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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Sep 16. 2022

어디 있니? **부인들아. 보고 싶다

15세, 한 반에 몇 명씩 있었던 아이돌 덕질의 시조새들

어느 날 이사를 앞두고 본가를 찾았다. 이사를 기회로 그동안 잊고 있던 내 물건이 있다면 가져갈 요량으로 한 방문이었다. 이것저것 뒤지다 티브이 장 밑 서랍을 여니 예전에 가족들이 찍은 비디오테이프가 한 짐 나왔고 나는 남편을 포함해, 다 같이 보기로 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나! 흑역사 대방출인가 했더니?? 비디오테이프는 묵묵부답. 흑역사가 아닌 검은 화면만 방출했다.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안도의 한숨인지 웃음인지를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잊힐 줄만 알았던 테이프였다.


며칠 뒤,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테이프를 복원해 주는 곳이 있어서 맡겼다는 소식이었다. 복원이 잘 될지 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맡겼다고.


또 얼마 뒤, 그 한 무더기의 테이프가 모두 복원된 영상이 들어있는 usb 하나를 받게 된다. 우리 가족의 긴 역사가 이 작은 usb 하나에 다 들어가고도 남다니… 기분이 묘했다.


영상을 하나씩 틀어보니 9살의 내가 있었고, 중학교 졸업식의 오빠도 있었다. 깔깔대며 영상을 보고 있는데. 두둥 드디어 나왔다. 흑역사.


당시 키 168cm에 다소 마른 몸이었던 나는 40인치 옅은 청바지에 280mm 운동화를 신고, 그에 어울리지 않는 학교에서 정해준 귀밑 3cm의 정갈한 단발머리, 거기에 이른바 철길이라 불렸던 교정기에, 얇은 금테 안경을 쓰고 30도 각도로 고개를 살짝 내리고 있는 내가 화면 안에 있었다.

파워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청소년의 모습. 그러나 나이 들어서 다시 보니 어쩐지 힙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면서 어떤 시절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1990년대 후반은 사회적으로 암흑기였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그 안에서도 즐거움을 찾았다. 그중 최고는 뭐니 뭐니 해도 연예인, 즉 아이돌이었다. 이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었지만 우리에겐 High-five Of Teenagers! H.O.T가 있었고, S.E.S, 젝스키스, 핑클 등이 있었다(지오디는 그다음)


핸드폰도 아니고 삐삐가 보편화된 시절이었기에, 매일 아침 친구들과 다 같이 공중전화로 몰려가 ‘사서함’으로 전화를 한다. 그럼 누가 들어도 회사 직원인듯한 20대로 추정되는 한 언니가 “우리 오빠들은 오늘요~”로 시작되는 한 주간 예정된 스케줄을 알려 준다. 대부분 언제 어디서 무슨 방송이 나오는지 알려주는 게 대부분인데 가끔 사인회를 한다거나 행사를 한다는 것도 알려준다.

그렇게 귀를 모은 정보를 오빠들 사진을 붙이고 만들고 꾸민 필통에서 펜을 꺼내 적는다. 방과 후엔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동네 문구점에 갔는데 거기엔 오빠들 사진이 매주 업데이트됐다. 한 장에 400원. 멤버당 10종 이상 나올 때도 많고, 요즘으로 치면 ‘최애’ 멤버가 아니더라도, 같은 그룹 타 멤버 것도 종종 샀기 때문에 만 원 정도는 금방 날아가기 일수였지만 그 시절 포기할 수 없는 큰 기쁨이었다.(어쩌면 이것이 포카의 시초?)


음반이 나오면 테이프 하나, 시디 하나를 사고 여유가 되면 보관용으로 하나씩 더 사서 비닐포장을 뜯지 않고 전시한다. 드림콘서트 같은 무료 콘서트가 자주 열렸는데, 그 티켓을 받으려고 차도 없으면서 주유소에 가기도 했다(**오일뱅크가 주최사여서 티켓 배부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뭐가 모자란 지 쉬는 시간이면 모여 어제 봤던 티브이 얘기, 라디오 얘기 또는 ~카더라 얘기. 더 나아가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를 틀어놓고 춤추고 난리도 아니었다.


<응답하라 1997>은 다큐나 다름없다. 한 반에 몇 명씩 **부인이 있었고, 놀랍게도 그들은 평화롭게(?) 연대했다. **부인들은 오빠들의 스캔들에 같이 분노하고 울었고, 같이 누군가의 눈알에 색칠을 했다(!!!).


과격하고 저돌적이었지만 그만큼 순진한 구석도 있었다. **부인들은 유난히 더 친해져서 절친이 되기도 쉬웠으니 친구들이랑 친해지기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어릴 때 새겨진 이 덕질 dna 때문일까. 난 아직도 아이돌을 좋아한다. 그 이후로 한 시도 아이돌을 안 좋아한 적이 없었다. 물론 그 시절처럼 열정적이고 치열하게 좋아하기엔 이젠 체력도 삶도 여유가 없지만 출근길에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힘을 낸다.


그런데 가끔은 궁금하기도 하다. 그 시절의 **부인들은 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처럼 지금도 아이돌 좋아하는지. 친구들아 보고 싶다. 우리 다시 만나면 뉴진스 콘서트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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