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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May 07. 2022

아빠 유전자 몰빵 아들 녀석.

“엄마, 나도 향기로운 샴푸 써보고 싶어.”


아토피 피부 때문에 엄마표 비누만 쓴 지 언 10년…

드디어 도통이가 이 세상에는 다른 샴푸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거의 10년 만에…


그래서 사줬다. 향기로운 샴푸…

물건이 오자마자 목욕하겠다고 신난다며 욕탕으로 들어간 도통이… 허… 녀석…

나름 흐뭇했다. 그런데…


아빠 손에 잡혀서 욕탕으로 끌려들어가는 도통이 포착

왓더…. 녀석이 다 씻었다며 이 꼬라지로 나왔다?!?!

이건 뭐… 놈의 정수리 위에 향기로운 샴푸의 거품이 날것 그대로 뭉게뭉게 얹어져 있는 수준이었다.


하… 저렇게 해야만 향기가 남는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동안 내 비누도 안 헹궜던 것인가.


녀석은 그렇게 욕탕으로 도로 끌려들어 가서는 아빠한테 샤워에 관한 참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뭔가 이상했다. 녀석의 비누가 줄지를 않았다. 놈은 욕조 안에서 사색을 즐기는 녀석이다. 그만큼 비누도 듬뿍 쓴다. 비누가 줄지 않을 리 없었다. 머리는 향기로운 샴푸로 감더라도 몸은 비누로 씻을 텐데…

그래서 녀석에게 물었다.


 “도통아…. 너 비누는 안 써?”

 “응!”

 

응?? 왜지??


 “그래… 그럼 몸은 뭘로 씻어?”

 “향기로운 샴푸로!!!”

 “아… 도통아. 향기로운 샴푸로는 머리만 감고, 몸은 비누로 씻어야지.”

 “아니야!! 아빠가 가르쳐줬는데 향기로운 샴푸로 머리를 감고 그 내려오는 거품으로 부랴부랴 몸을 씻으면 된데!!!”


으흥?? 뭐라고????


 “아빠가 그러는데!!! 향기로운 거품이 다 내려오기 전에 다 씻어야 해서 엄청 서둘러야 한데!!! 막 바쁘게 씻어야 한데.”


아하!! 여보야!! 그렇군요!!!!

아이 목욕을 저따위로 가르치셨군요.


 “그래… 도통아, 근데 왜 그렇게 늦게 나와?? 서둘러 씻는다며.”

 “응!!! 생각 좀 하느라!!”


아니, 그러니까 니 놈이 생각할 게 뭐가 있냐고.


 “그… 생각… 하는 동안 비누칠을 하면 어떨까?”

 “아냐!!! 그럼 생각에 방해가 돼!! 아빠도 늘 이렇게 씻는데!!”


왓더… 뭐?!?!? 내 신랑도 그 따위로 씻는다고?!?!

이런… ₩&&&₩&@ 내 강아지 새끼들이….


이쯤 되면 도통이 녀석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 신랑 쪽이 더 급했다. 어쨌든 나랑 한 이불 덮는 쪽은 그쪽이 아닌가.


하여 그날 밤, 신랑에게 다정하게 충고했다.

한 번만 더 그따위로 씻고 나오면 엉덩이를 발로 차서 침대 밑으로 다 쓸어버린다고…


 “여보야, 내 하체가 그 일을 못 할꺼같아요? 나 백스퀏 중량 xx kg.”


아마도 무려 9년 전……. 우와….

도통이는 아빠를 닮았다.

성격도 외모도 취향도 체격도… 유전자가 아예 그쪽이다. 심지어는 또 지 아빠가 그렇게 키우고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녀석도 아빠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라고 믿었다.


며칠 전이었다. 잠들기 전에 녀석이 속삭였다


“엄마, 나 내일 수학 시험이야.”


으르흥??? 그래서 나더러 뭐 어쩌라고……


“근데 우리 도통이… 지금 엄마랑은 3학년 2학기 꺼하고 있는데 4학년 꺼 시험 가능해?”


 “응!! 엄마표 수학보다 학교 수학이 백배 쉬어. 백점 받아올게요.”


 허… 나 방금 뭔가 굉장히 믿음직스러우면서 신용도는 떨어지는 대답을 들은 것 같은데??


 “……. 백점 못 받아오면 나한테 뭐 해줄 건데?”


그랬더니 녀석이 자신 있게 말했다.


 “흠…. 아빠를 넘겨줄게!!”


어… 응?? 아니, 늬 아빠가 무슨 전당포 물품이니?

맡기고 넘기고 하게?!? 그리고 그거 원래 내 거야.

그래도 웬만한 자신감 없이는 저런 발언은 못 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허락했다. 콜!!

미안해. 여보야. 잠깐 맡길게


그리고 며칠 후… 녀석이 시험지를 가져왔다.

점수는 무려… 60점이었다.  

하… 엔간히 가깝기만 해도 넘어가 주려고 했다.

그런데…. 60??!?! 100보다는 50에 더 가까운 숫자가 아니던가… 이쯤 되니 녀석이 고의로 아빠를 처분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그렇게 원래 내 거였던 내 신랑은 도로 나한테 돌아왔다.


그러게 여보야 내가 말했잖아요.

자식 놈들 다 필요 없다고…


어휴… 누구 닮아서는…




덧붙.


글은 이렇게 썼지만 사실 도통이와 아빠의 케미는 최고입니다. 녀석은 많은 것을 아빠한테 배우고 있어요.


그중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바로…


내 쥬크박스

요 우쿨렐레입니다.


지금은 뭐 거의 버스커 수준이죠.

부자간의 케미가 이루어낸 성과랍니다.


심지어는 반 친구들 앞에서도 공연을 했어요.

그리고 저는 이 영상을 보고 3학년 *반 친구들과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고마워.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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