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국주 Apr 19. 2021

유난히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내 아이.

누굴 탓하리

“언니! 도통이가 웃통을 벗고 돌아다니고 있어!”


친한 동생한테서 카톡이 왔다.

어… 그러니까 저 톡을 해석해 보자면, 내 새끼가 옷을 벗고 공공장소를 활보하고 다닌다는 뜻이 되겠다. 하물며 요즘은 애완동물도 옷을 갖춰 입고 다니는 시대인데. 하… 아들을 7년쯤 키우면 웬만큼 적응이 될 거라 생각했건만… 완벽한 오판이었다.

  

 “민선아, 놈을 산채로 포획해서 집으로 보내줘.”

 “응! 언니! 방금 잡아서 집으로 보냈어!”

 “고맙다. 전우여.”

 “응. 언니. 힘내.” (그래. 힘낼게.)


잠시 후 현관문의 비번이 눌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상의를 완전히 탈의한 도통이 녀석이 들어왔다. 하하하. 눈이 부셨다.


이럴 땐 도대체 뭐부터 물어봐야 하는 건지.

티셔츠는 왜 벗었는지. 벗었으면 왜 다시 안 입었는지. 그리고 그 티셔츠는 어디다 버렸는지. 그런 상태로 돌아다니면 젖꼭지랑 배꼽에 바람이 솔솔 통했을 텐데 안 허전했는지.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도통아, (이 새끼야) 너 안 허전하냐?”

 “응? 뭐가?”


하? 뭐가?


 “지금 젖꼭지랑 배꼽에서 바람이 솔솔 통하고 있는데 안 허전하냐고?? (이 자식아).”

 “응! 어쩐지 배꼽이 시원했는데 어떤 이모가 알려줬어! 그래서 집에 왔어!”

 

그래. 너는 그걸 알려줘야 아는구나.

단전에서부터 용솟음쳐서 올라오는 깊은 빡침과 함께 온갖 욕들이 튀어나오는 것을 꾹꾹 구겨 넣었다. 그러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래. 차라리 그냥 웃자.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날은 녀석이 수영 학원을 가는 날이었고, 갈 땐 멀쩡히 옷을 입고 갔지만 수영을 마친 후 수영복을 벗고 샤워를 하고, 티셔츠를 깜빡하고 바지만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하… 어떻게 된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아, 짐작이 갔다는 거지 이해까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티셔츠 입는 것을 까먹을 수가 있단 말인가!?! (사실을 말하자면, 수영 학원에서 애를 이 상태로 보낸 것이 더 납득하기 어려웠다.)


도통이는 유난히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뭐… 우산 같은 것은 그냥 일회용이고, 지우개나 연필 역시 미리 잔뜩 쟁여두는 것이 좋다. 필통이나 공책도 여분을 사두는 것이 좋으며, 혹시 가능하다면 교과서도 드림받아두는 편이 현명하다. 학교에 교과서를 두고 와서 숙제를 못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당연히 알림장도 두고 온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해 가능한 범주 내에 있다. 도저히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 없는 품목들이 있다. 예를 들면 몸에 착용하는 것들. 그래, 외투는 그렇다 쳐도, 어떻게 상의를 탈의하고 올 수 있으며, 왜때문에 양말을 벗어놓고 다니고, 실내화, 신발은 발에 끼워져 있었을 터인데 어떻게 두고 올 수 있는 것인지?!?


진정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없다!!!!

… 라고 말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새가족의 둥지 by 7세 토리

때는 막냉이가 태어나던 해 3월쯤이었다.

막냉이가 2월생이니 태어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겠다. 그러니까 우리, 즉 나와 막냉이는 아직 어색하던 때였다. 막냉이가 아무리 어려도 도통이와 나는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막냉이를 두꺼운 우주복에 돌돌 싸서 키즈카페를 갔다. 그렇게 키카에서 두어 시간을 버틴 후 나는 도통이를 다시 유아차에 싣고 귀가했다.


귀가하던 길 중간쯤..... 뭔가 허전했다. 뭐지? 왜 이리 가볍고... 앞이 허전하고 손이 자유롭고.... 아! $£¥£&&₩)&₩)&>^#... 순간 내 입에서 평생 배우고 익힌 욕이 다 쏟아져 나왔다. 젠장!!!! 내 막냉이를 키즈카페에 두고 왔다!!!! 나는 늦겨울의 미친년처럼 헐레벌떡 뛰어서 키즈카페로 되돌아갔다. 숨을 헐떡거리며 도착하니 사장님께서 우주복에 돌돌 싸여있는 막냉이를 안고 있었다. 사장님께서는 나를 보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씀하셨다.


 “아기 놓고 가셨죠?”


아,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 순간 민망함이 밀려들었다.


 “하하핫. 아기 놓고 가는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있나요? 하하핫.”

  “아니요. 어머님이 처음이십니다.”


아하… 그렇구나. 내가 처음이구나.


 “아.... 네..... 그럼.. 수고하세요.”


이럴 때는 그냥 입 닫고 빨리 나오는 게 상책이다. 뭘 더 주저리 주저리 해봤자 수습해야 할 상황만 더 깊어질 뿐이다. 마치 버리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냉동실의 맥주처럼. 그것 좀 시원하게 만들어보겠다고 냉동실에 맥주를 집어넣은 한 시간 전의 나를 비난해 봤자 이미 늦은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후로 키즈카페 사장님과는 흔치 않은 추억을 공유한 절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막냉이가 5살 때였다. 

(그런데 왜 막냉이만 잃어버리는 거지?) 이마트에서 막냉이의 손을 순간 놓쳐버렸고 놈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너무 놀라서 머리는 망나니 산발을 하고 미친년처럼 아기를 찾으러 다녔다. 찾다 찾다 미아보호센터로 막 튀어가려고 하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애기 엄마. 혹시 애기 찾아? 저기 우유 코너에 애기 엄마랑 똑같이 생긴 애기가 우유만 쳐다보고 있던데? 동글동글한 아기.”


우유 코너로 미친 듯이 내달렸다. 이상하다. 아까 갔을 때는 없었는데. 그런데… 정말로 막냉이가 그곳에 있었다. 녀석은 우유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하아... 정말 다행이다. 다행인데....


그 어르신은 얘가 내 아이인걸 어찌 아셨지?

누가 김국주이고 누가 막냉이일까요?

Ctrl+c & Ctrl+v


방심은 금물. 명심하자.

육아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전 13화 내 아이의 발렌타인데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