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하지 말고 들어”라는 말은 시작부터 잘못됐다. 이미 이 말을 하는 사람도 알고 있다. 이 말이 나오는 순간 상대방은 기분 나빠질 것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하는 말이기에 새겨들을 필요도 있지만 때로는 안 해도 되는 아무 말일 때도 많다.
아무 말이면 순간 기분 나쁘고 말 일이지만, 만약에 나에게 진짜 필요한 말이라면 ‘진짜’ 기분 나빠도 새겨 들어야 한다. 누군가의 띵언처럼 '잔소리'보다 더 기분 나쁘지만 들어야 하는 게 '충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껏 수많은 충고에 가까운 말, 그러니까 듣기는 엄청 싫지만 사실 나에게 도움이 될 말들을 안타깝게도 충분히 오해만 하고 들었다.
그래서 말의 핵심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말 자체에 화가 나 거기에 에너지를 쓰느라 나의 발전에는 사용하지 못했다. 그건 아마 말 그 자체라기 보단 그 안에 들어있는 무언가가 내 안의 트리거를 잡아당겨, 애써 묻어두었던 것들이 줄줄줄 튀어나오게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트리거를 건드느냐 안 건드느냐에 따라 아무리 해도 이해 안 되는 사람이 있었고, 설령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이해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친밀도와 비례하지도 않았고, 호불호와도 비례하지 않았다. 단지 저것. 나의 트리거, 곧 나에게 달린 문제였다.
문제는 나의 트리거가 당겨진 순간이다. 그러면 외부에 보이든 안 보이든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야말로 방아쇠는 당겨졌고 나의 감정은 방아쇠에 밀려 이미 튀어나와 저 멀리 폭주 중이다. 나를 말리고 싶어도 말릴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랜 사회화를 거친 터라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정도로는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을 수는 있게 되었는데 이때가 중요하다. 이때 나에게 말을 걸면 안 된다. 나 조차도. 나 스스로도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이 감정이 내 안에서 널뛰다 조용히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럴 때 말을 거는 사람이 꼭 있다.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고 그들은 몰랐겠지만, 이때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 줄 수가 없다. 이상하게도 이 상태가 되면 상대가 어떤 말을 원하는지 너무나 명확하게 잘 알 것 같다. 마치 목소리로 들리는 듯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럴 수록 해주기 싫다. 못된 심보라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미 트리거로 당겨 나자빠진 상태이므로.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정상적인(?) 나의 상태로 돌아오면 이상하게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이 잘 안 들린다. 말의 의도도 대답도 안 들린다. 그저 사실 관계가 있을 뿐. 거기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다.
고로 나는 언제나 원하는 대답은 해주기 싫은 상태이거나 몰라서 할 수 없는 상태. 이 두 가지 상태에 있다. 스스로도 너무 안타깝다. 나도 사람들이 원하는 말 쏙쏙 뽑아내서 다 해주고 싶다. 그래서 사랑받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잔뜩 오해하며 듣거나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고 말하는 쪽에 가깝다.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면 나아지려나. 일단 내 안에 트리거부터 하나씩 찾아보고 내가 왜 그런지 생각하는 게 먼저. 아… 할 일이 너무 많다.
트리거: 영어로 ‘(명사) 방아쇠’, ‘(동사) 촉발시키다’란 뜻으로 일반적으로 악의 없이 언급만 해도 특정 개인의 자존감을 떨어트리거나 화를 돋우거나 공포심을 유발하게 하는 것.
잘한 일:
내 안의 '트리거' 하나를 발견한 일. 그리고 나 자신을 그리고 상대방을 감정적으로 비난하지 않은 일. '화남'의 원인이 그걸 받아들이는 나, 곧 나의 트리거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일.
한 마디로, 너를 성질나게 하는 건 저 사람이 아니야. 네 성질머리 때문이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