고 다시 결혼식을 끌고 가야 했다.

사실 이날의 에피소드는 마치 연극 같아서, 이게 진짜 실제 상황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연출을 잘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식이 끝나고 남편의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축가를 부르기로 한 친구의 전화가 수십 통 와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이미 화가 잔뜩 난 상태였고, 그 이후로 친구와는 자체적으로 빠이빠이를 선언하고 전화번호를 삭제했다. 나로서는 더 이상, 앞으로도 계속 왜 축가에 안 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렸다.


그 후로 몇십 시간이 지나 신혼여행을 한참 다니다가도 남편은 불현듯 그때가 생각나는지, “아오 열받아”라고 분해했다. 어쨌든 재치 넘치는 사회자 덕분에 큰 위기는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친구였던 남편의 입장에서 느껴지는 배신감은 달랐나 보다.


그 이후로도 많지는 않지만 결혼식에 갈 때면 그 생각이 나곤 했었다. 그 친구는 도대체 왜 안 왔을까. 왜 더 이상 연락도 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잘 알지만 결혼식은 가족 모두의 행사이다. 알게 모르게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눈에 띄지 않게 잘 수행해야만 하는 미션도 있다. 그러면서도 그간의 사회생활에 대한 평가의 자리도 되어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런 자리이므로 참석하는 친구들에게도 한 사람씩 정성을 다한다. 그렇기에 청첩장을 전달하는 그 간절한 마음도 잘 전해진다. 별로 친분이 없는 사이라도 만약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라도 한 자리 가서 채워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좀 더 나이를 먹고 코로나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결혼식에 갈 일은 더 줄어들었지만 가끔씩 청첩장을 받을 때면 모두들 위의 이유 때문인지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부탁을 했다. “제발 와 줘. 늦게 가서 이제 올 사람이 없다…”

그렇게 결혼 적령기(?) 나이의 사람들에게 결혼식은 그렇게 중요하다. “너, 내 결혼식에 안 왔지? 안 봐.” 이런 우스개가 우스개가 아닌 것이다.


문제는 이런 중요한 날에 생긴 상처도, 예기치 못한 이별도 항상 생채기를 남긴다는 것이다. 어쩌면 예상치 못해서 더 아픈 것 같은…

나 또한 이런 예기치 못한 이별을 당한 적도, 해 버린 적도 있었다. 서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늘 이유는 있었다. 분명 그 친구도 이유는 있었을 것이다. 한 번쯤 그날의 결혼식을 생각해줄까?라는 생각도 든다. 남편을 대신해하고 싶은 말은, 그래도 잘 대처해서 결혼식은 잘 끝났고 저희도 잘 살고 있으니 부담감은 덜고 언젠가는 연락 한 번 해주길. 그렇게 만나서 이야기 한 번 하고 싶어요. 어떻게 살았는지. 그래도 우리 친구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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