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긴장해도 돼.”
유난히 긴장을 많이 하는 나에게 아들놈이 한 말이었다. 아니, 유난히 긴장을 안 하는 아들놈이 나에게 한 말이었다.
지난 4월 스트리트 워크아웃 대회 여성 풀업 종목으로 출전했었고, 어느새 또 두 번째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아직 출전여부조차 결정하지 않았건만…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긴장부터 됐다.
“엄마, 뭐 하러 긴장을 안 하려고 노력해? 그건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긴장해도 돼. 그런다고 결과는 안 바뀌어.“
아들놈 키워놨더니 이제는 꽤나 괘씸하다.
아들놈의 열렬한(?) 응원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회는 출전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지난 대회를 마치고 겨우 넉 달이 지난 시점이었고, 그 텀이 너무 짧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였고,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여보야, 나 이번대회 안 나갈까 해요. 또 이길 자신 없어요. 저번에 1등 했는데 굳이 나가서 지고 올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그렇다. 그저 자신이 없었다.
특히 지난 대회 때 실력이라기보다는 잭팟을 터뜨렸다고 믿고 있었기에 더더욱 자신이 없었다. 잭팟이 자주 터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랬더니 신랑 말하길.
“여보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매번 금만 따서 금메달리스트인 건 아니야. 너 나가도 4월 금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금에 은이 추가되는 거뿐이야. “
사실 은도 자신 없었지만 무려 올림픽 선수들과 비교를 당해서일까. 나는 그만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 와이프가 그저 몹시 손쉬운 팔랑귀라는 사실을…
그런데 막상 대회를 목적으로 훈련을 하니 철봉 아래가 뜨거운 불구덩이처럼 느껴졌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면서, 아니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서 더더욱 그러했다. 나에게 행복을 주었던 4월의 금메달은 어느새 나의 머리통을 옥죄는 금빛 긴고아가 되어 있었다.
대회는 2분이면 끝난다.
라고 되뇌면서도 그 2분을 위해서 철봉을 잡고 내 무겁디 무거운 몸뚱이를 끌어올리는 지루하고 지난한 행동을 매일매일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했고, 그래서 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몸이 힘든 건 괜찮았다. 하루하루 업다운되는 개수 때문에 멘탈까지 파스스 바스러졌다.
“여보야… 뱁새가 황새 따라가느라 힘드네요. “
“누가 뱁새고 누가 황새지?”
“내가 뱁새고… 있어요… 황새…“
“여보야… 니가 말하는 황새가 누군지는 몰라도 너는 40대고 애엄마고 가정주부야. 남들이 보기엔 너도 씹황새(?)야.“
응? 왜때문인지 욕을 들은 기분이었지만 대충 응원이라 믿고 넘겼다. 사실 저게 뭔 뜻인지, 놈의 의도가 뭔지, 생각할 힘도 말할 힘도 없었다.
대회를 4일 앞두고 선수 명단이 공개되었다.
그때 나는 금메달을 포기했다. 풀업이란, 명단이 공개됨과 동시에 순위가 어렴풋이라도 정해지는 종목 아니던가.
대회 3일 전부터 두통과 함께 목감기가 찾아왔다. 사실 첫 대회 때도 살짝 감기 기운이 있었기에 그게 큰 문제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두통 때문에 먹은 해열진통제였다.
나는 그 진통제 덕분에 눈꺼풀만 덮은 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래도 새벽 5시까지는 제발 두 시간만이라도, 아니 한 시간이라도 잠들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해가 뜨고 7시가 지나니, 차라리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빠르게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결국 꾸역꾸역 일어나서 간밤에 먹은 진통제를 검색해 봤다. ‘타나센’ 카페인 65mg 함유. 핫식스에 들어있는 카페인 용량이었다. 그걸 두 알을 먹었으니… 하… 한숨과 함께 그 간의 나의 애씀이, 나의 발버둥이 다 토해지는 느낌이었다. 못 잔 것보다도 일주일간 커피를 참은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갔다. 아니 일주일을 커피를 참은 덕분에 더더욱 카페인이 요동을 쳤을 테고 그래서 더 못 잔 것이리라.
당일 아침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대회장으로 가는 길, 내리는 시원한 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태양 아래 있는 것마냥 눈이 부시고 정신이 몽롱했다. 오전 내내 내 폰으로는 응원 톡이 쏟아졌고, 그 카톡 소리에 마음이 따끔거려서 핸드폰을 무음으로 변경하고 집어넣었다.
더 이상 입상이 문제가 아니었다.
12개쯤 하고 바둥거리다가 떨어지는 나를 상상해 봤다. 철봉 위에서의 내 모습이 아니라, 아무것도 못하고 손을 놓아버린 그 이후를 상상했다. 나는 과연… 그 이후의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차라리 실패한 거라면 그저 과정이라 생각하면 되겠지만, 이건 실패보다는 망신이 되리라. 그럼 나는 그 이후에 어떤 마음으로 풀업을 하게 될까. 그래, 나는 원래 운동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아니었으니까… 다시는 철봉을 잡기 싫어질 수도 있겠지. 근데… 이거 굳이 계속해야 하나? 그만둬도 되지 않을까?
아차차… 생각 그만! 메달이 아니라 멘탈을 챙겨야 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아!! 젠장!! 나 세수도 안 했구나. 카메라 많을 텐데.‘
그리고 대회장에 도착, 아는 분들이 인사를 해왔다.
“오늘 파이팅입니다!!”
“챔피언 방어전 해야죠?”
“오늘도 찢어주세요.“
이때 내가 무슨 표정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억지로라도 웃었을까. 아니면 표정 관리에 실패했었을까.
그리고 모르는 분들이 인사를 해왔다.
“저번 대회 1등 하신 분이죠?”
“와…. 저번에 진짜 지렸는데. 몇 개나 더 느셨어요?”
“영상에서 봤어요!! 신기해라!! 드뎌 직접 보네요!!”
“와… 기대할게요.”
어… 역시 x 됐다. 그냥 집에 갈까.
나이 마흔에 입구에서 도망가는 것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철봉 위에서 파닥거리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쪽팔릴까 고민하던 사이 시간은 흘러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그리고… 어… 시작 전에 사회자에게서 뭔가 꽤나 부담스러운 멘트를 들은 거 같은데 기억은 안 난다. 만나면 멱살을 한번 잡아봐야겠다.
이제야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 싶은 행동들, 정신이 없어서 탄마를 깜빡하고 올라갈뻔한 건 둘째 치고, 왜 심사의원님이 내 다리를 잡아서 흔들림을 멈추게 해 주기를 기다렸을까. 스스로 잡을 수 있었으면서… 그렇게 초보마냥 누군가 나를 잡아주길 기다리다 올라간 거까지만 기억난다. 비명 한번 안 질렀던 것 같다. 그리고 내려오자마자 함께 출전한 선수에게 물었다.
“나 몇 개 했어요?”
어… 내가 내 횟수를 알 턱이 없었다.
그 풀업, 내가 한 게 아니라, 조상님이 내 머리끄덩이를 잡고 끌어올린 거였으니까.
잠시 후 영상을 받아 확인했다.
처음 확인할 때는 그저 18개를 해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두 번째 확인했을 때는 엉망이 돼버린 나의 풀업 자세에 좌절했다. 세 번째 확인할 때 풀업이 아니라 풀업을 하는 사람이 보였다. 분명 끝났는데…
끝난 거 같은데 한 개 한 개 영혼까지 짜내면서 올라가는 저 사람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비로소 응원해 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 더 하라는 지인들의 목소리, 함성 지르는 모르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계속하라는 함께 출전한 선수들의 목소리…
아마 그때 울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4월의 나를 이기지는 못 했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좋아 웃다 울다 웃었다.
집에 도착하니 아이들과 신랑이 눈을 반짝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야… 나 지금 너무 힘들고 피곤해요. 그냥 빨리 다 끝났으면 좋겠단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그런데 그 마음이 철봉 위에서도 들어서 무서웠어요.“
그랬더니 그가 말하길…
“여보야는 너를 40년을 겪고도 너를 몰라? 너는 내가 아는 인간 중에 가장 미친… 아니, 독한 년이야. “
아… 그렇구나.
내 풀업, 조상님이 올려준 게 아니었구나. 저 인간이 내 머리끄덩이 잡고 끌어올린 거였구나.
여보야, 이제 그만 내 풀업에 신경 좀 꺼줄래요?
QnA Time
Q. 턱걸이는 언제까지 할꺼에요?
A. 저는 대한민국 최초로 턱걸이 하는 백발 할머니가 될겁니다. 백발머리 컷트쳐서 왁스로 쫙 넘기고 민소매 입고 풀업하는 그런 할머니가 될거에요.
제가 젊은 친구들에게 풀업 기량은 따라잡히겠지만, 최초 풀업 할머니 타이틀은 안 놓칠겁니다. 왜냐하면 저 벌써 40대 중반이거든요. 고지가 눈앞이에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