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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Feb 15. 2021

내 아이의 발렌타인데이

아가,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단다.

올해도 발렌타인데이가 찾아왔다.

가게마다 진열되어 있는 어여쁜 초콜릿들과 설렘을 가득 담고 그 초콜릿을 안고 가는 젊은이들, 초콜릿을 잔뜩 안고 와서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내미는 내 신랑 그리고 초콜릿을 사달라고 조르는 도통… 응?? 저 녀석이 왜 초콜릿이 필요한 거지??


 “어… 니가 그게 왜 필요해? 아하… 사방에 초콜릿이 보이니까 우리 도통이도 초콜릿이 먹고 싶었구나?“


 “아니야! 오늘은 내 초콜릿 사는 날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주는 날이야!”


너 그런 건 또 어디서 주서 들었니?


“도통이가 좋아하는 친구들한테 나눠줄 거야?”

“아니! 여러 사람한테 주는 거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단 한 사람한테만 주는 거야!”


와… 이 녀석… 누군지 몰라도 제대로 배웠네.


 “그렇구나. 그럼 우리 도통이는 누구한테 줄 거야?”

 “응! 그건 비밀이야!”


그리하여 나는 지금 몹시 불안하다.

녀석은 예전부터 자신의 마음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 마음을 표현함에 있어서 한 치의 망설임이 없는 친구였다. 다만 그 마음이 늘 “예쁜” 쪽으로만 가는 것이 문제였다.


가장 최초의 기억은 녀석이 6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루는 지 아빠한테 말하길.


 “아빠, 해니라는 아이가 있는데 작아.”

 “얼마나 작아?”

 “아빠 코만 해.”

 “그래?”

 “그런데 아주 예뻐.”


우리 부부는 그 후로도 해니가 작고 예쁘다는 이야기를 아주 오랫동안 반복해서 들었고, 나는 그런 녀석을 위해 해니 어머님께 자주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해니 어머님, 오늘 시간 되세요? 놀이터에서.... “


어쩌겠는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거늘.


또 다른 기억은 도통이가 7살 때로 올라간다. 녀석보다 한참 윗 학년의 아이 중에 유달리 도통이를 이뻐해 주는 고마운 아이가 있었다.


 “도통아, 윤원이 누나가 너 귀엽데.”

 “응? 그래? 그 누나 집엔 거울이 없나봐.”

 “…왜…?“

 “그 누나가 더 귀여운데. 그걸 모르는 걸 보니.”


이쯤 되면 의심스럽다.

저 녀석… 나 몰래 60화짜리 로코 드라마 정주행 하는걸까? 도대체 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멘트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시점은 다시 녀석이 8살, 즉 초등학교 1학년 때로 돌아온다. 책 읽어주는 봉사를 하러 교실로 올라가는데 도통이의 담임 선생님과 딱 마주쳤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도통이 어머님, 아까 도통이가 말썽을 부려서 저한테 조금 혼났어요.”


나는 녀석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아이를 붙잡고 이런 교육을 시킨 적이 있다.


 “도통아, 어린이집과 학교의 차이점이 뭔지 알아?”


 “몰라. 다니는 사람이 다른가?”


 “맞아. 다니는 사람이 다르지.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선생님이 달라. 어린이집은 사교육이지만 학교는 공교육이야. 다시 말해 어린이집 선생님들 월급은 엄마가 주지만 학교 선생님들 월급은 나라에서 주는 거야. 이게 뭘 뜻하는지 알아?”


 “응, 나라가 좋은 일 하네. 울 엄마 돈도 없는데.”


 “어… 그래. 그러니까 넌 선생님 말씀을 더 잘 들어야 해. 어린이집 다닐 때처럼 말을 안 들으면 안 돼.”


 “응! 엄마! 걱정 마!”


이 새끼… 걱정 말라더니…

내 경험상 담임 선생님께서 지나가는 학부모를 잡고 저런 말씀을 할 정도면 놈은 결코 조금 혼난 것이 아니다. 아마 어어어엄청 혼났을 것이고 결과물(눈물)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녀석이 하교하자마자 심문했다.


 “도통이 너,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났다며.”

 “아닌데?”


이 뺀질이 놈이....


 “엄마가 학교에서 선생님께 다 들었어.”

 “아, 그거. 그거 혼난 거 아니야.”

 

 혼난 게 아니면 뭔데?


 “우리 선생님은 그냥 옳은 말을 하신 거야. 우리 선생님은 막 혼내는 사람 아니야.”


아뿔싸. 이 놈의 뇌회로는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사실을 잠깐 잊었다. 이런 일방통행 같은 자식…


 “도통아, 선생님 이뻐?”

 “응! 우리 반에서 제일 예뻐.”


그래, 그렇구나.

이러니!!! 내가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저런 놈이 단 한 사람에게 준다며 초콜릿을 사달라고 설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녀석이 비밀이라고는 해도 어느 정도 짐작은 간다. 필시 같은 반 친구인 수연이나 소영이일 것이다. 아하!! 그렇지!!! 이 녀석 요즘 부쩍 시진이를 자주 찾던데… 초콜릿의 주인은 시진이겠구나!! 핫핫핫. 그래봤자 도통이 너는 내 손바닥 안에 있다!! … 라고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고, 녀석은 정말로 누군가에게 초콜릿을 주고 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사진과 함께 문자를 한통 받았다.


 “언니, 도통이가 나한테 초콜릿 줬어요. 고마워요.”


아하?? 내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갔다.

초콜릿의 주인은 바로 시진이 엄마였다. 도통이의 뮤즈는 시진이가 아니라 시진이 엄마였던 것이다. 내가 도통이를 우습게 봤다. 이렇게까지 세대를 초월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렇다. 도통이는 반에서 담임 선생님이 가장 예쁘다고 했다. 그렇다면 초콜릿 주인의 반경은 당연히 교실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사고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놈이라고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하… 나는 아직 멀었다. 그나저나 시진이 엄마가 고맙다고 하는 걸로 봐서 내가 그 초콜릿을 전해주라고 한 걸로 오해한 모양이다. 녀석을 위해서라도 그 오해를 풀어주자.


 “지연아, 그거 내가 주는 거 아니고 도통이가 주는 거야. 나는 그 초콜릿의 임자가 너인 줄도 몰랐어.”

“아, 그런 거예요? 저 고백받은 거예요? 하하.”

 “응. 그놈이 초콜릿 주면서 뭐라든?”

 “하하하. 저더러 예쁘데요. 도통이 귀여워요.”


어. 귀엽겠지. 니가 보기엔. 어우, 저 한결같은 새끼…


근데 도통아…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단다..


니 사랑은 더더욱… 왜냐면 그분은 이미 결혼을 하셨고 니 또래의 자녀까지 있으시거든… 시진이라고…




덧붙 _ 도통이의 첫 발렌타인

에잇!!! 발렌타인 기념 헤어컷 하잣!!


미용실 가기 귀찮으니 걍 집에서 하자!!!


할 슈 있다!!!


엄마가 미안해….. ㅠㅠ


걍 미용실 다녀옴…

미용사 선생님께 개혼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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