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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Mar 22. 2021

니가 편식이라도 했으면 좋겠어.

제발 뭐라도 먹어다오.

우리 부부가 애인이던 시절, 그러니까 서로를 아직 잘 모를 때였다. 우리는 고기 파티를 하러 삼겹살집에 들어가서 3인분을 주문했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러고 그 뒤로 3인분씩 세 번을 더 추가했고, 결국 둘이서 총 12인분을 해치웠다. 연애 초반에는 내숭을 떨 법도 하건만… 우리는 둘 다 먹는 것에 진심이었다. 물론 서로가 서로에게 살짝 놀라긴 했지만, 곧 적응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냥 문을 들어서면서 12인분을 시켰다.

 

그런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 아이를 가졌다. 우리는 우리의 유전자를 믿었고 단 한 번도 그걸 거스르는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도통이는 3.7로의 우량아로 태어났다.

녀석을 배에 품고 있을 때 나의 식성으로 마음껏 키웠던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내 품을 떠난 녀석의 몸무게는 불과 8킬로였다. 상위 1퍼센트…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성장 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거 같으니 호르몬 검사를 받아보라. 라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성장 호르몬이고 나발이고 이 녀석은 그냥 드럽게 안 먹는 놈이었다. 호르몬 지깐것들이 제아무리 열심히 일한들 음식이 들어와야 성장을 할 것이 아닌가. 놈은 그저 안 처먹어서 안 크는 것이었다.


안 먹는 아이들의 특징!! 병아리가 와서 쪼아 먹어도 금방 사라질 것 같은 하찮은 양의 음식을 거의 한두 시간에 걸쳐서 먹는다. 아니, 먹어주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아예 입술을 꾹 닫은 채 작정하고 거부를 하는 날은 방법이 없다. 혹시 음식 안의 독을 의심하시나 싶어 먼저 기미까지 해보였지만 소용없었다.


도대체 이 녀석들은 왜 이러는 걸까.

얼핏 듣기로 독에는 쓴맛이 나는 경우가 많아서 문명이 생기기 이전에 쓴맛을 거부하는 놈들만 살아남았다나 뭐라나. 하... 내가 이런 헛소리까지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것인가. 먹어보지도 않고 거부를 하는데 맛이 쓴 지 안 쓴 지를 지가 어떻게 알 것이며, 독이고 나발이고 아예 처먹지를 않는데 뭘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았다는 것인지… 지를 낳아주고 키워주는 어버이에 대한 믿음이 길바닥에 널려있는 잡초보다도 못 하단 말인가.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봤다. 희빈 장씨가 사약을 거부하자 뜯어낸 문짝으로 몸통을 누르고 사지를 포박해서 억지로 먹이는 장면. 그 장면을 보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먹었는지는 잊었다.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딱 하나. “결국은 억지로라도 먹더라.” 이거뿐. 나는 그날 이유식으로 사극을 찍을 뻔했고, 아동 학대로 철컹철컹 될 뻔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육아의 분산 투자는 불가능하다. 대소근육 발달, 책 육아, 조기교육, 수면 교육… 이고 나발이고 오로지 “밥” 에만 몰빵 투자를 하게 된다. 한 끼 먹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에서 두 시간. 그걸 총 3끼를 먹여야 한다. 즉 나는 하루에 무려 4-6시간을 저 녀석 입에 음식물을 쑤셔넣는데만 집중해야 했다. 편식? 고려 대상이 아니다.

제발 편식이라도 해서 뭐라도 먹어주었으면 했다.


늘 그렇듯 어디에나 태평양 같은 오지라퍼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그들의 종특으로는 자신들이  주는 것이 관심인지, 충고인지, 조언인지, 시비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엄마 요리가 맛이 없나 보네. 요리 학원을 다녀보는  것은 어때요?”


내 장담컨대 이놈은 니 요리도 안 먹는다.

내가 난다 긴다 하는 식당들을 안 가봤겠는가. 설마 내가 만든 음식만 고집했겠느냐 말이다. 저건 나를, 아니 인류를 띄엄띄엄 보고 하는 충고이다. 인류가 그렇게까지 생각이 없었다면 진즉에 멸망했을 것이다.


 “안 먹으면 주지 마세요. 끼니 한 끼쯤 걸러도 안 죽어요. 지가 배 고프면 먹습니다.”


한 끼 걸러도 안 죽는다는 사실… 너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이놈은 매일 한두 끼씩은 거부하는 놈이었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굶겨봤다. 밥 달라고 방바닥을 긁으면서 울 때까지 굶겼다. 믿기지 않겠지만 놈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 자기 전까지 버틴다. 그리고 자려고 이불 깔면 반응이 온다. 굶긴 효과... 딱 한 끼 나타난다. 자고 일어나면 리셋이다. 굶긴다고 해결되면 왜 수많은 엄마들이 가슴에 열십자 그려가며 아이랑 대환장 파티를 하겠는가. <밥 안 먹는 아이들에 관한 육아서>는 왜 그리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오겠는가 말이다!!!


 “30분 후에 밥상을 치워버리세요.”


어… 저건 진정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순백의 순수무결한 발언이다. 나더러 그냥 하루 3번씩 세상 쓸모없는 헛짓거리를 하란 말이다.

어… 어디 그럼 니가 해봐.


상황이 이러하니 나는 아이의 밥을 먹일 수만 있다면 인간의 기본적인 소양마저도 기꺼이 포기했다. 예를 들면 교양, 염치, 예의... 이런 것들….


도통이가 4살 때였다. 나는 그날도 녀석과 밥 전쟁을 하러 맛집으로 유명한 칼국수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어? 주문을 하고 물을 뜨러 간 사이에 아이가 사라졌다?!!? 주위를 휘휘 둘러보니 놈은 옆 테이블의 처음 보는 할아버지 무릎 위에 앉아서 그 할아버지 그릇에 있는 칼국수를 손으로 집어서 먹고 있었다. 하아…. 이런 내 새끼가… 언능 내 새끼를 수거해 가려는데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놔둬. 내가 먹일게. 애엄마는 편히 식사해.”


그런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을 데려왔어야 옳다. 하지만 내 눈에는 지금 녀석이 음식을 먹고 있는 것만 보였다. 그것 말고는 세상에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그 할아버지께 놈을 맡겼다. 물론 그분 말씀처럼 편히 식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를 보니 그날 하루가 꽉 찬 느낌이었다. 녀석은 배불리 먹고도 할아버지 무릎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그분과 헤어질 때는 세상이 끝난 것 마냥 울었다. 지금까지도 그때 생각을 하면 되뇌인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10세인 도통이는 어찌 되었을까.

필자는 아직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

그건 다음 화에 올라옵니다. ^0^

(이거 해보고 싶었다요.)



덧붙_ 사진툰


다섯살 도통이 _ 짜장면을 스스로 먹다?!


어허, 도통아, 원본 탐내지 마.


........ 원본에 손 털지 마.


옆에서 이유식 먹고있는 막냉이


상태야 어떻든 잘 먹는 녀석들.


아니야. 도통아. 엄마는 안 먹어. 너나 먹어.


아니야, 막냉아, 너한테 먹으라고 한 거 아니야.


막냉 : 형아, 나도 좀 줘.


아빠 : 짜장면은 막냉이 먹는 거 아니야. (기분 상한 막냉이)


말이 안 통하니 힘으로 뺏는 막냉이 시키


oh, my.... 결국 그릇을 엎는 막냉이 놈…


이런… 막놈…..


지도 사고 친 걸 아는지 아빠 눈치를 보는 막냉이


적반하장 하는 다리 짧은 막냉이와 짜장면을 주무르는 도통이


지가 주무르던 짜장면을 나눠주는 도통이


행복한 막냉이


지들은 해피엔딩.



이전 15화 이것이 진정한 군대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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