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행복한 거복이로 살아가기(1)

_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일

by 행복한 거복이

나는 어릴 때부터 내가 아는 것을 남에게 가르쳐주는 게 참 좋았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엄마가 김장을 할 때 사용했던 평상에서 나는 동네 꼬마들에게 한글과 구구단을 가르쳐줬었다. 불법이었지만 무료로 수업을 했기 때문에 꼬마들 부모님에게는 늘 간식과 칭찬을 받았다. '거복이는 커서 선생님이 될 거야'라는 말을 항상 듣고 자라서 부산교육대학교에 가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장손의 앞길을 막을 수 없었기에... 겨우 전문대를 졸업했고, 못다 한 공부를 지금에서야 사이버대학을 다니며 하고 있다. 그랬다... 나는 4년제 대학교 학위가 갖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결혼을 하면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다. 임신을 했을 때는 펠트공예강사 자격증을 따면서 바느질 태교를 했었고, 두 딸을 키우면서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기 위해 리본공예강사 자격증을 땄다. 애교 넘치는 딸들을 키우면서 옷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홈패션자격증도 땄다. 그랬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자격증도 많이 가지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다. 옷 만들기 모임을 운영하면서 TV출연도 했고,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는 문화센터 강사로 펠트공예, 리본공예 수업을 했다. 집 근처에 작은 오피스텔을 하나 계약해서 공예작업실 겸 공방을 오픈했고 동네 사랑방으로 소소히 수업을 하며 나름의 숨 쉴 공간을 만들었다. 손재주가 많으면 애(고생한다는 경상도 방언)가 많다고 할머니께서 종종 걱정을 하셨는데... 그런 엄마의 손재주를 닮았는지 첫째 딸은 입시미술학원을 다니면서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고, 둘째 딸은 공부도 운동도 잘하고 다방면으로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로 잘 자라주었다.





홀로서기를 시작을 하면서 집을 구해야 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살고 싶었고, 부산 광안리로 무작정 가서 집을 알아보았다. 내가 가진 4천만 원으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투룸전세를 씩씩하게 계약을 했고 이사도 했다. 이사라고 해봤자 이미 오피스텔로 나의 짐들이 일부 옮겨진 상태라 옷가지 등만 간단히 챙겼고, 나머지는 다 공방에 있던 공예재료들이라 여러 박스에 담아 옮겼다. 1톤 트럭 가득 짐을 싣고 광안리에 도착했다. 짐이 많아서 거실에는 박스가 가득했다. 이사한 첫 날밤 10년을 두 딸을 양팔에 안고 잠을 잤었는데 혼자 잠을 자려니 잠이 오지 않았다. 매일밤 악몽에 시달리는 날이 많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무서웠다. 무엇보다도 두 딸의 온기가 너무 그리웠다. 결국 불면증이 진단을 받고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무기력해진 삶에 하루, 이틀, 사흘... 아무 생각 없이 밀린 숙제를 하듯 먹지도 않고 계속 잠만 잤다.



그러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서 선택한 이혼이었는데 이렇게 사는 건 두 딸을 떳떳하게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경제적인 이유로 시부모님께 두 딸을 맡겼지만 언젠가 엄마랑 함께 살고 싶다고 딸이 찾아오면 바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광안리에 있는 수영장 안내데스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래도 첫 직장에서 5년 동안 상담사로 일한 경력으로 안내데스크에서 일을 하다가 고객상담실 팀장으로 승진도 했다. 하지만 수영장은 운동선수들이 모인 단체이다 보니 '다나까'로 대답을 해야 하거나 고객상담실 팀장이 이런 일까지 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일들을 하다가 결국 퇴사를 했다. 그래도 광안대교에서 불꽃축제를 할 때면 수영장 옥상에서 편하게 불꽃축제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랬다... 나는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잘 찾는 사람이었다.



강사일을 알아보다가 보험설계사로 취직을 하기도 했었다. 보험설계 자격증을 따게 되었고, 내 보험의 부족한 부분과 과한 부분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하고 퇴사를 했다.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와 인연이 닿았고 지금은 아이들에게 독서토론논술 수업을 하고 있다. 학습지 교사로 시작했던 일이 많은 아이들과 부모님을 만나면서 나는 점점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책을 읽고 독서토론논술을 지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책을 읽게 되었고 다시 '나'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같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이야기를 하며 놀다가 온 것 같았는데 아이들의 실력이 향상되는 게 보일 때면 보람이 느껴졌다. 어머니들이 입소문을 내어주시면서 시간표가 금방 채워졌고, 90명에 가까운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에는 목이 쉬는 날이 많았지만 월급이 많아져서 더 힘이 났다. 수업을 위해 차를 샀고 3년쯤 되었을 때 광안리 투룸에서 반여동에 있는 빌라를 매매했고, 두 번째 이사를 했다. 돌고 돌아서 결국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살아가니 '나'답게 사는 것 같았고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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