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걸이 대회
“풀업 대회 한번 출전해 보시겠어요?”
사실 이미 진즉부터 sns에서 봐서 대회가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대회 당일에 시댁 일정이 겹쳐서 참전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보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대회 나가! 너의 그 미친 또라이 근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와!!! 그냥 씹어먹어 버려!! “
라고 미친 또라이를 와이프로 둔 내 신랑이 말했다.
도대체 왜 니가 나보다 더 불타올라 있는 것인지… 뇌도 거치지 않은 비정제 단어들을 마구 쏟아내는 그에게 말했다.
“여보야, 알았아요. 진정해요. 근데 내가 그 대회를 씹어먹을 수는 없을 거 같아요. 이 세상에 괴물은 많고 그 대회는 꽤 단단할거에요.“
그러자 그가 손가락을 세우며 단호하게 말했다.
“놉!!! 너 지금 아파트 단지에 공고 내봐. 너보다 턱걸이 많이 하는 인간한테 커피 쏜다고. 니가 커피 살 일이 있을 것 같아? 너만한 미친년은 세상에 흔치 않아. “
와… 이 인간 아까부터 욕을 자연스럽게 하네.
그런데 그가 영 근거 없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었다. 당시 내 턱걸이 max는 14개였고, 실제로 아파트 단지에 저따위 도전장 같은 공고를 낸다면 남성분이라면 몰라도 여성분께 커피 살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 동네에는 없다.
그렇다. 우리 동네에만 없다.
sns를 조금만 뒤져봐도 괴물들은 차고 넘쳐흐르며, 저 대회에 출전하는 사람들은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니라 그 괴물들이라는 사실을… 세상은 넓고 나보다 미친 인간들은 많다는 사실을… 그는 간과했다.
그래도 뭐… 경험 삼아 함 나가볼까?
“네, 여보야. 참가에 의의를 둘게요. 세상이 넓다는 것을 배우고 올게요.“
다소 소심한 포부를 밝히자 그가 말하길,
“드디어!! 내 마누라의 광기 어린 집착과 똘끼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건가?? 움홧홧핫.. 켁켁.. 쿨럭… 여보야… 그 무서운 전완근으로 내 목을 조르지 말아주세요.“
와… 이 새끼가… 누가 누구더러 미쳤다는 거야??
그리고 며칠 후 대회 룰이 공개되었다.
시간제한은 2분. 2분간 매달려 있으래도 못 한다.
팔 다 안 펴면 노랩. 턱이 봉을 못 넘기면 노랩. 어… 당연하다. 팔 다 펴고 시작해서 턱을 넘겨야 진짜 턱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완벽한 무반동! 키핑 쓰면 노랩. 어깨 반동 치면 노랩. 다리 반동 쳐도 노랩. 그리고 다리를 움직여서도 안 된다. 철봉 앞에는 고무줄이 설치되어 있고 그 고무줄을 건드려도 노랩이다?!? 하…
봤지?? 여보야!! 바로 이런 걸 미쳤다고 하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친… 아니, 빡센 룰은 나에게 살짝 유리했다. 왜냐하면 남들 다 한다는 그 반동? 난 할 줄 몰랐으니까… 남들 키핑하는 게 멋있어 보여서 나도 배워보려고 크로스핏을 다닌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크로스핏장 철봉에 매달린 살아숨쉬는 생선이었다. 파닥파닥 덜렁덜렁 대롱대롱… 한 달 만에 포기했다. 그건 내 영역이 아니었다. 몸통을 나무토막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서 무식하게 힘으로만 땡기는 풀업, 나는 그거밖에 할 줄 몰랐다.
그랬는데… 나한테 유리한 줄 알았는데…
빡센 건 역시 빡센거였다. 대회를 앞두고 풀업 max의 숫자가 화르르 줄면서 멘탈도 함께 화르르 녹아내리는 것이었다. 하… 이런 젠장…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음악밴드 오디션을 앞둔 도통이가 탱자탱자 놀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심지어 일렉기타 오디션을 보는 놈이 우쿨렐레를 치고 앉아있는 것이었다.
“아들? 넌 오디션 연습 안 하냐?”
“어. 괜찮아. 자신 있어. “
“와… 그렇구나. 젠장… 부럽다.“
“왜? 엄마가 그게 왜 부러워?”
“엄마는 풀업 대회 자신 없거든.“
“어. 괜찮아.”
“뭐가 괜찮아? 지가 하는 거 아니라고…“
“하… 턱걸이에 자신감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이 샠… 방금 한숨 쉰 거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어… 그래? 그럼 뭐가 필요해? “
”하… 엄마는 왜 그것도 몰라? 턱걸이는 힘이 필요하지. 자신감이랑은 상관없어. 엄마가 자신감이 없어도, 멘탈이 없어도, 인성(?)이 없어도…. 심지어는 정말 하기 싫어도… 코로나에 걸리지만 않는 한 될 수밖에 없는 게 턱걸이야.“
아니, 근데… 거기에 인성은 왜 들어가 있니?
“그냥 그날 대회장에 늦지나 마.“
어… 고맙다. 내 새끼야. 힘을 심어줘서.
왜때문인지 싸잡아서 다굴 당한 기분이었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양쪽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어느덧 대회가 4일 앞으로 다가왔다.
쌤이 오셔서 물으셨다.
“잘 돼 가세요? “
“으흥?! 그럴 리가요?! 대회 결과는 미리 죄송합니다?“
그러자 쌤이 말씀하셨다.
“혹시 커피 좋아하세요?”
…. 오… 뭐지? 이 불안한 기류는??
“네!! 커피 없음 못 삽니다!!“
“네!! 좋아요!!! 그럼 오늘부터 드시지 마세요!!“
“네… 눼???!?“
오호라… 이건 뭐 신종 고문인가??
… 가 아니라, 선생님의 지침은, 카페인을 끊었다가 대회당일에 흡입해라. 카페인 효과를 증폭시켜라. 뭐 그런 뜻이었다. 솔직히 그깟 카페인 효과 얼마나 될까 싶었다. 하지만 군말 없이 상명하복 하기로 했다. 나는 강자 말은 잘 들으니까.
그런데 그깟 카페인의 효과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카페인을 끊은 당일과 그다음 날… 나는 끼니만 간신히 해결했으며, 나머지 시간은 내리 잠만 잤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하루종일 넷플릭스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뇌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아… 나 그동안 카페인으로 살아 움직였던 거구나.
그리고 두 번째 지침.
“오늘부터 턱걸이도 하지 마세요.”
으흥?? 그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겁나 하기 싫었던 참이었다. 나는 그렇게 이틀 내내 드라마만 보고 잠만 자면서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럴만한 영혼이 내 몸에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이란 걸 해야 불안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나는 그렇게 무자아 상태로 대회 당일을 맞이했다.
“어디에요?”
대회장으로 향하는데 전우에게 전화가 왔다.
”지하철이요.“
“아니, 선수가 왜 지하철을 타고 와요?“
와… 나 선수 대접받는 거야? 감동인데??
“네. 강남쪽은 운전이 힘들고, 주차도 어렵…“
“뛰어오셔야죠. 시합 전에 유산소로 웜업 해야죠.”
오… 이런… 잊고 있었다.
이 인간들도 죄다 미친놈들이란 사실을… 전화는 그냥 끊었다. 시합 전에 씨알데없는 소리로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여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수박맛 레드x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며 대회장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이런 맛은 누가 만든 건지 궁금해하며…
그래! 그래도 비주얼만 보면 내가 상위권일 것이다. 내 근육도 어디서 꿀리진 않을 테니까!!라고 생각했건만… 와… 씨바… 바로 꿀렸다.
문득 신랑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보야, 완두콩이 근육 만들어봤자 땅콩이죠.”
하?!? 그렇다. 열받아도 놈의 말이 맞았다.
대회장은 어슬렁거리는 호롱박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고, 나는 그냥 땅콩이었다. 내가!! 땅콩이!! 무슨 수로 저 호롱박들을 이기겠는가. 그렇게 나는 마지막 남은 희망까지 떠내려 보내고, 정줄과 이성까지 놓은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누군가 와서 말을 걸었다.
“와… 노래가 나오세요? 즐기러 오셨나 봐요.”
네, 호롱박 12호님… 주위를 둘러보세요. 내가 여기서 그럼… 즐기기라도 해야지 뭐 어쩌겠습니까?
그렇게 콧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느새 여성 풀업 부문 순서가 되었다.
“자!!! 본 대회의 꽃!!! 여성 풀업 부문입니다!!!”
어… 그러지 말아요.
그렇게 신박하게 부담 주지 말아요. 민들레 홀씨처럼 흐드러이 날아가고자 하는 나의 멘탈을 겨우 붙잡고 있으니 제발 그러지 말아 주세요.
뭐… 그러거나 말거나 대회는 시작이 되었고 또 시작하자마자 끝이 났다. 뭘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따위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남은 거라곤…
“국주야!! 내려오지 마!! 땅에 발 디디면 넌 죽어!!“
라고 귓가에 맴도는 다채로운 협박들… 아니, 가열찬 응원들 뿐이었다. 내려오면 죽인다는, 죽더라도 철봉 위에서 죽으라는 이 스윗하고 다정한 응원들은 내게 불타는 아드레날린을 뿜어내게 해 주었고, 난 그렇게 소위 대회 로이드라고 불리는 합법적 약물을 과다 흡입하며… 무려 18개의 풀업을 해치웠다.
와… 기록 경신을 대회장에서 한 것이다.
철봉에서 내려오자마자 쌤부터 찾아가서 하이파이브를 한 50번 한 후에 말했다.
“쌤… 저 도핑 검사 부탁드립니다.”
진심이었다.
정자세 풀업 18개??? 그전에도 못 했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못 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이 성과를 영상으로 남기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나조차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로는 대회를 진심으로 즐겼다.
무반동 클린머슬업 30개 이상, 핸드스탠드 1분 이상, 레버, 플란체 등등… 어디 가서 이런 괴물들의 총집합체들을 보겠는가. 넋을 놓고 구경했다.
그리고 결말은? …… 나 1등 했다.
노랩 수량을 몰랐기에 순위 발표가 날 때까지 등수를 몰랐으며, 저렇게 환하게 웃고 있던 저 순간에도 내가 어떻게 저 황금빛 메달을 흔들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시상식 후, 많은 사람들이 나와 악수를 청했고 나의 sns 아이디를 물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저 사람들 눈에는… 나 역시 그냥 저 괴물들 중 한 명으로 보일 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렇게 얼굴에는 행복감을, 머리에는 물음표를 그리고 목에는 금메달을 달고 금의환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내 얼굴을 보자마자 그가 물었다.
“여보야, 대회 어떻게 됐어요?”
오… 놈이랑은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상종하기도 싫은 일이 발생할 것만 같았다.
“……. 글쎄요. 아직 결과가 안 나와서…”
“푸핫! 뻥까시네. 여보야 너 일등 했지? 푸하하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내가 그랬잖아! 너만한 미친년은 없다니까! 푸하하하.“
아니 근데 이 새끼가…
나 도대체 왜 놀림을 당하고 있는 거지?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여보야, 근데 2등 하신 분이 나보다 더 잘해요.”
사실이었다. 그냥 사실이었는데….
”어우… 인성쩔어. 그렇게 인성까지 개차반… 켁… 쿨럭… 여보야, 턱걸이 전국재패한 전완근으로 내 목을 조르지 말아주세요. 너는 실수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요.“
한편 아들놈은 동네방네 이런 소문을 내고 다닌다. 나도 소문으로 들었다.
“아줌마. 저는 사춘기를 반납했어요. 왜냐하면 우리 엄마는 대한민국에서 힘이 제일 세거든요. 아빠가 그러는데, 우리 엄마는 실수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데요.”
하… 이런 내 새끼들이…
나의 생애 첫 풀업 대회는 그렇게 사랑하는 인간들의 열렬한 응원과 뜨거운 축하를 받으며 끝이 났다.
장하다!! 김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