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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Dec 08. 2021

내 새끼는 내가 못 가르친다?!?

어버이의 은혜

 * 본 에피소드는 필자의 어머님의 경험을 그분의 시선에서 적었습니다. 배경은 1990년대입니다.


한이가 반에서 43등을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받아온 석차였다. 녀석의 반전체 인원이 43명이라고 하니, 뭐 대충… 녀석이 반에서 꼴찌라는 뜻이었다. 하하하.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둘째라고 너무 신경을 안 썼나? 라고 하기엔 못 해도 너무 못 했다. 아니, 이런 발상 자체가 이 세상의 모든 둘째들을 향한 모함이었다. 그렇다면 유전인가? 아니, 나는 저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도…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 후로 학원도 보내봤다. 과외도 붙여봤다. 살짝 아주 살짝?? 성적이 오르긴 했다. 그런데 석차는 그대로였다. 하… 꼴찌… 하긴 20점이 30점이 된들… 본래 맨 앞과 맨 뒤가 가장 견고한 자리가 아니던가.


안 되겠다. 내가 직접 하자.

나와 아이, 둘 모두에게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한 과목씩… 그래, 한번 해보자


 하여 가장 먼저 수학이란 것을 해보기로 했다.

그것이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막 뎀벼도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답이 명확하니까.


 전투에 필요한 무기를 구하기 위해 집을 뒤집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무기… 수학 교과서가 없었다. 아마도 녀석이 학교에 두고 집에 가져오지도 않는 듯했다. 한참을 뒤지다 갈색 하드커버의 두꺼운 책을 발굴해 냈다. 바로 마법서… 아니, 수학 정석이었다.


 나는 아이가 등교하면 정석을 폈고, 하교 후에는 아이와 함께 수학 문제를 풀었다. 하다 막히면 기꺼이 중학 과정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반년… 아이의 수학 성적이 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30점, 40점, 60점… 이쯤 되자 녀석의 전체 평균도 오르기 시작했고, 미동도 없던 석차까지 변하기 시작했다. 하… 도대체 앞 등수와의 갭이 어느 정도였던 것인지…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오직 하나, 수학에만 올인했다. 한번 시동이 걸린 녀석의 수학 성적은 순식간에 80점을 찍고 90까지 올라갔다. 와우, 이런 식으로 한 과목씩 정복하면 되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녀석이 와서 말했다.


 “엄마, 저 오늘 교무실에서 혼자 시험 봤어요.”


 아… 이건 또 무슨…

 상황 파악을 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그저 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마음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이가… 내 아이가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교무실로 끌려가서 홀로 시험을 치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어떤 말을 해야 아이의 마음을 감싸 안으며 사태 파악을 할 수 있을까. 이 생각만 했다. 나는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고 골랐다. 그러느라 정작 위로가 필요한 아이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말했다.


 “오늘 수학 성적이 96점이 나왔어요. 한 개 틀렸어요. 저 잘했죠?”


 하하. 와우, 눈물이 났다. 너 진짜 대단한데?


 “와… 내 아가…. 진짜 장하다.”


  한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컨닝했냐고 묻더라고요.”


 아… 그래, 그럴 수 있다.

 한이는 다른 과목은 전부 30-50점이다. 유독 수학만 반년만에 96점을 찍었다. 사람이라면 그런 의심… 응당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역시… 내 아이의 마음이, 내 아이의 상처가 더 중요했다.


 “그랬구나. 우리 한이 속상했겠네. 선생님이 나빴다.”

 “아니요. 제 점수가 너무 빠르게 오르긴 했죠. 그런데 나… 컨닝한 거 아니니까요. 시험이야 백번이고 다시 봐도 상관없어요.”


 그래, 내가 잊고 있었다. 너의 가장 큰 장점을.

돈으로도, 노력으로도, 세월로도 살 수 없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너의 단단하고 강한 그 마음을.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한이야, 오늘 고생했다.”


아이가 내 눈을 바라보며 살며시 물었다.


 “엄마… 내 점수 안 궁금해요?”


이젠 그딴 거… 안 중요하다.


 “에이… 그게 중요해?”

 “흐흐흐. 네, 엄마… 나 백점 받았어요. 선생님들이 다 보는 눈앞에서… 모든 문제를 다 맞혔어요.”


 아이는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엄마, 내가 교무실로 불려 간 건… 선생님들이 나를 못 믿어서가 아니에요. 그냥 내 점수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에요. 이거 너무… 기적 같잖아요. 우리… 진짜 멋지지 않아요?”


 아… 한이는… 나보다 강한 이 아이는…

선생님들의 인정이, 엄마의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해를 받았다는 사실도, 혼자 교무실로 끌려들어 간 사실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한아, 내 아가… 정말 멋지다. 장하다. 엄마는 니가 너무 자랑스럽다.”

 

 나는 이렇게 함께 기뻐해 주면 되는 것이었다.

 둘이 함께 이뤄낸 이 성과를, 이 벅찬 마음을… 나와 함께 나누는 것. 아이는 그거면 충분했다.



이 세상의 모든 기적 같은 어머님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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