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나빠서 수학을 못 한다구요?!?

by 김국주

“임신 중에는 술 마시면 안 된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엄마가 하신 말씀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너무나도 진지하게 하시기에 좀 궁금했다.


“엄마… 내가 임신 중에도 술을 마실 것 같아요?”

“응.”


단호하셨다.

그런데… 스트레스, 담배, 약… 임신 중에 안 되는 것은 수두룩 할 텐데 왜 하필 술인가. 혹시 뭔가 다른 이유라도 있을까 싶어서 물었다.


“엄마, 왜 술은 안 되는데요?”


하하. 임신 중에 왜 술은 안 되냐니… 지극히도 당연한 질문을 던지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엄마는 계속 진지하셨다.


“애기 머리 나빠져.


으흥?! 애 머리가 나빠진다고?

뭐지? 이 디테일하고도 확신에 가득 찬 대답은?

“에이… 아니에요. 술 마신다고 무슨 애기 머리가 나빠져요. 다른 문제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 머리는…”


그랬더니 엄마가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아녀. 나빠져.”

“…. 아니, 그런 말은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데요?”


잠시 머뭇머뭇하시던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 내가 너 임신했을 때 술을 좀 마셨거든.”


아하!? 응?!?? 왓?? 뭐라고요??

살짝 버퍼링이 왔지만, 저 말의 의미는 명백했다.

엄마는 나를 임신하셨을 때 음주를 하셨고, 그로인해 내 머리가 나빠졌다고 믿고 계셨다. 심지어는 그것을 몹시 반성 중이시며, 딸은 당신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계셨다.


그런데 엄마… 언제는 나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공부를 못 하는 거라면서요.


“…… 그… 임신한 거 모르고 마신거여. 우리가 살짝 속도위반을…”

“오케이. 거기까지.”


느닷없이 고백하고, 즉시 변명하지 말아주세요.

내 머리가 나쁜 것이 임신 중 음주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고여사님께 차마… 머리는 유전이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엄마, 내 머리나 엄마 머리나 도찐개찐일 텐데요.


그렇다. 이유가 무엇이건 나는 머리가 나쁘다.

뭐 물론… 머리가 나쁘다는 판단 기준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암기력? 이해력? 기억력? 문제해결력? 아이큐?? 고 나발이고 나는 전부 딸린다.


고 2 때였다. 지금도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우리 학교에서는 아이큐 테스트를 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부모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거면 왜 한 건지…


하라고 해서 했고, 했더니 교무실로 호출당했다.


“김국주!!! 넌 왜 매사가 장난이냐??”

“샘!!! 억울합니다!!!! 내가 그런거 아니에요!!”


교무실로 호출당하면 이유가 무엇이건 일단 ‘나는 억울합니다. (그것이 무엇이건) 내가 그런 것 아닙니다.’ 라고 우기는 것이 상책이다. 왜 그러시냐고 물어봤자 불 난데 신나 뿌리는 격이 될 뿐이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억울하긴 개뿔!! 아이큐 테스트 점수가 왜 이 모양이야??”


응?!? 비로소 진짜로 억울해졌다.

아니, 샘… 내 아이큐 상태를 나한테 따지시면…

아, 물론 내 아이큐니까 나한테 따지시는 게 맞겠지만, 그래도 명백하게 말하자면 내 아이큐는 내 잘못이 아닙니다. 엄마 잘못… 아니, 조상님 탓입니다.


“내가 살다 살다… 아이큐 테스트 점수 때문에 학생을 호출해본 적은 처음이다!!! 너 장난치지 말고 다시 풀어!!”


하… 샘… 저는 결단코 장난친적이 없습니다. 아니, 애초에 이게 장난이 가능합니까?


“샘, 점수가 몇이 나왔길래 재시험입니까? 아니, 이런 거 재시험 봐도 되는 겁니까? 이건 형평성에…”


“형평성이고 나발이고!!! 엔간해야 그냥 넘어가지!!! 결과는 공개할 수 없다!!”


허?! 나도 명분이 있어야 재시험을 볼 것 아닌가? 게다가 아이큐 테스트가 재시험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그냥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재시험에 대한 이유가 명확해야 치를 겁니다.”


그리고 30초 뒤, 나는 닥치고 재시험을 치렀다.

아이큐 89… 선생님의 입에서 똑똑한 짐승 수준의 숫자가 튀어나온 것이다. 절대로 내 아이큐를 89로 박제할 수는 없었다. 그럴 리 없다! 저 정도 지능이면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었을 텐데 나는 아주 행복했다. (당연히 저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힘들었죠.) 장난기 싹 빼고 진지하게 재시험을 봤다. 그렇게 얻은 결과는 91이었다. 하하. 젠장.


사실 나만 조용했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묻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저 숫자를 내 입으로 떠벌리고 다녔다. 좋지 않은 것이라도 유니크하기만 하면 자랑이 되는 줄 알았던 철없던 나이였다. 그렇게 내 별명은 ‘돌고래’가 되었다. (돌고래 아이큐가 80-90)


그때가 고 2 초반이었다.

빠르게 인정했다. 내 머리가 나쁘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에피소드들은 차고 넘쳤다. 인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 남들보다 머리가 나쁘다면 남들보다 더 빡세게 하면 된다. 아이큐 91. 이 작은 숫자가 망아지 같던 나를 앉은뱅이로 눌러앉혔다. 나는 그렇게 2년을 오로지 책상 앞 의자에만 앉아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 그지없는 그때의 2년은 그런 사소한 이유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체력 몰빵캐였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것 같습니다.)


답을 찾는 능력이 딸리면 답으로 가는 길에 익숙해지면 된다. 아무리 길치라도 수백 번을 다녀본 하굣길을 헤매는 사람은 없다. 내 집 가는 길은 절대로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답으로 가는 길을 내 집 가는 하굣길로 만들자. 그렇게 나는…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닌 ‘체력으로 하는 훈련’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수학을 먼저 시작했다.

정석만 다섯 번을 풀었다. 그러자 문제를 보면 단원이 보였고, 단원이 보이면 방법이 보였으며, 방법이 보이니 답이 보였다. 그것은 암산과는 달랐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보여 주 듯 보여주는 이미지 같은 것이었다. 그 후로는 서점에서 판매하는 수학 문제집을 무작위로 구입해서 풀기 시작했다. 속도가 빨라지면서 문제집을 해치우는 기간이 한 달에 한 권, 일주일에 한 권, 3일에 한 권으로 짧아지기 시작했다.

그 시기쯤 나는… 학교 시험에 출제되는 수학 문제 따위는 더 이상 틀리지 않게 되었다. 드디어… 수학 답 찾는 길을 하굣길로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한 과목씩 정복했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이외엔 공부만 했다.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몸이 힘들지는 않았다. 체력이 좋았으니까.

마음이 힘들지도 않았다. 슬럼프도 없었다. 나는 그저 세상과 가벼운 게임을 하고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 게임을 상당히 즐기고 있었다. 치고보면 매사가 장난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영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2년 후, 수능을 치렀다.

훈련이 불가한 언어영역과 외국어 영역은 사실상 패배에 가까웠지만, 결과적으로 수능 총점을 약 150점가량 끌어올렸다. 그리고 꽤 괜찮은 대학에 합격을 했다. (이 괜찮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하)


그리고 그 때 내 별명은 ‘수학 답안지’ 였다. 더이상 나를 ‘돌고래’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긴… 돌고래보다도 수학을 못 하면 안 되니까.


우리 이제… 머리 나빠서 수학 못 한단 핑계는 대지 마십시다.



덧붙.


밖에서는 머리 나쁜 것을 어느 정도 숨길 수 있습니다. 왜냐면 딱히 머리 쓸 일이 없거든요.


그런데 함께 사는 사람에게까진 불가능하더라고요.

살다 보면 툭툭 튀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신랑이 놀립니다. 하?!?


그런데 여보야….

그러는 너는 왜 나랑 같은 대학에 들어갔을까요?


2018년 5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들은 아빠를 닮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미리 미안하다. 얘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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