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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Mar 02. 2022

선생님한테 “아이가 힘들어요.” 라는 말을 들었다

그니께 엄마는 강한거여.

내 아이는 말썽꾸러기다.

그래, 안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생판 남은 어떠랴. 그게 설사 전문 교육을 받은 선생님일지라도.


도통이가 갓 6세가 되던 봄이었다.

꿈과 환장의 나라 에*랜드로 놀러 가기 위해 녀석을 직접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갔다. 배웅 나오신 선생님께서 허리를 숙여 녀석을 보며 말씀하셨다.


 “도통아, 너 에*랜드 가서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해.”


녀석이 해맑게 대답했다.


 “네!!!”


그러자 선생님 말씀하시길.

 

 “진짜? 아닐 것 같은데? 거짓말하지 마!!“


응?? 뭐지? 내가 잘못 들었나?

뭐 요즘 유행하는 신종 인사법인가?? 그럼 나한테 하시지?? 나라면 찰지게 받아줄 수 있는데. 그렇게 멋지게 선방을 날리신 선생님께서 허리를 꼿꼿 펴더니 나를 보고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씀하셨다.


 “어머님, 괜찮으세요?”


뭐가 괜찮냐는 말인지??


 “도통이 육아 괜찮냐고요?!“


아까까지는 괜찮았는데, 지금 막 안 괜찮아지려고 합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뜻입니까? 도통이의 가정생활이 어떻냐는 뜻인지? 아니면 니 성깔에 육아한다고 설치는 게 괜찮냐는 뜻인지? 그것도 아니면 육아는 범국민적으로 빡신 노동이니 역시 너도 힘드냐는 뜻인지? 도저히 가늠이 안 됐다.


 “무슨 뜻이죠?”

 “어머님… 저는요… 도통이가 너무 힘들어요.”


방금 나는 내 아이의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께 ‘니 아이가 너무 힘들다’ 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뭐라고 반응을 해야 하나? ‘아유 힘들어서 어떡해요?’ 라고 위로하면 되는 건가. ‘역시 그렇죠?’ 하고 맞장구를 치며 공감하면 되는 건가. 아니면 입 닥치고 원에서 짐 빼서 나오면 되는 건가. 목구멍에서는 나방들이 기어 나오겠다고 날개를 퍼덕이는 느낌이었다. 벌레들의 구역질 나는 날갯짓 때문에 목이 막혀 아무 말도 못 했다.


집에 가서 도통이에게 물었다.

녀석은 아직 6세였고, 또래보다 느렸던 터라 복잡한 질문은 불가하기에, 모든 것을 함축할 수 있는 질문을 딱 한 개 했다.


 “도통아, 우리 도통이는… 어린이집 선생님 좋아?”


한참 고민하던 녀석이 말했다.


 “아니, 선생님 무서워. 자꾸 내 팔 세게 잡아당겨. 너무 아파.”


오케이. 여기까지.

아이에게 어떤 말을 들으면 반드시 진위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 과정이 껄끄럽고 결과가 아름답지 않더라도 해야 한다. 그것은 내 아이의 말만 듣고 상황을 판단하지 않기 위함도 있지만, 아이에게 ‘나는 결코 너의 말을 귓가로 흘리지 않는다. 너의 말은 그 경중과 상관없이 소중하게 다뤄질 것이다. 나는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라는 것을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함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원장님께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원장님 말씀하시길…


 “어머님, 보통 아동 폭력의 90퍼센트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것 아시죠?”


아하, 그렇습니까.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근데 내가 지금 그게 궁금한 게 아니잖아요? 나는 지금 담임과 아이와의 관계를 묻고 있는 거잖아요? 이건 뭐 유산소 하랬더니 국민체조 하는 소리를 하고 있는거지??


“그리고요, 어머님!! 도통이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상담 한번 받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아하!! 내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랬다?!


 “네, 상담이 필요하다면 받아야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아이 팔을 세게 잡아당겨서 아이가 팔이 아프다던데… 그건 어떻게 된 상황일까요?”

 “그건… 뭐… 도통이가 누워있으니까 일으키려고 그랬겠죠?“


아, 그렇군요.

그래 뭐… 이 상황들은 차치하더라도, 내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 이 말은 그냥 흘릴 수는 없었다. 아무리 쓰고 따가워도, 삼키면 내 속에 생채기를 내며 내려갈지라도, 나는 그 말을 소화시켜야 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내 아이를 지켜본 전문가한테서 나온 말이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참을 상담소를 알아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도통이의 소풍날이었고, 어플에 아이들 사진이 올라왔다. 웃으며 사진을 확인했다. 버스에 앉아있는 내 아이 사진이 보였다. 아… 잘 다녀왔구나.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사진에서 내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뭐… 개인 사진에 빠진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반 전체가 찍은 단체사진에도 내 아이는 없었다. 아이가 분명 버스를 타고 소풍을 간 것 같은데, 소풍 사진에서는 그 어떤 사진에도 내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신랑을 깨웠다. 그때 시간이 새벽 한 시였다.


 “여보야, 일어나 보세요.”

 “어? 왜? 뭔데?? 아?? 셋째?”

 

 하… 왜 넌 나만 보면…  나한테 니 셋째 맡겨놨니?


 “여기서 우리 도통이 좀 찾아보세요. 어린이집 소풍 사진인데 아무리 찾아봐도 도통이가 없어요. 혹시나 싶어서 신발로만 찾아봤는데도 없어요. 근데요… 내가… 내가 내 새끼를 못 찾는 걸 수도 있잖아요. 내가 눈썰미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못 찾는 걸 수도 있잖나요. 그러니까 여보야가 찾아봐요.”


신랑의 눈에는 ‘그게 자는 사람까지 깨워가며 시킬 일이냐’는 말이 담겨있었지만, 울 것 같은 내 표정을 보고 묵묵히 고개를 숙여 사진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바로 사태를 파악한 신랑이 말했다.

 

 “제어하기 힘드니까 아이를 방치했나 보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이미 울고 있으니 그랬겠지만서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속은 어땠을까 싶다.


나는 누가 내 새끼를 건드리면 곧바로 들이받아버릴 줄 알았다. 진심으로 나라면 그리 할 줄 알았다. 나는 신체도 정신도 강하니까. 어디 가서 절대로 안 밀리니까. 당연히 그리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도 며칠을 그냥 보냈다. 썩은 물을 하수에 흘려보내듯, 그렇게 날짜를 보냈다. 죽은 시체처럼 귀에 솜을 틀어막고, 입에는 쌀을 넣고 몸에는 염을 한 채로 날짜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0시가 넘어 휴대폰이 울렸다. 어린이집 원장이었다.


알고 보니 선생님한테 문제가 있었으며, 도통이는 문제가 없었노라고. 선생님은 해고를 했으며 그 소식을 나한테 제일 먼저 알리고 싶어서 이 시간에 전화를 했노라고.


그냥 웃었다.

여전히 목구멍에서는 나방들이 펄럭이는 통에 아무 말도 못 했지만 그냥 웃었다. 입을 벌리면 벌레들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바보같이 그냥 웃기만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문자를 남겼다.


 “도통이 퇴소하겠습니다.”


그것뿐이었다. 나는 결국 들이받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랬다가 또다시 일어날 일들이 두려워서 아이를 안고 도망치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실망했다.


“엄마, 엄마는 강하다면서요. 그런데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이렇게 깨지나요? 왜 나는 약한 건데요?”


그러자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니께 강한거여. 깨지고 깨지니께 강한거재.

니는 그리 깨져도 애는 괜찮잖여. 그니께 강한거재.

나중에 도통이한테 물어봐라. 아직도 그 선생이 무서운지… 아직도 그 일땜에 맴이 아픈지…

도통이는… 애는 그거 기억도 못 할꺼여. 안고 깨지면서 도망쳐준 니 덕분에… 그래가 애는 다 잊을 수 있는것이여. 근디 니는… 니는 그 일을 절대 못 잊재. 근디 그런 일은 또 계속 생겨. 그럼 니는 또 깨지것재. 그래도 애는 괜찮여. 대신 깨져주는 지 엄마 덕분에… 애는 계속 괜찮여. 그니께 엄마가 강한거여.


내도… 내도 니보믄서 그랬응께. 내도 아즉까지 가심아픈 일들이 수두룩한디. 니는 기억도 못 하겠지만서도… 근디 그게 을매나 다행이여… 내만 기억하고 내 새끼는 기억 못 한다는게 을매나 다행이여. 내만 아프고 내 새끼는 괜찮다는게… 그게 을매나 다행인겨… 안 그냐??


너 우는 만큼 니 새끼는 안 우니께 걱정 말그라…

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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