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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안) 버리기] 못하는 사람

by 김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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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블록을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날이면 날마다 블록놀이를 했습니다. 이 소년을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소년의 아버지였고, 또 한 사람은 소년의 동생이었습니다.


어느 날,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말도 없이 소년의 블록을 싹 쓸어 다른 이에게 주었습니다. 소년의 동생을 이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건 정말 큰 일 날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소년이 집에 돌아오고 이미 일어난 일을 알아버렸습니다. 소년을 뒤로 나자빠졌고, 소년의 아버지는 그런 소년을 나무랐습니다. “공부나 해!”라며. 중요한 건 없어진 블록이 아니라 합의 없이 없앤 것인데 소년의 아버지는 그걸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 둘을 소년의 동생은 오랫동안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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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약 삼십여 년 전에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집에나 있었고 딱히 특별하지 않은 장난감 몰래 버리기 사건. 지금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그때 나의 충격은 상당했다. 일단 오빠 '개인의 물건'을 아빠가 저렇게 확신에 차서 (비록 그것이 고. 작. '장난감'이라도) 처리하는 게 믿기지 않았고, 또 남일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은 두고두고 우리 남매의 한풀이 토크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내 머릿속에 하나의 키워드가 되어 아빠를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가 됐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나의 입장이 바뀌니 조금은 이해가 되는 일로 한순간에 바뀌어 버렸다. 그건 내가 부모가 됐기 때문이다.


누워서 방긋방긋 웃기만 하던 아이는 어느덧 완전한 한 명의 인간이 되었다. 누워 있을 때는 뭐든지 좋아 좋아~였지만 일어서기 시작하면서 슬슬 주변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는 완전한 기호를 갖게 되었다. 아무리 내 눈에는 누더기 종이 조각으로 보여도 아이에게는 소중하고 또 소중한 그 무엇인 것이었다(물론 유효 시간이 그렇게 길지도 않다).


문제는 소중 소중한 것이 너~~~~~~~무 많다는 거다. 아이는 매일 아침마다 초인적인 기억력을 발휘해 자기 물건의 유무를 체크한다. 산더미 같은 장난감 속에서 도 거기에 없는 단 하나의 무엇이 감지되면 바로 드러눕는다. 이는 ‘유치원 안 갈 거야’의 빌미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딜(deal)을 위한 마중물이 되기도 한다.


물건이 많으면 정신을 못 차리는, 더 정확히 말하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금세 멘털이 나가버리는 나의 입장에서는 당장이라도 눈앞에 쌓여있는 것들을 치워 버리고도 싶지만,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을 목격하기도, 겪기도 한 내게는 선뜻 실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정리라도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사실 쉬웠을 문제인데, 그렇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평소의 나'였다면, 정리가 어려우니 누구의 말대로 설레지 않아도 버렸고, 설레도 당장 쓸 상황이 안되면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버리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꾹 누르고 나도 몰래 빠져나가는 멘털을 부여잡으면서 아이의 물건을 최대한 정돈돼 보이게 잘 쌓아 놓았다. ‘내 것이 아니니까’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그래도 언젠가 시간이 흘러 아이와 함께 물건들을 즐. 겁. 게 정리할 시간이 왔으면. 그리고 이왕이면 그 시간이 빨리 왔으면. 그렇지 않으면 그 수많은 짐 속에 내가 파묻혀 있을지도 모르겠기에.




* 잘한 일:

나는 남들보다 집중력도 떨어졌고, 흥미도 길게 못 가지는 편인지라 물건이 있어도 오래 쓰는 성격은 못 되었다. 그래서 노트나 필기구 같은 문구류를 엄청 좋아했지만 끝까지 쓴 일은 정말 드물었다. 그러면서도 욕심은 많아서 많이 많이, 정말 많이 사들였다. 다 쓰지도 못할 것들이 쌓여 갔고 또 버려졌다(지구한테는 참 못할 짓이다). 그런 내가 글이란 것을 쓰게 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적을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하나씩 적다 보니 노트의 많은 부분을 채워 나갔고 그만큼 연필도 짧아졌다. 이쯤 되면 노트와 필기구를 바꿔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롯이 내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의 진척 사항들로 기록으로 노트를 꽉꽉 채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쓰다 보니 이제 아이디어 노트에도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겨우 노트 한 권. 그러나 노트 한 권.

이미 남들은 많이 가지고도 남았을 기록으로 가득한 노트. 그러나 나에겐 흔치 않은 경험이었고, 그것이 주는 사소하지만 알 수 없는 뿌듯함, 충만감이 생겼다. 얼른 새 노트를 쓰고 싶은 마음에 헌 노트를 버리는 대신, 하나씩 하나씩 글로 노트를 채워가는 기쁨. 그래서 새로운 글로 가득할 새 노트를 맞이하는 것. 앞으로도 그런 기쁨을 계속 느끼고 싶다. 그리고 계속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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