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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Jan 25. 2021

가정 폭력 의심을 받았다.

스승의 은혜

“어머님, 가정 폭력이 의심 시에는 불시에 가정을 방문할 수도 있습니다.”


도통이가 6살 때였다. 도통이를 하원시키고 저녁 준비를 하는데 어린이집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어린이집에서 오는 전화는 전혀 반갑지 않다. 아니, 오전 중 전화는 더 안 반갑다. 그냥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심호흡을 장전하고 전화를 받았다.


 “네, 선생님.”

 “저... 어머님, 혹시 가정에 무슨 일이 있나요?”


이건 또 무슨... 지금 전화받고 있는 거 빼고는 아무 문제없습니다만.


 “아니요. 왜요?”

 “이런 말 하기 참 어려운데.... 도통이가... 엄마가 때렸다는 이야기를 매일 합니다.”


와우, 그동안의 전화랑은 또 다른 결의 전화였다.

이 시키 도대체 뭐라고 한 거야.


 “아… 저… 도통이가 뭐라고 하던가요?”

 “네… 어머님께서 샤워기로 때렸다고....”


뭐라? 샤워기? 이건 상상도 못 한 전개다.


 “네? 샤워기로요?”

 “네, 어머님. 그래서 저희가 매일 도통이 몸을 체크하고 있어요. 별 상처는 안 보이지만, 가정 폭력이 의심 시에는 불시에 가정을 방문할 수도 있습니다.”


네, 그래서 녀석이 선생님이 매일 옷을 벗겼다 도로 입힌다고 했던 거군요. 철저한 의심과 꾸준한 확인 감사드립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는 그럼 녀석이랑 얘기 좀 해보겠습니다. 세상 불편한 전화를 끊고 놈을 바라보았다. 놈은 세상 태평하게 자동차 장난감을 밀며 놀고 있었다.


 “도통아, 일루 와봐.”

 “왜?”

 

왜?? 놈을 강제로 무릎 위에 끌어 앉히고 대화라는 걸 시전했다.


 “도통아.”

 “응?”

 “너 선생님한테 뭐라고 했어?”

 “응! 선생님 예쁘다고!”


그래… 고백은 참 꾸준히도 하는구나.


 “어… 그래… 그 말 말고는?”

 “없어.”


없을 리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도통아… 엄마가 너 때렸어?”

 “응!!”

 “왓더… 내가 언제?”

 “옛날에! 샤워! 궁디 세게! 나는 막 울고!”

 

이런 내 새끼가!!?!?

이 ‘세게’라는 단어에서 오해가 생길까 미리 말해두자면, 놈들은 웃으면서 엉덩이를 토닥토닥하면 이뻐해 주는 줄 알고, 이놈! 하면서 엉덩이를 토닥토닥하면 때리는 줄 안다. 둘이 같은 강도라도…


사건의 배경은 이러하다. 아들 둘 엄마는 다양한 방면에서 죄인이다. 일단 가장 큰 죄는 단연 층간 소음. 바닥 전면에 두꺼운 매트를 깔고 낮이면 낮마다 애들의 에너지를 밖에서 다 빼고 오는 데도 그 죄가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한 번은 시엄니께 여쭤보았다. 울 시엄니도 아들 둘의 어머니이시기에 그런 쪽으로 나의 선배님이셨다.


 “어머니, 저거 매트 언제 치울 수 있어요?”

 “어어... 한 놈이 사라지면.”

 “그 한 놈은 언제 사라지는데요?”

 “군대 가면.”


우문현답이었다. 이번 생은 포기하라는 말씀을 저렇게 에둘러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


초반엔 아랫집에 뇌물(?)도 좀 갖다 드렸는데 지금은 그것도 못 한다. 그냥 너무 죄송해서 감히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인사를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엘리베이터 앞에 아랫집 분들이 서계신 걸 보게 되면 숨어있다가 다음번에 탄다. 그렇다고 아래층 분들이 우리를 타박하느냐. 그것은 절대 아니다. 울 아래층 분들은 ‘괜찮다. 아무 소리 안 들린다.’, ‘신경 쓰지 말아라.’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소리가 안 들릴 리가 없다. 그래서 그 말씀은 더더욱 나를 고개 숙이게 한다. 세상 인복에는 부모복, 배우자 복, 자식복이 있다지만 나는 거기에 이웃 복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나의 이웃복은 상위 1퍼센트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면, 놈이 옛날이라고 말한 그 시점은 그날로부터 약 일주일 전이었다.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고 싶다고 졸랐고, 나는 놈들을 욕조에 퐁당퐁당 넣고 수십 번의 약속을 받아냈다.

 

 “조용히 놀아야 해!”

 “응!”

 

생각해 보면 수십 번이건 수백 번이건 그 약속이 지켜진 적은 없었건만!!! 그런데도 왜 매번 이번엔 지켜질 수도 있을 거라 기대하게 되는지… 그날도 당연히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나는 결국 녀석들의 찹쌀떡 같은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렸다. 물놀이는 파투 났고, 놈들은 울고... 엄마가 세게 혼냈다는 둥 그래서 지들이 울었다는 둥 아빠한테 이르고... 뭐 그런 스토리였다.


그런데 그걸 도통이 놈이 일주일간 어린이집에 갈 때마다 선생님께 일러바쳤던 것이었다. 그것도 엄마가 지들 샤워할 때 궁디를 팡팡했다는 말을 샤워기로 궁디를 팡팡했다는 말로 바꿔서… 그것도 매일매일… 그런 그렇고…


 “너 왜 그걸 매일 얘기했어?”

 “응! 그냥!!“


그렇구나. 그냥 생각날 때마다 얘기한 거였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안을 청소하는 것 밖에 없었다. 불시에 오실지도 모르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청소를.


요즘 아동 폭력에 대한 뉴스를 자주 접한다. 가방에 갇혀 죽었다는 아이, 쇠사슬에 묶였다는 아이, 손가락이 지져졌다는 아이, 그리고 정인이....

그땐 몰랐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도통이의 선생님께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선생님께서는 혼신을 다해 아이를 돌봐주셨고 의무를 다해주셨다. 오지랖이 흠이 되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무관심은 죄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2019년 어느 비오는 여름 _ 내 아이들 아닌 척함



덧붙.

활기찬 우리 집이지만 유난히 더 퐈이어가 뿜뿜 하는 날이 있어요. 나는 기뻐 날뛰는 놈들에게 그만 심한 말을 해버리고 말았죠.

 “뛰지 말라고! 이 쌍늠시키들아!”

그러자 막냉이가 아빠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묻더군요.

 “아빠, 쌍늠시키가 뭐야?
 “누가 그래?”
 “응! 엄마가!”

그가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응, 그건 엄마, 아빠가 상놈이란 뜻이야.”
 “상놈은 뭔데?”
 “응, 양반이 아니란 뜻이지.”
 “응, 양반이 아니란 뜻이지.”
 “양반은 뭔데?”

그렇게 쌍늠시키를 시작으로 한 질의응답이 한참을 더 이어졌어요. 아,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단어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답니다.

도통아, 막냉이가 너보다 한 수 위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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