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친구의 집에 가면 생겼던 일
아이와 함께 근처 마트에 가는 길에 아이의 얼집 친구를 만났다. 늘 알림장 앱 속 사진으로 보던 아기 사람이 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나니 마치 연예인 보듯 너무 신기했다. 그 아기 사람도 말로만 듣던 친구의 엄마를 봐서 신기한 듯했다.
가까이 사니 집에 놀러 와~라고 말했지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또 몇 가지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1990년의 시작과 함께 ‘국민학교’에 입학한 세대로서, 그시절의 어린이들은 요즘과 비교하면 엄청 뻔뻔했다. 그 뻔뻔함 중 하나는 친구 집을 내 집 마냥 드는 것도 있었는데, 한 번은 아무런 이벤트가 없음에도(생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가 상을 받거나 반장이 된 것도 아닌데) 한 반의 반 이상이 A의 집에 놀라간 적이 있었다. - 참고로 내가 어릴 땐 한 반에 최소 4~50명이 있었고 그중 반이라 하면 20명 정도는 족히 되었을 것이다- 우르르 몰려간 집에는 친구의 엄마가 혼자 계셨는데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우리들을 맞았다(그 시대의 흔한 어머니들의 반응).
방 두 개에 마루까지 점령하고 (그 집 동생, 강아지와 함께 모두 포함) 간식까지 받아먹으며 왁자지껄, 티브이에선 가요톱텐이 흘러나왔고, 그시절 초딩들은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 해서”라고 시작되는 노래를 여럿이 고래고래 따라 부른 기억이 난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다 되도록 집에도 염락 하는 이 하나 없이 놀았다(생각해보니 그때는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다들 집에 말도 안 하고 놀고 있었는데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 안 했었다).
또 한 번은 다른 친구 B의 집에 혼자 놀러 가게 됐는데 그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친구의 집에 가보니 확실히 이 친구는 또래에 비해 아주 성숙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유는 바로 친구가 ‘윤종신’ 아저씨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95년의 어느 겨울, 부모님이 맞벌이를 한다던 친구가 낮에 주로 혼자 집에 있다 해서 간 것이었는데, 추운 겨울임에도 주방에 있는 작은 창밖으로 들어와 식탁을 비추는 햇살이 참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따뜻한 분위기에 따뜻한 차를 마시며(어른처럼 우롱차 같은 걸 마셨다) 친구와 함께 노래를 들었다. 그날 들은 노래는 당연히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 거대하다고 느껴질 만큼 전축에 작디작은 테이프를 넣고 음악을 틀었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생각했던 것은 12~13살 남짓했던 내가 듣기엔 노래 속 인물은 우린 입어본 적도 없는 교복을 입은 것도 모자라 이미 졸업도 한 것 같은데 ‘오래전’이란 단어와 ‘그날’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도통 이해할 수 없어서 친구 옆에서 그냥 이해하는 척 턱을 괴고 듣고 있었다. 진짜 어른이라도 된 마냥.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또 다른 친구 C가 ‘집’으로 놀러 가자고 해서 갔는데 왠 ‘가게’로 데려갔다. C는 자기 집이라면서 가게에서도 안쪽에 있는 작은 골방으로 나를 데려갔는데 그곳은 바닥이 눌어붙은 노란색 장판이 깔려 있는 화장품 가게 구석진 곳의 단칸방. 그곳이 친구의 집이었다. 친구의 엄마는 밝은 미소를 지으시며, 나를 맞이했다. 나의 방문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 간식도 미리 준비해 놓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간식이란 게 너무 생소했다. 작고 시커먼 달팽이인지 소라 같은 알 수 없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건 고둥이었던 것 같다. 양도 엄청 많아서 한솥 분량의 고둥 앞에 친구, 친구의 엄마, 나 이렇게 세 사람이 앉아 고둥 한 바가지가 올려진 쟁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껏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던 거라 어떻게 하지 하고 있는데, 친구의 엄마 젓가락으로 하나씩 꺼내 우리 둘의 입에 하니씩 넣어 주었다. 가족도 아닌 누군가가 낯선 무언가를 넣어주는 상황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다른 날과는 다르게 그날은, ‘오손도손’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그런 날이었다.
그럼 친구 집 방문이 이렇게 재밌고 따뜻한 에피소드만 남겼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나는 겉모습이 날라리라고 불리는 행색을 한 친구가 있었다. 다른 것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 엄마였지만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을 엄마는 굉장히 못마땅해해서 자주 싸우곤 했었다. 그날도 날라리처럼 보이는 친구 D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엄마는 다른 친구의 방문 때와는 달리 냉랭한 기운을 뿜으셨지만 그래도 간식을 내오고는 그외에 별다른 말씀은 하지 않았다. 그저 눈치만 좀 줬을까. 그런 상황에 내가 다소 민망함을 표하며 친구에게 사과를 하자 친구는 의외를 말을 한다.
“그래도 너네 엄마는 간식도 주시고 잘 놀다 가라고 말해주잖아”
ㅇ.ㅇ? 그럼 친구가 놀러 가는데 간식을 안 주나? 그 의문은 D의 집에 갔을 때 해소되었다. D는 어느 하교길에 결심한 듯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어색하게 집으로 들어가는데 마루에 친구의 남동생과 누워 있던 친구의 엄마가 갑자기 호통을 치기 시작한다.
“너! 누가 집에 친구 데려오라고 했어! 친구 데리고 오면 얼마나 귀찮은지 아니!”
도로 갈까 싶었지만 친구가 꿋꿋이 나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 버렸다. 친구의 엄마는 닫힌 문을 향해 알 수 없는 말을 외쳐댔다.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앉히고 또 우리는 여느 때처럼 놀았다. 간식을 내오는 엄마도 없었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언니나 동생도 없었다.(친구는 삼 남매 중 둘째 ‘딸’이었다)
딱히 뭐라 반응할 수도 없다는 것을 어린 나도 잘 알았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노는 게 친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의 5학년의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지나 우연히 D를 만났다. 얼굴에 구멍을 안 뚫은 데가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피어싱을 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잘 못 알아보았는데 친구가 먼저 나를 알아봤다. 서로 다른 중학교를 갔기에 그동안의 안부를 물어보고 있었는데 친구가 한 마디를 건넸다.
“넌 공부도 잘하고 그러니까 중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거야”
응? 난 공부 잘 한 적 없는데. 왜 친구는 내가 공부를 잘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냥 정정하지 않고 연락처도 따로 받지 않고 헤어졌다.
그리고 또 3년의 시간이 지나 우리는 고딩이 되었다. 이번에도 내가 아닌 친구가 먼저 나를 알아봤다. 친구는 3년 전과는 또 달라져 깨끗한 교복에 정갈한 스타일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누가 봐도 모범생의 모습. 중학교 때 이전 퇴학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건너건너 들었지만 친구의 이런 변신은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연락처도 주고받을 법했는데 우리는 이야기만 조금 나누다 헤어졌다. 시간이 흘러 뒤늦게 친구를 다시 찾고 싶어서 **월드나 아이러브스*도 뒤졌지만,둘 다 너무 흔한 이름을 갖고 있어서인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도 이제 그때의 모든 상황들을 떠올리면 다는 아니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그리고 때론 기억에서 멈춘 인연들이 아쉽기도 하지만 기억할 수 있는 추억들을 가지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나와 함께 기억을 공유해준 친구들이 고맙고 어딘가에선 잘 샀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 가지 바람이 더 있다면 나의 인생에서 앞으로도 많은 추억과 인연을 쌓아갔으면, 그리고 가끔 그때처럼 우리집이 친구들이 놀러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아이의 친구들도 자주 놀러 왔으면. 비롯 그 옛날 A의 엄마처럼 스무 명을 다 받아 줄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모여 왁자지껄 재밌게 놀았으면 좋겠다. 간식은 언제나 준비해 놓을 테니.
* 기억을 또 더듬어보면 내가 네 살쯤 됐던 1980년대는 분위기가 또 달랐다. 당시 나의 하루 스케줄을 정리하면, 아침에 일어나 집에서 놀다가 밖으로 나간다. 처음 가는 곳은 바로 옆집. 옆집 아줌마는 내가 문을 열고 나오면 “경민이 왔니?"하고 말을 걸어 줬다. 그러면 나는 자연스레 그 집으로 들어가 놀았다. 딱히 아줌마가 놀아준 것도 아니었고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갔었고 아줌마도 그냥 나를 맞이했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그 집에서 나와 동네 산책을 하다 놀이터에 가서 모르는 아이와도 놀고 다이내믹하게 점프도 해대면서 놀고, 또 지루해지면 다른 곳으로 가서 놀다가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갔다. 옆집 아줌마와도 친구처럼 지냈던 그 시절의 나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성격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아줌마, 그때 저랑 놀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누군가의 친구가 돼주면서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