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괴롭힘을 당했다.

내가 이 구역 미친년이다.

by 김국주

이 대결에서 지면 도통이는 전학 보낸다.


“가위, 바위, 보!”


아이의 전학을 걸고 세기의 대결을 했다. 학창 시절에도 반장 한번 못 해본 내가 왜 반대표에 사활을 걸었는가.


나는 세상에서 육아가 가장 힘들었다. 아이들이 나에게 주는 사랑이 너무 커서 버거웠고, 내 사랑이 그에 미치지 못해 미안했다. 그럼에도 ‘쟤들이 너한테 고마워해야지.’라고 말해주는 신랑 덕분에 유쾌하게 해 나갔다. 그렇게 나는 신랑과 팀플을 했다.


반대표로 아웅다웅하게 된 배경은 도통이 6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통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용트림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친구가 괴롭혀서 가기 싫다고 했다. 친구와의 트러블이야 늘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어린이집을 가기 싫은 시기도 얼마든지 올 수 있다. 그러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팔다리를 파닥거리며 가기 싫다고 우는 녀석을 등원 차량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러기를 며칠, 도통이의 상태가 점점 심해지기에 결국 괴롭히는 친구가 누구냐 물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내 동지 신랑과 상의했다.


“우리가 도통이에게 무심하지 않으며, 도통이가 겪고 있는 문제를 알고 있음을 선생님께 알릴 필요성은 있어 보여.”


신랑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하여 그다음 날 어린이집을 찾아갔다. 원장님께서는 불시에 급습한 나를 보더니.


“00 때문에 오셨어요?”

“어떻게 아셨어요?”

“다 알죠. 담임 선생님께는 얘기 안 할게요.”


원장 선생님께서는 상담실의 화면으로 도통이의 교실 cctv를 실시간으로 보여주셨다. 나는 그 화면을 바라보며 약 두 시간을 상담했다. 그리고 최종 결정을 내렸다.


“7세 때는 00와 다른 반으로 부탁드려요.”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아이가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도와주는 것이 상책이요, 회피하는 기술을 알려주는 것은 중책이요, 엄마가 나서서 그 상황을 없애버리는 것이 하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하책을 선택하고 말았다. 다른 방법은 몰랐으니까…

여기까지가 최선인 부족한 나 자신을 질책하며…


원장 선생님께서는 난감해하시며 말씀하셨다.


“지금 많은 어머님들이 00랑 반을 떨어뜨려달라 요청을 하셔서요. 확답을 드리기가 힘들어요.”


아하. 그래서 내가 찾아온 이유를 알고 계셨던 거였다. 원장님의 이 어렵다는 대답을 들으니 한편으로는 불안했으며,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불안함은 내가 하책조차 택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데서 오는 감정이었고, 안도감은 지극히도 이기적인 감정이었다.


‘00와 부딪치는 친구가 도통이뿐만이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문제의 근원이 내 아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라는 생각에서 오는 이기적인 감정. 나 역시 내 새끼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엄마였다.


7세에는 도통이는 00와 다른 반이 되었고, 녀석의 용트림은 멈추었다.


그리고 8세가 되어 녀석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반 아이들 명단을 훑었다. 그런데... 그때 그 친구의 이름이 뙇 보이는 것이었다. 당시 도통이와 막냉이와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기에, 나는 막냉이를 하원시키면서 원장님께 말했다.


“원장님, 도통이가 00랑 같은 반 됐어요.”

“그래요? 어휴.... 하필이면.”


하필이면…

저 단어 선정은 분명 실수였으리라. 하지만 원장님의 이 즉각적인 반응에 내 머릿속에서는 경보음이 울렸다. 나는 00의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왜 전화를 했는지, 무엇을 위해 전화를 한 건지 나도 몰랐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면 사실 6세 때 연락을 했어야 했다. 지금 전화를 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냥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00 어머님께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원장님 이야기만 빼고. 이야기를 모두 들은 00 어머님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 도통이가 덩치가 작은 가요? 00는 덩치가 커서요. 그래서 동작이 큰 걸 어떡합니까? 저도 그래서 덩치 작은 애들 근처에는 가지도 말라고 교육시킨답니다. 명구나 준하한테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도통이 얘기는 처음 듣네요?”


아하. 나만 이기적인 게 아니었구나. 나만 내 새끼만 아는 이기적인 엄마는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나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시점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입학하고 약 한 달 후에 학부모 총회라는 것이 열렸다. 학부모들이 서로 얼굴도 보고 담임 선생님도 뵙고 반대표도 뽑고 녹색 대표고 뽑고... 뭐 그런 자리였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다. 늘 그렇듯 구석 자리에 앉아서 친한 엄마들이랑 끼득거리다 오면 될 일이었다. 그러려고 했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이제 반대표를 하실 분을 뽑아볼게요. 혹시 지원해 주실 분 계실까요.”


침묵.


“제가 눈치가 없었죠? 나가 있을 테니 어머님들끼리 상의하시고 결정해 주세요.”


선생님께서 나가셨다. 그리고 다시 침묵.

5분 후에 다시 들어오신 선생님께서 물어보셨다.


“반대표는 결정되셨나요?”


다시 침묵. 그리고 다시 반복. 다시 나갔다 들어오신 선생님께서 또 물어보셨다.


“누가 반대표를 해주실까요?”


다시 침묵. 1분쯤 흘렀을까. 이 불편하고 무거운 침묵을 깨 주신 분이 계셨으니.


“아무도 없으면 제가 할게요.”


바로 00의 어머님이셨다. 백 년의 고독 같은 이 침묵을 깨주신 은인인 만큼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이렇게 일이 마무리되면 되는 것이었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같은 행동을 또 할 수 있을까도 모르겠다. 내 아이를 괴롭히는 아이의 엄마가 반대표가 된다는 것. 사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확률이 더 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미래이며, 모든 공포는 그 불확실성에서 오는 법이다. 그 공포가 내 안의 이기적이고 미친 또 다른 나를 소환했다. 내가 지금 손을 들면 난 절대로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한동안 아니 어쩌면 영원히 만인의 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부당한 대접을 받아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건 어쩌란 말인가. 그것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 모든 생각이 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간 것은 불과 1초도 안 되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선택을 했다. 나는 내 인성과 체면을 포기하고 아이의 1년을 선택했다. 그딴 거 개나 주라지.


손을 들었다.


“아니요. 반대표 제가 할게요. 직장 다니신다 들었는데 전 전업이라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많으니까요.”


알고 있다. 무리수를 두었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 봐도 쉴드가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저 상황에서 “직장”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면 안 되는 거였다. 모든 직장맘들을 적으로 돌리는 언사였다. 누가 봐도 그냥 저 엄마가 반대표 하는 것이 싫어서 그걸 막는 것으로밖에는 안 보였다. 그런 부정적인 이유로 반대표를 해봤자 잘 해낼 리도 만무했다. 나를 노려보는 다른 학부모님들의 마음이 보이는 듯했다.


‘아니, 그럴 거면 아까 손들었어야지. 이제 와서 왜 저래?’

‘여기서 직장맘 이야기는 왜 나와? 미친 거 아냐?’

‘저따위로 해봤자 잘할 수나 있겠어?’

‘쟤가 반대표 하는 건 막아야 하는 거 아냐?’

‘양아치야?’

‘또라이네.’


20명의 시선을 나 홀로 받아내려면 지지대가 필요하다. 눈을 감지 않으려면 눈에 힘이 들어가야 하고, 자세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어깨와 팔에 힘이 들어가야 한다. 그 모양새는 나를 더 양아치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책상에 삐딱하게 기대서 팔뚝으로 상체를 지탱하고 있었으며 눈알은 핏대를 세우고 부릅뜨고 있었고 콧구멍은 벌름거리며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던 00 어머님이 말했다.

“제가 직장 다니긴 하는데 백수나 마찬가지인 직장맘이라서요. 시간은 많아요.”


허… 백수라니?

이번엔 전업맘들을 적으로 돌리는 단어 선정이었다. 그 뒤로도 우리는 수많은 헛소리와 개소리들을 이어나갔다. 뭔 소리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그저 나와 00 어머님은 개소리 릴레이를 할 뿐이었다. 내 멍멍 다음엔 00 어머님의 왈왈… 그리고 다시 내 컹컹… 그렇게 20명이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 둘만의 개소리 공연은 계속되었고, 결론이 나지 않아 결국 가위, 바위, 보까지 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한 판 승으로 이겼다. 그것도 몇 번 더 했으면 얼마나 웃겼겠는가. 그 해 운을 이 대결에 다 쓴 듯했다. 나는 그렇게 반대표 자리를 칼 안 든 강도처럼 빼앗았다.


어떻게 그 교실에서 나왔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 따사로운 시선들을 받아내며 어케어케 인사하고 어케어케 나와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무슨 생각을 하며 그 길을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아까의 행동을 후회하며 걸었을 수도 있었고, 앞으로의 1년을 걱정했을 수도 있었겠다. 아무튼 몹시 복잡한 심경으로 귀가를 하는 도중, 친한 엄마를 만났다. 그냥 지나갈 수 있었다면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언니 언니! 1학년 7반이죠?”

“응.”

“7반 반대표 봤어요?”


보진 못 했다. 누가 영상으로 나에게 보내주지 않는 한 앞으로도 못 볼 것이고. 안 보고 싶다.


“완전 미친년이라면서요? 그게 뭐라고 염병을 떨다가 가위바위보까지 했데요.”


그러게나 말이다. 씨바… 소문 빠르네.

친한 엄마의 그 따끈따끈한 뉴스를 들으며 그 미친년이 나라는 사실을 언제쯤 고백하면 될까 고민하는데…


“어우, 언니, 그 사람이랑 엮이지도 말아요. 완전 개또라이래요.“


나를 걱정하는 저 순수한 눈망울을 바라보며 그 개또라이가 나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


“그래, 고마워. 조심할게 (나를).


블랙홀 by 8세 도통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신랑이 말했다.


“학교 생활도 사회생활이라 권력이 중요해. 하지만 권력의 형태는 다르지. 어떤 친구는 운동을 잘하는 것이 권력이고, 어떤 친구는 공부를 잘하는 것이 권력이고, 어떤 친구는 사교성이 권력이지. 그리고 도통이의 권력은 엄마야. 니가 저 아이들의 권력이라고. 저 놈들한테 너 같은 엄마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욕인지 칭찬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의 이 말은 나에게 꽤나 힘이 되었다.


‘너 같은 엄마’ 라니.....


나는 그렇게 이 구역의 떠오르는 미친년으로 급부상했다.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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