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때 친구는 평생 간다.

아이들 말고 엄마들...

by 김국주
이번 편은 도통이의 같은 반 친구 상진이 어머님의 시선에서 쓰였습니다.


나는 오늘 미친 사람을 보았다.

상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첫 학부모 총회였다.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얼굴 도장만 찍고 올 생각이었다. 이것저것이 끝나고 드디어 마지막 일정, 반대표를 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거 때문에 투표를 하는 곳도 있다고는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해서 다소 무거운 분위기가 연출된다고 들었다. 나는 그저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다. 아니나 다를까 그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는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하셨고, 학부모들은 행여나 누구랑 눈이 마주칠까 전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10년 같은 10분이 흘렀고, 드디어 이 10년 같은 상황을 끝내줄 구세주께서 등장하셨다.

“아무도 없으시면 제가 할게요.”


만세. 끝났다. 감사의 박수가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어? 끝났는데.... 어떤 미친 사람이 또 손을 들었다.


“아니요, 제가 할게요. 직장 다니신다고 들었는데... /@&;₩(@;&:@@;”.”


그 뒷말은 안 들었다. 들을 가치도 없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 양아치들을 만난다. 주행 차선과 추월 차선을 나란히 차지하고 천천히 기어가는 두 대의 트럭들… 추월을 할 거면 빨리 하든가, 아니면 주행 차선으로 도로 기어 들어와서 얌전히 가든가. 하지만 열받는다고 받아버릴 수도 없다. 어쨌든 트럭들 아닌가.


저 미친 트럭 두 대 역시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저 트럭들에겐 교실 내의 20명이 지들 때문에 오도 가도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중에는 없는 듯하였다. 반대표 하면 돈 주나? 검색해 보았다. 아니다. 돈 받으면 철컹철컹이다. 그럼 저 미친 트럭 두 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우리의 귀향길을 막고 저 옘병들인가. 집에 가고 싶었다. 그때 어디선가 구원의 메아리가 들렸다.


“아 씨바. 그냥 가위바위보 해요.”


현명한 제안이었다. 어차피 최악이냐, 차악이냐의 선택이었다. 얼른 대충 정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그 미친 트럭 두 대는 가위 바위 보를 하게 되었고 최악이 차악을 이겼다. 그래, 올해는 저 트럭들이랑만 안 엮이면 되겠지. 지가 반대표를 한들 나한테 뭐 어쩔 수 있겠어. 미친 트럭들의 질주의 끝에서 마침내 귀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 3일 후, 최악의 트럭이 1학년 7반의 단톡방을 만들어 거의 모든 어머님들을 그러모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 짧은 시간 내에 이 많은 사람들을 모았을까? 협박이라도 한 것일까? 궁금했지만 물어볼 방법이 없었다. 어쨌든 나도 그 단톡방에 들어가 있었다. 미친 트럭이 인사를 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자기는 반대표이며 잘 부탁드린다고. 응, 나도 안다. 지금 이 바닥에 너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저 미친 트럭은 단 3일 만에 초등학교 내와 아파트 내에서 꽤 유명 인사가 되었다. 카피숍이나 키즈카페, 놀이터를 갈 때마다 1학년 7반 반대표에 대한 이야기가 쏠쏠 들렸다. 모두 7반의 미래를 걱정해 주었다. 나는 그 수근거림에 딱히 끼진 않았지만, 궁금하기는 했다. 너는 무얼 위해 그 짓을 한걸까. 하지만 그 궁금증은 영원히 풀리지 않겠지… 왜냐하면 나는 저 미친 트럭과 절대로 친해지지 않을 거니까.


일주일 후, 미친 트럭이 반모임을 열었다.

진정 정신이 나간 걸까. 저 트럭은 지 평판을 알고나 있는 걸까. 알고 모임을 연다고 하는 걸까. 나라면 협박해도 못 할 짓을 저 미친 트럭은 잘만 하고 있었다.

반모임을 가보니 미친 트럭이 먼저 와있었다. 셀프 팔짱을 끼고. 젖은 머리로… 미친 트럭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반모임 때문에 머리를 감았다고 중얼거렸다. 감기만 하고 말리지는 않은 저 미친 트럭을 보며 깨달았다. 아, 트럭은 지 소문을 모르는 게 아니구나. 그냥 소문이고 나발이고 신경 쓰지 않는 거였구나.


미친 트럭은 머리를 감고 왔다는 말 이외에는 별 말이 없었다. 심지어 셀프 팔짱을 한 부동의 자세에서 졸려 보이기까지 했다. 총회에 참여하지 않았던 분들은 그녀에게 조심조심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총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 그걸 소문으로 들은 거랑 직접 본거랑은 다르니까. 그날 본 저 여자는 어느 각도로 봐도 미친년이었다. 그저 엮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반모임은 그 뒤로도 이주에 한 번씩 부지런히 열렸고, 나는 첫 모임 이후로 다시는 참여하지 않았다. 올해는 없는 듯 지내기로 했다.


그리고 약 한 달 후, 문제의 카톡이 왔다.

“상진이 어머님, 도통이 엄마예요.”


아!! 미친 트럭이다. 트럭이 왜 나한테 갠톡을 보낸 걸까. 얼른 과거를 돌이켜보았다. 나는 트럭이 연락할만한 짓을 한 적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차단할까.


“상진이랑 도통이가 같은 태권도 학원을 다니더라고요.”


젠장. 몰랐다. 계속 모르고 싶다.


“네, 그런데 어쩐 일로...”

“도통이랑 상진이가 많이 친한가 봐요. 도통이가 하원 후에도 상진이를 찾더라고요. 시간 되시면 놀이터에서 만나서 애들 놀려도 될까요.”


비상이다. 이 여자는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애들 놀리는 건 좋다. 그런데 너는 싫다. 아까 차단할 수 있을 때 차단했어야 했다.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일을 한다고 할까. 아니다. 이미 첫 모임 때 전업이라고 고백했다. 그냥 너랑 만나기 싫다고 할까. 아니다. 미친년한테 함부로 시비 거는 거 아니랬다. 아기 때문에 못 나간다고 할까. 아니다. 나에겐 그럴 아기가 없다. 지금이라도 아기를 만들까. 아니다. 집안 따뜻하게 하겠다고 집에 불을 지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네. ^^ 이따 뵈어요.”


결국 거절할 핑곗거리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고난은 나누는 거랬다. 친한 언니에게 연락했다.


“언니, 반대표가 나한테 만나쟤.”

“헐.... 미친. 왜?”

“놀이터에서 애들 놀리재.”

“그걸 왜 너한테 얘기해?”

“몰라. 그래서 하는 말인데... 같이 가줘.”

“뭐? 야…. 싫어.“

“우린 두 명이잖아. 언니 설마 무서워?”

“야! 아냐! 그런 것들이 알고 보면 별거 아냐. 뭐가 무섭다고 그래! 좋아! 내가 같이 가줄게.”


언니. 안 무섭다며.

약속시간이 되자 친한 언니는 양 옆에 한 명씩을 더 끼고 나타났다. 보기에 꽤나 쎄 보이는 모양새였다.


“언니, 누구셔?”

“응. 오다 만났어.”

아닌데? 복장을 보아하니 집에 있는 사람 억지로 끌고 나온 거 같은데? 그래, 이렇게라도 전투력을 채워준다면 나야 고맙지.

멀리서 트럭이 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응? 왜 혼자 오는 거지? 트럭의 문자를 받은 후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트럭과의 싸움이 여러 번 시물레이션이 되었다. 그래서 저 트럭이 혼자인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우리의 만남은 평화로웠고 그 시물레이션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그리고 친한 언니의 말이 맞았다. 트럭은 정말로 별 게 아니었다. 그저 허당에 생각이 없는 인간일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트럭, 아니 도통이 엄마와 친해졌다.


상진이네와는 그 뒤로 거의 일 년간, 즉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까지 거의 매주 만났고, 현재는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덧붙.

가끔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그 당시에 저의 평판을 몰랐냐고. 몰랐을 리 있겠습니까. 저도 듣는 귀가 있는데…

2학기 때 쿠데타를 일으켜서 반대표를 바꾸자는 모의도 했다고 하더군요. 개교 이래 처음으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전복되는 반대표가 될뻔했습니다. 그 쿠데타만 성공했어도 제가 더 악명 높아질 수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지금요? 지금은 그 친구들이 내 눈앞에서 ‘총회 때의 내 모습’ 을 완벽하게 재연해 줍니다. 그리고 제가 장난이 잘 먹히는 인간이라며 툭하면 장난을 칩니다.

뭐… 어쨌든 제가 그 친구들에게 만만해져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 소중한 한 해였습니다. 사랑합니다.

코로나 터지기 전의 일입니다.

이전 11화내 아이가 괴롭힘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