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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Apr 26. 2021

아이들의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도 지들 나름의 정의가 있다?

도통이 1학년 때, 나는 녀석의 하교를 돕기 위해 늘 시간에 맞춰 학교 후문으로 갔다. 그러면 뒷계단에 참새처럼 쪼르르 앉아있는 엄마들이 보였고, 대충 아무데나 껴서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 보면 곧 종이 울렸고, 학교 건물 안에서 아이들이 댐방류되듯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한놈이라도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시는 담임 선생님도 함께였다. 그때 쏟아져 나오는 녀석들 중에 내새끼만 골라 포획해서 곧바로 귀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친구들과 함께였기에 모두 함께 놀이터에 들르는 것이 필수 코스였다. 뭐 그렇게라도 녀석들의 에너지를 방전시켜 놔야 우리의 저녁 시간이 편해지기도 하거니와, 엄마들끼리의 대화 역시 그렇게 쉽사리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도 우리는 하교하는 놈들을 골고루 잡아다가 놀이터에 쓸어 넣었고, 우리끼리는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손가락만 한 말벌이 아이들 주위를 배회하는 것이었다. 말벌이 지나가는 경로마다 여기저기서 짧은 비명들이 터져 나왔고, 벤치에 줄지어 앉아있던 사람들의 대열도 흐트러졌다. 말벌 한 마리가 놀이터를 그야말로 쑥대밭을 만들어 놓았다.


사실 모기나 파리처럼 코딱지만 한 것들이나 잡기가 어렵지, 손가락만큼 커다란 것들은 오히려 쉽다. 그저 그 크기에 압도되는 것 일뿐인데, 그럴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저 말벌 입장에서 보면 내가 지보다 한 천만배정도 더 클 것이기 때문이었다. 체급이 괜히 있겠는가. 엄연히 내가 강자이다. 그것도 모르고 저 말벌 놈은 사람들이 꽥꽥 소리를 지르며 도망쳐주니까 위풍당당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그냥 내가 잡자.

말벌이 어디 있는지는 짐작이 가능했다. 사람들이 사운드로 시시각각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나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는 곳으로 살살 다가가서 슬리퍼를 벗었다. 그리고 그것을 멋지게 휘둘러서 말벌의 싸다구를 날렸고, 말벌 놈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리고 마무리로 확인 사실까지 마쳤다. 훗.


그런데 아뿔싸… 그 행동이 너무 튀었다.

슬리퍼로 말벌을 때려잡고 굳이 확인 사살까지 한 덕분에 나는 놀이터의 온 시선을 정통으로 고스란히 받았다. 그리고 내가 하는 짓을 유심히 보고 있던 도통이가 총총 다가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기어이는 그 불쌍한 벌을 죽였어?”


어… 불길했다.


“엄마, 만약 신이 저 벌에게 생명을 한번 더 주시면 어떻게 될까?”


왜 이런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가. 하지만 여기는 공공장소이고, 보는 사람도 많고, 또 나는 말벌을 멋있게 때려죽였고… 그 덕분에 마침 시선도 집중되어 있고….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정하게 대답해 줬다.


“글쎄... 그럴 일은 없어. 생명은 한 번뿐이거든.”
“그럼 그 한 번뿐인 생명을 누가 뺏었을까?”
“어… 내가?......”

“엄마는 그 한 번뿐인 생명이 그렇게 욕심났어?”


이런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내새끼 같으니.

속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일단 뚜껑을 닫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저 이 상황을 (평화적으로) 빨리 끝내고 싶었다.


“니들이 벌한테 물릴까 봐 그런 거잖아. (시키야)

“그래? 그래도 앞으로는 너무 우리 입장만 생각하지 말아줬음 좋겠어.”


놈은 저 말만 메아리처럼 남기고는 엉덩이를 실룩실룩 거리며 다시 놀이터로 뛰어갔다. 여기저기서 쿡쿡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지 마. 이것들아. 내가 말벌 잡아줬잖아. 옆에서 같이 끅끅거리고 웃던 친구가 말했다


 “끅끅... 언니, 도통이한테 끄흐흡 밀리는데? ㅋ킥.”


어… 다 웃고 나서 얘기해 줄래?


 “아놔... 끄흐ㅂ. 언니 지금 표정 너무 잼있어. 큭큭.”


그래, 니들이 즐겁다면야.


“언니!! 나 도통이랑 대화 좀 해봐도 돼?? 이 과자로 좀 불러볼까?”


아니, 제발 그냥 놔둬. 부르지 마.


코로나를 막아주는 장승 by 10세 도통

그리고 며칠 후 밤 산책을 나왔다.

녀석들은 저만치 팔딱팔딱 뛰어가고 있었고, 우리는 지친 몸을 질질 끌며 터덜터덜 뒤따라 걷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걷던 친구가 흠칫거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언니, 어떡해. 도통이가 담배 피우려는 아저씨한테 말 걸고 있어.”


아하???

 

 “일단… 내 아들 아닌 척 해.”

 “언니. 언니 아들 아닌 척 하기엔 막냉이가 언니랑 너무 똑같이 생겼는데?”

 “닥쳐. 그냥 모른 척 해.“


우리는 그 옆을 살살 지나가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여차하면 총알처럼 튀어가서 녀석의 입을 틀어막고 질질 끌고 와야 하니까.


 “언니, 어떡해. 도통이가 저 아저씨한테 폐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같아.”


으흥??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손가락에 담배를 끼고 불을 붙이기 직전에 있는 아저씨에게 담배가 폐에 미치는 해악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덧붙여서 폐암에 걸리면 어떻게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는지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아가… 그 아저씨가 그걸 몰라서 담배를 피우려는 것이 아니란다.’


아저씨의 손에는 새 담배꽁초가 들려있었고, 그 담배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래!!! 바로 지금이다!!!

나는 녀석의 입을 틀어막고 질질 끌고 오기 위해 총알처럼 그쪽으로 튀어갔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들고 있던 담배를 도로 담뱃갑에 넣고 고개를 푹 숙이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아… 저런... 흡연을 옹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은 축 처진 아저씨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는 놈이 자신만의 정의를 세워 그 정의대로 움직이는 줄 알았다.


몇 달 후 일이었다.

그날따라 녀석은 친구 없이 혼자서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놀이터에는 여자아이들밖에 없었다. 녀석은 심심했는지 옆 벤치에 앉아계신 다른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이 집은 아들이 없어요?”


 왓 더?!? 사실상 저 문장을 해석하자면,


 ‘이 집에는 나와 함께 놀 남자아이가 없을까요?’ 라는 뜻이었겠지만, 해석이고 나발이고 나는 그때 녀석의 입을 틀어막고 질질 끌고 왔어야 했다.

녀석의 질문을 들은 엄마가 말씀하셨다.


 “미안해. 우리 집은 딸뿐이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내 마음속의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버텼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그런데 그것은 완벽한 오판이었다. 녀석의 입은 단발성 권총이 아닌, 다발성 기관총이었다. 나는 역시 기회가 있을 때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어야 했다. 때마침 그 집 공주님이 놀다가 엄마에게 왔다.


 “엄마. 물 주세요.”


 그 집 공주님은 짧은 커트머리였다. 그걸 본 놈이 말했다.

 

 “아닌데요? 여기 아들 있잖아요.”


 젠장… 제발 그 입 좀 닥쳐줄래??

 머리카락 길이로 성별을 구분하는 주제에 왜때문에 남자아이를 찾는 것인지… 나는 뒤늦게서야 놈의 입을 틀어막으며.


 “죄송합니다. 녀석이 머리만 짧으면 다 남자인 줄 알아서. 예쁜 공주님에게 실례를. 하하하.”


 하하하. 씨바…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녀석은… 정의고 나발이고 그저 지 하고 싶은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냥 뇌와 입에 통제 기능이 없다.


그리고 나는?

말로 밀리면 그냥 힘으로 한다.

그것이 내 정의다. 이 내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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