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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Aug 23. 2021

<허접 납량특집> 재미있는 놀이 1

직접 겪은 실화를 각색했습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울 독자님들 판단에 맡깁니다. 후훗.



 고여사님께서 늘 말씀하셨다.

 김도통 육아가 hard mode 라면 김국주 육아는 hell mobe라고… 하여 이번엔 고여사님께서 김국주를 육아(?) 하던 시절 이야기를 하려 한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90년대에는 중학교에도 야간자율학습이란게 있었다. 지금이야 저 ‘자율’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범위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절대 납득할 수 없었다. 자율 같은 소리…


 교실에 있기는 싫고, 그렇다고 째고 집으로 갈 수도 없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그래서 학교 안의 샤워실로 숨어들었다. 교내 샤워실, 용도는 명백했지만 그 존재의 이유는 그 누구도 몰랐던, 어둡고 더럽고 대놓고 버려진 장소였다. 즉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미리 변명하자면 15살의 김국주는 한심하기는 했어도, 결코 ‘일진’ 같은 쓰레기는 아니었다.

 일진, 그들은 뭉치지 않으면 뭣도 아닌 것들이라 늘 무리를 지어서 다녔다. 뭉쳐도 뭣도 아님. 종특으로는 바닥을 긁는 자존감과 폭발하는 열등감으로 지들보다 힘이 약한 친구를 곁에 둬야 안심을 했다. 하여 늘 원하지 않는 친구를 데리고 다니며 지들의 바닥을 드러내는 사회적 패배자들일뿐이었다.


 김국주는 그 정도의 쓰레기는 아니었다. 나는… 늘 내 단짝 친구, 은영과 단둘이었고, 우리는… 그냥 조금 아주 살짝 한심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야자(야간자율학습의 줄임) 째고 샤워실에서 뭘 했느냐?!? 책도 읽고, 글도 썼으며 믿기지 않겠지만 거기서 고난도 코바느질을 배웠고, 아쟁과 거문고 연주까지 들었다. 국악을 하는 친구가 연습실 가기 싫을 때마다 종종 놀러 왔다. 작은 문화센터나 다름없었던 그곳은 상상 이상으로 건전했다.


 어느 날 문센 놀이가 지겨워진 은영이 색다르고 재미있는 놀이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녀는 가방에서 수학익힘책을 꺼내는 것이었다?!?


 왓더… 친구야.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수학?!? 수학익힘??!!??? 그럴거면 그냥 야자를 해.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수학익힘책을 한 장 쭉… 찢었다?!? 와우!! …… 멋있다. 그리고는 한때는 수학익힘책이었던 그 종이 위에 사인펜으로 OX를 그리는 것이었다. 그녀가 하려는 재미있는 놀이, 지금은 식상하고 유치하고 고루한 유물이지만, 당시에는 겁나 신문물이었던… 바로 분신사바였다.

 하는 방법은, OX 가 그려진 수학익힘… 아니 종이 위에 둘이 펜을 맞잡고 주문을 외우면 된다.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잇데 구다사이.’


 뭔 말인지는 모른다. 대충 누군가한테 와달라는 뜻인듯한데… 이게 중얼거리다 보면 꽤 입에 짝짝 달라붙는 묘미가 있다.


 우와, 내 친구야. 그렇다고 교과서를 찢으면 어떡하니. 그래 뭐… 그냥 버리는 것보단 이렇게라도 쓰임이 있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구나.


 “야! 불 꺼!! 제대로 하자.”


 우리는 컴컴한 샤워실에서 수학익힘… 아니, 종이를 가운데에 두고 마주 앉았다. 어둡고 조용한 샤워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렸다. 우리는 펜을 맞잡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잇데 구다사이.”


 그냥 들을 때는 애들 장난 같이 유치하기만 했건만, 불 꺼놓은 샤워실에서 쟤랑 단둘이 외우니 꽤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당연히… 다행히… 펜은 움직이지 않았다.

주문을 반복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요지부동이었다. 하하하. 역시 전부 괴담일 뿐이었다. 아, 이게 뭐하는 짓인지. 더 이상은 시간 낭비라는 판단이 들었다. (어차피 매일이 시간 낭비였음.)


 “야! 고만하자! 귀신이고 나발이고 쫄아서 못 …”


 그때… 펜이 움직였다!!!?!?

 으어억!!! 우리는 엉덩이는 패대기쳤지만 펜만은 생명줄 쥐듯 꽉 쥐고 있었다. 그냥 집어던지면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서들었기 때문이었다.


  “야!! 질문 질문!!”


정신줄 잡자. 이건… 우리가 시작한 거다.

질문… 질문… 무슨 질문을 해야 하지? 그때,


 “오셨어요?”


은영이 등신 같은 질문을 했다.

움직이던 펜이 우뚝 멈췄다. 친구야… 뭐하는 짓인지. 그러자 펜이 다시 슬슬 움직였다. O 쪽으로… 우오오!! 우리는 그 후로 정신없이 시덥지 않은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00이랑 저랑 이러질 확률은 있을까요?” (당시 좋아하던 남학생.)


 X 쪽으로 움직였다. 췌… 거참 과하게 솔직하시네.

이번엔 은영이 질문을 시작했다.


 “저 남자 친구 언제 생겨요?”

 “잘 생겼어요?”

 “결혼은 언제 해요?”

 “자식은 몇이나 낳아요?”


 친구야, 너… 타로점 보니?

우리는 그야말로 돈이라도 지불한 것처럼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그러다가 문득… 몹시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그제서야… 은영이 물었다.


 “야… 이거… 니가 움직이는 거 아니야?”


와우, 우리가 그래서 단짝 친구인 것이다.

질문 수준 하며, 의심하는 시점 하며…


 “우리끼리 그러지 말고, 서로가 모르는 질문을 해보자.”


 하여 나는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를, 은영은 지 처음 생리 터진 날을?!? 물어봤다.

  

 “은영아… 내 친구야, 니 첫 생리 터진 날은 뭣 때문에… 무슨 이유로 기억하고 있는 거지?”

 “아?!? 나 기억 못 하는데?”

 “… 너도 모르는 걸 왜 쟤한테(?) 물어보는 건데?”

 “너만 모르면 되는 거 아냐?”

 “아니, 나는 몰라도 너는 알아야 확인이…”


아니, 됐다. 고만하자.

그리고 귀신님은 우리 집 비밀번호를 맞췄다!!!!

와… 나 비번 까먹을 때마다 너 부르면 되는 거니?!?


 우리는 그 뒤로 날마다 이 짓을 했다.

할 때마다 동일 인물… 아니, 동일 귀신이 나오는 듯했고, 우리의 분신사바 실력(?)은 나날이 향상되었다.


 은영이의 수학 익힘책이 절반으로 줄었을 때쯤, 더 이상 종이 위에 OX 따위는 필요 없게 되었다. 그 귀신 친구는 스스로 글자를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여 우리의 질문은 좀 더 복잡해질 수 있었다.


 “몇 살이야?”

 ‘14.’

 “우와!!! 우리보다 어리네???”

 ‘죽었을 때 나이. 살아있었다면 내가 더 많다.’


…… 와우, 빠른 81, 그냥 80, 이런 걸로 가타부타해본 적은 있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잠시 당황했다. 그런데 내세울 것이 나이밖에 없는 15살 중학생이 나이에서 밀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 상대가 귀신일지라도.


 “그러는 게 어딨어!! 14살이면 14 살인 거지!! 너!!! 내가 누나야!!!”


 우리는 그 후로 그 친구에게 꼬박꼬박 반말을 했다. 그렇다. 그냥 제정신이 아니었다.


 “니 이름은 뭐야?”

 “감긔신.”

(실제 저 때 종이 위에 적힌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여기다가는 가명을 쓰겠습니다.)


 “왜 죽었어?”

 “사후 세계는 있어?”

 “근데 왜 여기 있는 거야?”


 실로 간땡이가 배 밖으로 나온 질문들이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이 상황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친구의 장난, 또는 무의식 중에 움직이는 내 근육… 등등… 갖다붙일 수 있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 상황을 더 이상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이 터졌다. 우리가 드디어… 금단의 질문을 한 것이다. 그 어떤 이유도 갖다 붙일 수 없는 그 질문.


 “긔신아, 너… 미래는 예측할 수 있어?”


 그 긔신 친구(?)의 대답에 따라 이 이색 여행의 목적지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그가 맞추지 못한다면? 목적지는 아마도 남쪽… 제주도쯤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냥 재미있는 놀이를 한 셈 치면 된다. 물론 허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 이상 재미는 반감되겠지만, 그냥 그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그가 미래를 맞춘다면?!? 목적지는 북쪽… 북한이 된다. 한번 진입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다.

나는 그때 겨우 15살의 한심한 여학생이었으니까.

………


사랑하는 제 독자님께서 납량특집을 써보라고 권유하셨어요. 그래서 써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지네요.
하여 본 에피소드는 ‘재미있는 놀이 2’ (다음 주 월요일에 올라와요.)로 이어집니다.
울 독자님께서 이 글로 인해 즐거우셨기를…




 

설정샷입니다. 뒤에 귀신 역할이 김국주입니다.

마흔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이러고 놉니다.



소재가 참으로 우후죽순으로 생기더라고요.

하여 매거진 상관없이 매주 월요일에 글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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