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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Nov 01. 2021

<뮤직복싱> 유산소 운동의 끝판왕

“너 유산소 2시간 할래? 근력 2시간 할래?”


라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근력이다.


그렇다면 ‘저강도 유산소’ vs ‘고강도 근력’ 은?

그래도… 근력이다. 강도 따위 중요하지 않다.


물론 많은 헬창들이 근손실 때문에 유산소를 싫어한다. 그런데 내 경우는 그 이유가 살짝 다르다.

나는 그냥 정말 유산소가 너무 힘들다.


이 세상에는 인터벌 트레이닝이라는 무시무시한 것이 있다. 고강도 유산소 운동과 휴식기를 반복하는 것인데, 고강도일 때는 심박수를 130-150까지 끌어올려야 하고, 휴식기에도 120은 유지해야 한다.

하… 그냥 미친 짓이다.


그런데 그 미친 짓… 과연 남의 이야기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하는 유산소 운동은 심박수가 몇까지 올라갈까? 그래서 측정해봤다.

3곡째 130, 5곡째 150까지 올라가다가 7곡째… 오 마이… 170을 찍고 마지막 열곡째 다시 150이 되었다. 즉 평균은 150이고, 최고치는 170이었다.

왓더… 나 그동안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이쯤 되면 질문이 들어온다. 그래, 그래서 니가 하는 그 미친 유산소 운동이 뭔데?


내가 하는 그 미친 유산소… 바로 뮤직복싱이다.

그렇다면 이 뮤직복싱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신나는 음악과 클럽 조명을 곁들인, 복싱 동작을 베이스로 한 춤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일단 추는 내내 발뒤꿈치를 세우고 발목에 용수철이 달린 것처럼 퐁퐁 뛰며 경쾌하게 스텝을 밟는다. 그리고 주먹에 무게 중심을 실어야 적의 코를 깨부술 수 있기 때문에 팔을 뻗을 때마다 허리도 함께 완벽하게 비튼다. 시선은 주먹이 날아가는 쪽으로 고정한다. 훅을 날릴 땐 실제로 적의 턱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강하게 날린다. 그렇다고 진짜로 휘날리면 스승님께 혼난다. 주먹에 적의 턱이 실제로 박힌 것마냥 주먹을 끊어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허공에서 주먹을 끊나? 있는 힘껏 날리던 주먹을 그보다 더 강한 힘으로 도로 땡기면 된다. 그리고 왜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무릎도 가슴팍까지 올려야 하고, 간헐적으로 고공 점프도 해야 한다…


… 고 나발이고, 나는 그냥 저세상 텐션 담당이다.

사이다 한 사발에 에너지 드링크 한 병을 말아서 원샷 한 듯한 이계 에너지의 발원지가 되어 끈에 매달린 연극 인형처럼 훨훨 날아다니면 된다. 그게 내게 주어진 임무다.


와우! 그렇게 힘들면 니가 좀 적당히 살살 뛰면 되잖아?


아… 그래… 그럼 되겠지.

그런데 여기에 사소한 문제점이 하나 있으니, 내 자리가 맨 앞 센터 자리라는 것이다. 실제 맨 앞 센터 자리의 부담감은 공연할 때의 부담감보다 더 크다. 공연이야 내 맘대로 해도 되지만, 이건 내가 안무를 틀리면 뒤로 줄줄이 다 틀린다. 가장 난감할 때는 스승님과 내가 동시에 틀릴 때다. 모두 왼쪽으로 하는데, 나랑 스승님만 오른쪽으로 하면 전원 공황에 빠진다. 내가 맞는 거 같지만 왠지 너를 따라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럴 때마다…


 ‘아오!! 스승님!!! 같이 틀리면 어떡합니까?!!’


 라고 육성으로 말하면 나만 죽기 때문에 속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다… 그날이 왔다.

한 시간의 고강도 근력을 완료한 후, 또 다른 한 시간의 유산소를 앞두었지만, 죽었다 깨나도 더 이상은 불가하다고 느꼈던 그날이…

제정신이었다면 스승님께 허락을 구했겠지만, 정줄까지 놓은 그때의 내가 선택한 최악의 수는… 그냥 도망가는 것이었다.


그래. 튀자.

지금 튀면 내일 죽겠지만, 안 튀면 오늘 죽는다.

오늘까지만 살아도 되잖아? 내일의 해가 안 뜨면 되는 거잖아?! 안 뜨면… 안 뜰… 리가 있나. 지구는 자전을 했고, 해는 떴으며, 스승님께 연락이 왔다.


 “도망간 것을 후회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하… 삶이 그대를 힘들게 할지라도 참고 견뎌라. 그렇지 않으면 그보다 더한 고통이 오고야 말리니.


나는 정말로 후회했다. 조상님께는 개겨도 운동 스승님께는 개기지 말았어야 했는데….

심지어 이게 너무… 오래갔다. 근력 운동 시간에 바닥을 기어 다닌 게 며칠이고, 절대로 말없이 튀지 않겠노라는 약속은 도대체 몇 번을 했는지… 하하하.


하염없이 사라지는 고통이 지나버리고, 한없는 근육통으로 남아도, 나는 감히 튄다는 옵션을 뇌에서 삭제했다. (푸시킨, 죄송합니다. 아름다운 시를 자꾸 이따위로 써먹어서…)


그리고 두어 달 후, 인바디 결과를 보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유산소 비율을 조금만 덜 하셨어도 근육이 여기서 더 붙었을 텐데요.”


와우! 유산소 비율이요? 지금 제가 잘못 들었나요??

그거… 뮤직복싱 말씀하시는 거지요? 그거 쨌다가 스승님께 협박에 보복까지 버무려져서 잘근잘근 다져졌던 추억이 있거늘… 아니, 아닙니다. 내가 운동 처돌이들의 두 개의 인격을 모르는 바도 아니건만… 괜한 말을 해서 굳이 스승님의 또 다른 인격을 깨울 필요는 없겠지요.




덧붙1.


스승님의 저 말이 유산소를 줄이라는 말이 아니라, 근력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의미였음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네, 제가 생각이 한참 짧았지요.

내 스승님께서 그리 관대하신 분이 아니거늘…


글은 저렇게 징징거리며 적었지만, 사실 울 스승님과 운동한 결과는 너무 좋았습니다. 체지방은 9킬로 감량에 근육은 1킬로 증량했으니까요.

유산소와 근력의 최고의 케미였달까요. 


절대로 이 글을 보여드리진 않겠지만, 스승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덧붙2.


할로윈 이벤트로 스승님 몰래 분장을 하고 갔습니다. 이렇게 가면 운동을 좀 덜 할 줄 알았는데…


가오나시, 마녀 데드 중량 40 치다.

얄짤 없더군요.

땅데드는 에누리 없이 평소 중량 그대로 쳤고,

심지어 내 사랑 가오나시는 저게 35kg라고 알고 있습니다.


미안해. 저거 사실 40이야. 난 35가 영 가벼워서…


사실 마법이었던 거죠?

풀업 할 때는 다리 사이에 빗자루만 끼우면 마녀가 천공을 나는 자태였으며, (내 사랑 처키는 그냥 누가 내던지는 자태임)


주먹으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뮤직복싱은 머리카락과 정줄을 허공에 흩뿌리며 이계의 탠션으로 날았건만, (토시오는 땀으로 분장과 함께 승화했으며, 투룡들은 모터와 영혼을 함께 불태움)


우리 스승님 말씀하시길…


“국주 회원님, 오늘은 열심히 안 하시네요.”


하… 열심히 안….

스승님… 혹시 저 시계 보이십니까?

저 9시 41분이… 오후 9시 41분 아니고, 오전 9시 41분이란 말입니다. 오전 9시부터 저런 텐션을 발화하는 팀이 이계에 우리 말고 또 있는 줄 아십니까?


라고 육성으로 말하고 싶었지만,


“저녁에도 오실 거죠?”


라는 질문에 그저 공손하게 “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굳이 반발해서 스승님의 또 다른 인격을 깨울 필요는 없으니까요.


우와… 이 글은 스승님께 들키면 진짜 위험하겠네요.

무덤까지 가져가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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