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가장 평범한 가족을 꿈꾸며(2)

- 내가 살아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

by 행복한 거복이

딸은 엄마의 팔자를 닮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내가 10살 때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면서 엄마 없는 삶을 살았는데 내가 남편과 이혼을 한 그 해 첫째 딸 나이가 10살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아직 이 세상에 살아있으니 사랑하는 두 딸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혼을 하면서 재산분할을 했는데 1억 1천만 원을 주고 산 아파트가 10년 만에 2억 8천이 되어 있었다. 이 아파트를 매매할 때에도 우리 처치에 아파트를 어떻게 사냐고 그렇게 싸웠었는데.. 시부모님의 신혼집 전세금과 맞벌이를 하며 열심히 저축을 한 끝에 결혼 3년 만에 내 집마련을 한 아파트였다. 이혼당시 아파트 값이 2배 이상 올랐지만 나에게 재산분할로 주어진 돈은 4천만 원이었다. 남편이 나 몰래 가져간 인감도장으로 아파트담보대출을 받았었고 주식투자를 해서 2억을 날린 상태였다. 공동명의로 된 아파트였지만 그 당시 주식의 '주'자도 몰랐던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았다. 우리 명의의 아파트였지만 은행지분이 더 많은 상태였다. 그런데 빚도 재산이라고 아파트값에서 2억을 제외한 8천만 원의 50%인 4천만 원이 나에게 남았다. 10년간의 결혼생활의 끝이었다.





처음에는 두 딸을 내가 어떻게든 키우려고 했다. 딸이니 엄마손이 더 필요할 것 같았고 아이들에게 관심도 없는 아빠에게는 양육을 맡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협의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으면 지금 아파트에서 살게 해 주고 양육비도 준다고 하면서 월세를 내라고 했다. 양육비를 주고 월세를 달라니... 양육비를 주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순간 내가 두 딸을 키운다면 아빠가 과연 아이들을 보러 올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떨어져 살더라도 우리 딸들과 자주 연락 할 자신이 있었다. 끝까지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그냥 이대로 살까? 도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남편만 보면 호흡곤란이 왔고 18층 아파트 난간을 잡고 자꾸만 아래를 쳐다보고 있는 나를 종종 발견했다. 공황장애였다. 그래서 일단 두 딸을 위해 살고 싶었다. 엄마 없이 살아온 서러움은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아있어야 사랑하는 두 딸에게는 엄마 없는 서러움을 느끼며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의 존재도 없게 하고 싶지 않았다.




3개월의 조정기간이 지나고 최종 협의이혼을 선고받는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철없는 전 남편은 법원에서 사기재판이 열리고 있다고 나보고 구경하자고 했다. 본인 이혼을 위해 방문한 법원에서 사기재판을 구경하자고 말하는 전남편을 쳐다보며 "내 인생의 사기는 오빠를 만난 거야"라고 말하며 법원을 나왔다. 두 딸의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남편에게 주고 내가 딸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도록 협의를 했다. 어차피 남편이 양육을 책임지지 않을 것을 알았고 시부모님의 경제사정이 넉넉하니 어머님께서 최소한 두 딸을 굶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4천만 원으로 투룸 전세를 계약하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평범한 가족을 소원하며 꿈꾸며 직접 가족을 완성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나는 우리 할머니로부터 억척스러움을 배웠던지라 두 딸들이 언제라도 엄마와 살고 싶다고 말을 할 때를 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직장부터 구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10년을 육아에만 전념하다 보니 어느새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 있었다. 보험설계도 하고 스포츠센터에서 상담도 하고 학습지 교사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투잡, 쓰리잡을 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하는 열심히 일을 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 결과 작은 경차도 하나 사고 작은 빌라도 하나 샀다. 아이들도 틈틈이 연락하고 자주 만났다.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두 딸을 양쪽에 끌어안고 매일 함께 자던 내가 혼자 자야 했으니 불면증과 우울증이 왔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만 잠든 채로 하늘에 있는 엄마 곁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내가 살아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첫딸을 낳고 아무도 옆에 있어주지 않았기에 우리 딸들이 나중에 커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내가 곁에 있고 싶었다. 소고기를 가득 넣은 미역국도 끓여주고 몸조리하라고 집안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살아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일을 하며 차곡차곡 저축을 했더니 작은 빌라가 작은 아파트로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크기를 키워가며 이사를 할 수 있었다. 4명의 평범한 가족을 이루려던 나의 꿈은 현재 세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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