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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Sep 25. 2023

운동하는 여자,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

에필로그

“여보야, 나 이제 더 이상 병원 안 와도 된데.“


 내 신랑이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4년 전 그는 침샘암 확진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큰아이의 수영 대회가 열렸다. 그는 그 대회 참관을 거절했다. 아이의 사소한 일상을 보고 자신이 무너질까봐… 아이 앞에서 울게 될까 봐 두렵다고 했다. 세상에서 아빠를 제일 좋아하는 그 아이는 그날 레일에서 꼴찌를 했다. 그리고 참가상이나 다름없는 메달을 흔들며 나에게 뛰어와서 자랑을 했다. 나는 그날 아이의 해맑은 미소에 마음이 무너져 몰래 울었다. 그리고 아이가 메달을 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그에게 보여주었고, 그도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생계와 아이를 위한 일을 제외한 모든 활동을 멈췄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그가 ‘나는 근육질 여성이 좋다.‘ 라는 되지도 않은 이유로 나에게 운동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무시했다. 그러자 그가 ‘죽어가는 사람 소원이다.‘ 라는 사실상 협박으로 노선을 전향했다. 그 뒤로도 뭐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 3개월 차… 내가!! 여기서!!! 도대체!!!! 왜!!! 씨발라먹을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인지!!! 당장 이 짓을 그만둘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운동 6개월 차… 강도가 조금씩 높아지면서 운동하는 순간만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생각이 사라지자 차차 견딜만 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빠질 핑계를 찾았다.

운동 1년 차… 점점 스며들었다. 알고 보니 운동이란 친구가 생각보다 괜찮은 친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왠지 얘랑 친해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어느새 나는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주종이 바뀌었다.

운동은 내 삶이 되었고, 나는 어느새 책보다도, 수학보다도, 그리고 육아보다도 철봉이 더 어울리는 여자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나를 살림하는 여자가 아니라 운동하는 여자로 각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턱걸이 횟수에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철의 노예가 되어있었다.


2년 전의 나는 스퀏이 뭔지도… 아니, 풀업이 뭔지도 모르던 인간이었다. 사실상 바벨도 덤벨도 그때 처음 만져봤다. 심지어는 집에서 입는 기모티를 그대로 입고 운동을 가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집에서도 운동복을 입고 있다. 내 손바닥의 재질은 철봉의 그것과 흡사하여 천연 그립의 역할을 해주며, 핏줄을 밀어내는 전완근은 천연 손목 보호대 역할을 해준다. 하체는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해도 데드리프트는 내 체중의 두 배까지는 들었다. 그리고 풀업으로는…


전국 1등도 해보고 2등도 해봤다.

따온 메달들은 애들 장난감통 속에 던져져 있다. 저것들의 사이즈가 커서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 친구들은 대충 우리 아이들에게 접시 또는 유에프오 등의 역할을 해준다.


첫 번째 대회를 마쳤을 때 막둥이가 이렇게 말했었다.


“엄마, 우리 집은 아이가 둘인데 왜 메달은 하나예요?”


어?? 아이 수량이랑 메달 수량이 뭔 상관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야 엄마가 대회를 한 번만 나갔으니까??”


그러자 막둥이 놈 말하길…


“그럼 대회 또 나가서 똑같은 거 하나 더 얻어와요.”


이 새끼야…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아냐?


“근데… 엄마가… 같은 색으로는 힘들 거 같은데?”


“색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크기만 큰 걸로 가져오면 돼요. 기왕이면 파란색으로 부탁해요.“


그렇게 해서 가져온 은메달이었다. 색은 상관없다던 막둥이는 은메달을 보자 금보다 이게 더 예쁘다며 몹시 좋아했다.


어느 날 동생이 장난감통 속의 메달을 보고 물었다.


“언니, 힘들게 딴 메달을 저렇게 함부로 둬도 돼?”

”하하… 애들이 좋아해서… 하하…“


어쩌겠는가… 나는 풀업 하는 여자이기 이전에 두 아이의 엄마인 것을… 내 소중한 메달이 벽에 얌전히 걸리는 것보다 내 아이들의 비행접시가 되는 것이 더 기쁜 그런 평범한 엄마말이다.


이거 들고 지하철 탐. 부끄러움

언젠가 신랑이 말했다.


“우리 여보야, 진짜로 대단하다.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무슨 그런 말씀을…

내가 누구때문에 이 짓을 시작했는데…


4년간 암세포와 싸웠을 그대, 내 신랑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QnA Time

Q. 자발적으로 시작한 운동도 아닌데, 계속할 예정인가요?

A.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이제 더이상 중요하지 않아요.

가장 힘들었던 때부터 기나긴 치유의 시간을 거쳐,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 한 그 시간이 저에겐 너무 소중합니다. 더불어 운동과 함께하는 이 삶을…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요.

저는 이미 철의 노예인걸요.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A. 네, 저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소재로 재미있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런 작가 되고 싶습니다. 마음이 힘든 시기에도 제 글을 읽는 순간만은 웃게 해 드리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독자에게 힐링이 되는 작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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