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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읽기는 소리 내서, 강약 조절이 필수

by 김경민

여드름, 안경, 치아교정기. 이 셋은 나의 사춘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무엇 하나 속 시원할 것 없이 답답한 세 가지 요소. 더군다나 치아교정지는 일명 ‘철길’을 넘어서 ‘혀내밀기 금지’라는 큰 미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안 좋은 내 발음은 더더욱 안 좋아졌다. 발표를 시킨 선생님도 못 알아 듣겠다며 다시 앉아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런 내가 아이를 낳고 가장 힘든 것이 말하는 것이었다. “힘들어도 재잘 재잘 떠들어야 해요. 그래야 아이에게 좋아요~” 모태 아싸에 발음도 좋지 않은 내가 아이에게 쉬지 않고 말을 해야된다니. 할 말이 없어 눈물이 날 정도였다. 일단 사운드 자체를 만드는 게 중요하디니 애국가를 부르기도 하고 가요도 부르고 라디오도 따라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본 것 같다. 그럼에도 할 게 떨어지자 할 수 없이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한 장면, 서점에서 책을 아주 맛깔나게 읽어주는 엄마와 이를 듣는 아이를 봤던 것이다. 왜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장면이 생각이 났을까. 나는 그 엄마처럼 맛깔나게 책을 읽어 줄 수 있을까. 아니 저 글자들을 제대로 된 발음으로 읽어 줄 수나 있을까. 고작 책을 소리내 읽는 것임에도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다. 아이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눈빛을 보내고 있고 나는 뭐라도 해야 한다. 그래! 그럼 책을 읽어보자.


처음에는 당연히 어색했다. 일단 책을 더듬지 않고 읽는 것도 난관. 자꾸만 심심하게 읽는 것도 난관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동화책이지 않은가. 그래도 아이는 조금씩 나아지는 나의 책읽기에 더더욱 신나게 호응하기 시작했다. 칭찬과 박수는 사람을 힘나게 한다는 것이, 또 사람이란 게 하면 는다는 게 여기서 또 증명된다. 나는 이제 책을 잘 읽을 수 있다! 게다가 모르는 아이와도 하이파이브를 이끌어낼 수 있을 정도의 인싸력도 끌어냈다. 이것은 모두 동화책을 직접 소리내 읽은 덕분이다. 그 노하우를 공개하자면


1. 책을 곧이곧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읽으면서 생략하고 중간 중간 축약한다

2. 의성어나 의태어는 최대한 그 의미에 맞춰 강조할 것은 아주 크게, 약하게 할 것은 아주 약하게 말한다. 그러면 아이도 그 단어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3. 아이가 책을 넘기면 그대로 간다. 이야기가 이어지든 말든 상관없다. 무조건 앞으로 go

4. 중간 중간 질문을 한다. 그럼 나도 쉴 수 있고, 아이도 생각할 시간 및 말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

5. 몇 가지 책을 섞는다. 일명 메타버스 독서법 정도 되겠다. 아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섞어비빔밥처럼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의 놀이도 생각도 확실히 확장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좋아하는 것에는 무한 집중하는 시기이기도 하거니와 좋아하는 것들이 서로 만나 논다는 느낌이 들면 더 재밌어 한다.

6. 5번에 이어 동화책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 온다 라고 하면 애는 쓰러진다. 설레서

7. 이제는 your turn. 너도 이야기를 들려줘. 라고 하면 처음에는 부끄러워해도 서서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한 반응을 해줘야 한다. 기계적인 반응이 아니라 제대로 듣고 해야하는 것은 필수다

8. 아이가 읽어달라면 몇 번이고 계속 읽어준다. 그만할 때까지. 단 매번 로봇처럼 읽는 게 아니라 뭐 하나라도 다르게 읽어준다. 강약조절을 바꾼다던가 단어를 바꾸더라도 뭐라도 바꾼 게 좋다.


나는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책을 통해 아이와 함께 놀이를 하는 게 됐다. 놀이를 함께 하면서 공감대와 교감이 생겼고, 나의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마음을 여는 법을 알게 됐다. 이는 아이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어른인 나의 인간관계도 많이 다르게 만들었다. 좀 더 배려하고 여유 있게 행동하기, 그리고 말하기 자체에 두려움을 가졌던 내가 그전보다는 훨씬 또렷하고 조리 있게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일거 몇 득인지 모르겠다.


아이와 노는 법이, 이야기하는 법이 어렵다면 일단 책을 한번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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