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국주 Jan 17. 2021

엄마, 나 수학 ‘선행학습’ 해주세요.

초등 아들 수학 홈스쿨링

도통이가 7살 때의 일이다. 녀석의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님, 도통이가 아무 말 안 하던가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녀석이 나에게 그것을 말을 할리가 없다. 선생님, 그냥 말씀하시죠.


“아뇨, 아무 말 없었는데요.”


“도통이가 오늘 많이 울었어요. 도통이가 안 보여서 찾아보니까 교실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얼굴을 파묻고 너무 서럽게 흐느끼고 있더라구요.”


“네… 근데 왜 울었을까요?”


“사실 어제 학습하는 책 한 권을 끝내서 새로운 책을 들어갔거든요. 도통이가 울면서 그러더라고요. 책 한 권을 겨우 힘들게 끝냈는데, 또 책이 왔다면서.... 너무 서럽게 우는데... 어머님이 많이 달래주세요.”


그러니까 내 새끼가 공부가 하기 싫어서 울었다는 이야기였다.


“제가 일부로 제일 공부 안 시키는 어린이집으로 골라서 보낸 건데 그것도 싫답니까?”


“엇, 어머님 알고 계셨구나. 네, 우리 어린이집은 공부 안 시키는 편에 속하죠.”


그래요, 선생님. 이건 선생님을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선생님, 너무 무리는 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날 밤 녀석과 대화를 나눴다.


“도통아, 어린이집에서 하는 공부가 싫어?”


“응! 공부 끝나서 좋았는데 공부가 또 와서 속상했어.”


그렇구나. 내 새끼는 공부가 싫구나.

그래… 너무 애쓰지 말아라. 엄마가 해보니까 그거 애쓴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그러던 도통이가 2학년이 됐다.

코로나가 터지고 집구석에서 나뒹굴던 어느 날, 도통이가 갑자기 나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엄마, 나 선행 학습 시켜줘.“


이건 또 무슨 도토리 묵사발 같은…

도통아, 너는 선행학습이고 나발이고 그냥 학습이란 것을 한 적이 없단다.


“너 선행학습이 뭔지 알아?”

“응! 미리 공부하는 거!”


어… 그게 뭔지 알고는 있구나.

근데 너는 공부란 것을 한 적이 없잖니. 만약 한다면 선행이 아니라 복습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라는 말을 목구녕 안으로 쑤셔 넣고,


 “그래, 뭘 선행 학습하고 싶은데?”

 “응! 나 과학은 잘하니까(응?) 수학!”

 “그래… 그럼 수학 학원 다닐래?”

 “아니, 엄마한테 배울래!”

 “왓?!? 왜지?? 도대체 왜??“

 “엄마 수학 잘 하자나.”


응? 내가?? 내가 수학을 잘했던가?

그래, 잘했다 치자. 우리는 그렇게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택했다.


백지상태의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즐거운 일이다. 일단 기대심리를 절대적으로 0으로 낮춰야 한다. 그런데 그 기대심리라는 것이... 나만 낮은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엄마 근데 말이야. 엄마 때랑 지금이랑은 수학이 많이 다르지 않을까?”


 “?? 아무리 달라도 내가 초등 수학을 못 할까?!"


발끈했는데, 녀석 말이 맞았다.


라떼는… 숫자만 때려 맞추면 장땡인 시절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문제에 뭔 글자가 그리 많은지... 이 서술형 문제는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어른들은 열받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디딤돌 수학 2-1 36p 20번

도저히 못 알아보겠으니 해석해 보자면,

백의 자리 수가 크면 크고,
십의 자리 수가 커도 크고,
일의 자리 수가 커도 크다.

역시 해석해도 뭔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뭐라고 주절거려 놨든 무조건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야 한다. 녀석은 이제 시작이니까. 앞으로 갈 길이 머니까. 물론 녀석이 그렇게 쉽게 기가 죽는 친구도 아니지만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진다. 이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언성이 높아진다 싶으면 얼른 태세 전환을 해야 한다.


 “도통아, 엄마 화낸 거 아니야. 그냥 강조한 거야.”


그런데 이것도 자주 써먹으면 안 된다. 하루는 녀석이 유달리 잘하길래


“우와, 우리 도통이 엄청 잘하네.”


라고 했더니 9세 도통이 말하길.


“엄마, 어차피 다시 못 하면 또 화낼 거잖아요. 그니까 조금 잘했다고 너무 호들갑 떨지 마세요”


그렇다. 너무 자주 써먹으면 놈들이 내 저의를 눈치챈다.


하루는 도통이에게 1월부터 12월까지의 일수를 가르치기 위해 이 방법을 써먹기로 했다.

나의 엄마에게 전수받은 방법인데, 안쪽부터 1월 그리고 튀어나온 곳은 31일, 들어간 곳은 30일…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하면서 열심히 가르쳐 주고 나서,

“도통아, 이젠 도통이 손으로 해보자.”

했는데,


으잉? 뭐지? 이 도라에몽 같은 주먹은?

도통이 손에 굴곡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이리저리 돌려보았으나 역시 굴곡 같은 건 없었다. 그래, 당황하지 말자.

“도통아, 넌 아직 아이라서 굴곡이 없나 봐. 이것 봐. 6살인 막냉이도 없...”


으잉? 막냉이는 굴곡이 있었다.
“도통아 잠깐 손가락 좀 펴볼래?”


푸핫.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세상 귀여운 도통이 손가락. 그래 뭐... 날짜 좀 모르면 어떻니.
이 날부터 녀석의 손은 내 힐링 포인트가 되었다.


이 새끼…

….????? 왓더…

비록 갈 길은 멀지만, 우리 손 잡고 천천히 가보자.



덧붙_ 그렇다면 영어는??

문득 도통이의 영어실력이 궁금하여 물었다.
그래도 어린이집에서 한 게 있으니 기본은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도통아, 학교가 영어로 뭘까?”
“몰라!”
“그럼 책은 영어로 뭘까?”
“응! 몰라!”

그렇구나, 모르는구나.

“그럼 니가 아는 영어는 뭐니?”
“응! 앵그리 버드.”

그래, 영어는 학원 다니자.
이전 06화 아이들의 ‘정의’란 무엇인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