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국주 Aug 30. 2021

<납량특집> 재미있는 놀이 2

직접 겪은 실화를 각색했습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울 독자님들 판단에 맡깁니다. 후훗.

본 에피소드는 1화와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book-kingkong/107




 “긔신아, 너… 미래는 예측할 수 있어?”


 우리는 결국 금단의 질문을 해버렸다. 그 뒷감당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오늘만 사는 인간이니까. 잠시 후 수학익힘책장 위에 글자가 끄적여졌다.


 “먼 미래 말고, 가까운 미래.”


가까운 미래라… 오케이, 그럼 이건 어때?


 “내일 어때?”


종이 위에 커다란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우리 내일 기말고사 보거든. 나 평균 몇 점?”


 지금 생각해도 완벽한 질문이었다.

내일 치를 시험 점수,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조작도 제어도 불가능했다. 결과가 나오면 두 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완벽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자, 니가 진짜라면 들어와 봐.

 (고 나발이고 내일이 기말고사인데 이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게 더 소름 끼침.)

그때 종이 위에 두 개의 숫자가 적혔다. 92.


이 숫자를 본 순간 나는 육성으로 웃었다.

뭐야, 울 엄마 희망 점수 말고… 실제로 내가 내일 받을 점수를 적으라고! 내가 지금까지 평균 80을 넘어본 적이 없건만, (자랑이다.) 내일 갑자기 92점이 나온다고? 심지어 너랑 쳐노느라 공부 1도 안 했는데? 적당히 그 근사치를 적어야 내가 긴장이라도 하지 않겠니?


 “친구야, 모르면 모른다고 그냥 솔직하게 말해도 돼. 아니면 내 중간고사 점수랑 비슷하게라도 적던가. 그래야 때려 맞출 확률이라도 있지.”


하… 김샌다. 때려치우고 그냥 집에나 갈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 종이에 이런 문장이 적혔다.


 “내일도 그런 말 나오나 보자.”


 와우, 이 자식… 자신만만한데? 그런데 왜 내 점수를 니가 자신 있어하니? 나도 자신 없는데…


그리고 그는… 마지막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


 ‘어린 왕자, 217p. 9번째 줄.’


 뭐? 어린 왕자? 너… 문학 소년이었어?


 다음 날, 기말고사를 치렀다.

 솔직히 그 시험이 평소보다 더 쉽게 느껴졌는지 어떤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험이 끝나고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가채점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정확히 92점을 받았다!!

 뇌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그가 실제로 미래를 예측한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나오도록 뭔 수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 진실이던 간에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직감했다. 지금까지 한 짓을 그저 한낱 장난으로 치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젠 돌아올 수 없다. 시작도 내가 했고, 끝도 내가 냈다. 그것도 아니면 정말 마지막 가능성… 귀신이고 나발이고 그딴 거 없고, 그냥 내 무의식이 내 평균을 무려 15점씩이나 올려줬을 수도?!? 물론… 그게 가장 비현실적이었다.


 나는 그날 바로 귀가했다.

다시 샤워실을 찾아갈 멘탈따위는 없었다. 그를 만난 지 두어 달 째, 드디어 그가 무서워진 것이었다.


집에 가니 아부지께서 tv를 보고 계셨다.


 “딸 왔어? 시험 잘 봤어?”

 

 아부지 얼굴을 보니 괜스레 눈물이 나려 했다. ‘아빠… 나… 시험 겁나 잘 봤어. 근데 그 사실이 무서워…’

내 표정을 보신 아부지께서 말씀하셨다.


 “딸… 시험 망쳤어? 근데 우리 딸이 시험 점수를 신경 쓰는 학생이 아닌데… 뭐 얼마나 망쳤길래 그래… 괜찮아. 흔히 있는 일이잖아.”


 아니, 무슨 아빠가 저렇게 쿨해.

 그리고 아빠… 내가 시험 점수를 신경 쓰는 학생이 아니라니요. 심지어 흔히 있는 일이라니요. 어쩜 그리 딸을… 잘 아십니까. 큿.


  “아니요. 시험은… 엄청 잘 봤어요.”

  “정말? 우리 딸 장한데? 아빠 약속 기억하지? 90점 넘으면 소원 들어준다고 했잖아.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간 90점 넘을 거야. 우리 딸 최고야.”


 그렇구나. 아부지랑 그런 약속을 했었구나. 잊고 있었다. 나에게 90점은 워낙에 넘사벽이었던지라 머리에서 지워버렸었다. 하하하.


 “아빠, 그 소원… 이번에 들어주세요.”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받아낼 건 받아내야지. 그러자 이번엔 아부지께서 진짜로 놀라신 것 같았다.


 “뭐?!?! 우리 딸 90점 넘었어?? 진짜?? 왜??”


 왜라니요. 점수 오르는데 공부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나요? 아… 나에게는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하는구나. 이번엔 그 이유가 꼭 필요하구나. 진짜… 도대체 왜였을까.


내 소원 뭉치 1996-2010

내 소원은 저 녀석이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뭉치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나는 며칠간 사랑스러운 저 솜뭉치랑 알콩달콩 하느라 샤워실 일 따위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이 뭔가 이상했다. 데려올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집에 오고 나서부터는 뒷다리 두 개를 못 쓰는 것이었다. 마치 다리가 없는것마냥 질질 끌고 다녔다. 병원을 데려가 봐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더 이상했던 것은… 산책을 할 때는 다리 4개를 잘 사용하다가, 집에만 오면 뒷다리를 저는 것이었다. 말 못 하는 짐승이니 이유를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일이 터졌다.

 나는 평소처럼(?)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렇다. 그날 이후로 차라리 그냥 야자를 하기로 했다. 평소 같았으면 꼬리를 흔들며 고공점프를 해서 내 안면에 지 혀를 닿게 해야 직성이 풀리던 녀석이 바짝 엎드려서 내 옆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짖는 것이었다. 꼬리를 흔들며… 마치 내 옆에 누가 있다는 듯이. 잔소름이 돋으며 순간…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그다음 날, 싫다고 발악하는 은영을 질질 끌고 샤워실을 찾아갔다. 그리고 백지를 가운데 두고 그를 부를 준비를 했다. 더 이상 쓸 수학익힘책도 없었다. 조용해서인지 아니면 처음으로 맞닥뜨린 공포심 때문이었는지… 서로의 심장박동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아니, 마치 심장이 펜을 잡은 내 손목으로 이동한 듯 백지까지 떨려왔다.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잇데 구다사이.”


 하지만 펜은… 움직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부르지 않아도 펜만 쥐면 움직였는데…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아무리 불러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득… 그의 암호 같던 문장이 떠올랐다.

 

  ‘어린 왕자, 217p. 9번째 줄.’


 미친 듯이 집으로 뛰어갔다. 집에 가니 엄마가 삼겹살을 굽고 계셨다.


 “국주 일찍 왔네? 잘했다!!! 저녁으로 삼겹살 구워 먹자. 너무 많이 사서 걱정했는데 우리 국주만 있으면 걱정 없지!”


 와우!!! 삼겹… 아니… 내가 있으면 걱정이 없다니요. 내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리고 딸이 야자를 째고 왔는데 잘했다니요. 나를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어머님. (어쩐지 제 미래를 보는 듯합니다.)


 아 맞다!! 어린 왕자!!

 그걸 어따 뒀더라. 어린 왕자… 어린 왕자… 예전에 한참 좋아했어서 외우듯이 읽은 책이었는데, 217페이지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허겁지겁 펼친 217페이지의 9번째 줄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나는 오늘 내 별로 돌아가.


어린 왕자가 비행사에게 이별을 예고하는 장면.

어린 왕자는 자신의 하나뿐인 꽃에게로 떠나갔다.

그리고 내 샤워실 메이트는 나에게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을 안겨주고 떠나갔다. 작별인사도 못 했는데…


그리고 217 페이지의 마지막 줄…

내가 갈 길이 훨씬 더 멀고, 더 힘들어.


부디… 너의 갈길이 멀고 힘들지 않았기를.





 덧붙.


 나중에 안 사실인데, 저 솜뭉치가 뒷다리를 집에서만 질질 끌었던 이유는 마룻바닥이 미끄러워서였어요. 뒷다리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던 거죠. 앞발만으로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요. 덩치가 커지고 그 짓을 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해니 집에서도 발 4개를 다 쓰더군요.

네, 그냥 지 주인 닮아서 극도로 게을렀던 거였어요.


 그렇게 뭉치는 우리와 15년을 함께했습니다. 아니, 제가 도중에 대학을 가면서 집을 떠났으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 부모님과 함께였어요.


우리는 더 이상 강아지를 키우지 않아요.

엄마는 뭉치가 떠나고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셨다며 섣불리 다른 생명체를 못 데려오십니다.


 저는… 이미 집에 짐승이 두 마리가 있는지라… 그것만으로도 너무나도 충분하여 못 데려옵니다.


 착하고 귀엽고 게으르고 예쁜 내 강아지 뭉치는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라 믿어요.

 그리고 나에게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안겨준 내 샤워실 메이트도…




매거진 상관없이 매주 월요일에 글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허접 납량특집> 재미있는 놀이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