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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Mar 29. 2021

밥 안 먹던 우리 아이, 지금은?

냉장고에 락을 걸어야 할 듯.

“엄마, 나 이따 축구 가기 전에 밥 줄 거야?”


도통이가 돈가스를 잔뜩 쌓아놓고 점심을 먹으면서 물었다.


 “도통아, 너... 축구 두시 반이란다.”

 “응! 알아.”

 “지금은 열두 시 반이고, 넌 지금 밥을 먹고 있고...”

 “응!”

 “그런데 두 시간 만에 또 밥을 먹어야겠니?”

 “그래? 안 줘? 그럼 나 지금 한 그릇 더 줘.”


도통아, 너 이미 두 그릇째야.


그렇게 도통이는 열두 시 반에 밥 두 그릇을 비웠다. 그리고 축구를 다녀온 후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면서 말했다.


 “엄마! 나 배고파!”


롸?!?


“도통아, 너 밥 먹은 지 세 시간밖에 안 지났어.”

“그치만 축구하고 오면 배고프단 말이야.”


허.. 내가 너 축구하는 걸 봤는데? 전혀 배가 고플만한 일을 안 하던데... 그래도 운동을 해서 배고프다는 아들의 말을 무시할 수 없어서 또 밥을 줬다. 그리고 7시가 되자,


“엄마! 나 배고파!”


와우, 신생아니? 왜 식사 텀이 세 시간이야? 그리고 아깐 운동해서 그렇다 치지만 지금은 앉아서 자동차 장난감만 굴렸잖니.


“도통아, 너 이따가 10시에 또 배고프다고 할 거잖아. 안돼! 한 시간만 참아! 8시에 줄게.”

 

그러자 녀석은 세상 서러운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소용없다, 아가. 그리고 30분 후에 신랑이 퇴근했다. 아빠를 본 녀석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졌고, 볼때기는 다람쥐 볼이 되었다.


“아빠, 나 배고픈데 엄마가 밥을 안 줘. 나 세 시간 동안이나 쫄쫄 굶었어.”


뭐? 쫄쫄 굶어? 이런 내 새끼가. 빠르게 상황 파악을 한 신랑이 반달눈을 하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 도통이가 세 시간이나 금식을 했구나. 기다려봐. 아빠가 볶음밥 해줄게.”

“응! 아빠 최고!”

“그렇지? 도통이는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응! 아빠가 제일 좋아!”


 하, 둘이 아주 자이브 스탭이 척척 맞는구나.


그렇다. 드럽게 안 먹던 그 도통이가 이렇게 변했다. 잘 먹기 시작한 시기는 7세부터였던 것 같다. 그리고 살이 찌기 시작한 것은 8세부터였다. 몸무게 상위 1%였던 녀석이 지금 검사를 받으면 ‘비만’ 이 나온다.


도통이는 7세까지 살가죽에 뼈밖에 없었다. 앞판의 갈비뼈는 물론, 뒤판의 갈비뼈까지 보였다. 지금은 그 뼈를 만지려면 살을 뒤져야 한다. 한참을 조물거려야 뼈로 추정되는 것이 만져진다. 마치 말하는 곰인형 속에 있는 호두만 한 기계를 찾는 느낌이랄까. 부드러운 찐빵 속의 콩을 찾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녀석은 자기가 뚱뚱한 걸 인정하지 않았다. 울라프 같은 허리에 손을 얹고 나에게 화를 냈다.


“엄마! 나 뚱뚱한 거 아니야!”

“그럼 뭔데?”

“난 통통한 거야! 그리고 우리 집에서 나한테 뚱뚱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막냉이뿐이야!”

“왜지?”

“막냉이만 날씬하잖아!”


뭐?? 아빠는… 그래, 그렇고..... 나는?


“엄마는?”

“엄마도 뚠뚠해! 엄마 팔뚝에 비해 티셔츠가 너무 작아!! 티셔츠 터질 거 같아!! 그리고 엄마는 가슴이 커서 배가 안 나와 보이는 거야! 사실은 엄마 배도 뚠뚠해!!”


하, 칭찬과 욕을 동시에 들은 느낌이다.

그럼 이렇게 바득바득 대드는 녀석이 먹는 양은 어느 정도 일까. 우리 네 식구는 치킨을 3마리 시킨다. 우리 부부가 대식가인 것을 감안하고 막냉이가 거의 안 먹는 것을 생각하면 도통이 혼자 반마리 넘게 먹는 셈이다. 물론 밥 두 공기와 함께!! 삼겹살도 반 근 넘게 먹는 듯하다. 물론 밥 두 공기와 함께!! 여기서 포인트는 도통이는 뭘 먹든 밥을 두 공기씩 함께 먹는다는 것이다.


하루는 외갓집에 놀러 갔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고여사 님께서 말씀하셨다.


 “도통아, 우리 이따 산에 놀러 가자.”

 “그래? 그럼 든든하게 먹어야겠다.”


밥을 두 그릇째 퍼먹고 있는 도통이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고여사님이 말씀하셨다.


 “니가 든든하게 안 먹은 적이 있니?”


그 말을 한 귀로 흘린 도통이가 나물 반찬을 가리키며 말했다.


 “외할머니! 이거는 맛없어요!”

 “그려… 니가 맛없는 것도 있어야지.”


밥을 다 먹은 도통이가 말했다.


할머니, 나 배불러서 남길래요.”


녀석의 밥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고여사 님이 말씀하셨다.


“남겼다믄서. 암것도 없는디?”

”여기 남았잖아요.”


도통이가 오동통한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밥그릇에 붙어있는 밥풀 몇 개였다. 한참을 그릇을 들고 요리조리 살피던 고여사가 말씀하셨다.


 “그려… 울 손주가 그릇을 남겼네....”


이렇듯 도통이가 잘 먹는, 아니 많이 먹는다는 사실은 이젠 자타공인이 되었다. 이쯤 되니 녀석도 자신이 뚱뚱하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엄마, 어린이가 식사량을 줄여서 살을 빼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래.”


그래, 그건 맞는 말이지. 한참 클 나이에 먹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


“엄마, 운동으로 쓸 수 있는 칼로리는 엄청 적데. 운동으로 살 빼려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래.”


아?? 아니, 식사량도 못 줄여, 운동도 안 해, 그럼 넌 뭘 할 건데?


“그럼 우리 도통이는 뭘 할 거야?”

“엄마, 내가 꼭 뭘 해야 해? 잘 생각해 봐. 뚱뚱한 건 좋은 거야. 봐봐. 아빠도 뚱뚱하잖아. 엄마도 뚱뚱하고.”


이 새끼가. 나는 안 뚱뚱하다니까!


“도통아, 아빠가 뚱뚱해도, (엄마는 의도적으로 제외시킴) 뚱뚱한 것보단 날씬한 게 더 건강에 좋지 않을까?”


그러자 녀석이 팔을 파닥이며 앙탈을 부렸다.


“아냐! 뚱뚱한 우리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어! 그니까 뚱뚱한 건 좋은 거야!”


 ‘뚱뚱’이라는 단어가 반복 재생될 때마다 움찔대던 신랑이 듣다못해 말했다.


“도통아, 그.... 아빠 뚱뚱하다는 말 좀 그만할 수 없을까?

“그치만 아빠는 크고 멋있고 뚱뚱한걸? 자동차 같아. 엄청 멋있어.”


이번엔 신랑이 욕과 칭찬을 동시에 들었다.

도통아, 아무리 그래도 아빠더러 자동차 같다니. 코끼리도 아니고... 자동차는 공산품이잖니. 하긴… 지 딴엔 지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크고 멋있는 걸 갖다 댄 거겠지. 어쩐지... 신랑 등 밀어줄 때마다 내 스파크 세차하는 느낌이 더라니.


그런데 아빠한테는 저토록 관대한 놈이 나한테는 그렇지 못하다. 그날도 나는 오전 운동을 마치고 단백질을 말아먹고 있었다. 그걸 물끄러미 보던 도통이 놈이 하는 말.


“엄마, 단백질 우유 먹는구나? 다이어트는 포기한 거 아니었어??”

“뭐? 아냐! 뭘 포기해? 포기한 적 없어.”

“에이, 저번에 치킨 먹는 거 보니까 포기한 거 같드만.”


뭐? 이 자식이! 그중 한 마리는 니가 먹었잖아!


사람들이 묻는다.

그렇게 안 먹던 아이를 어떻게 저렇게 잘 먹게 만든 거냐고. 나도 모른다. 그렇게나 안 먹어서 비쩍 말랐던 도통이가 어째서 하루에 밥을 6그릇씩 먹는 오동통이가 됐을까. 나는 맹세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오히려 하는 것마다 실패했었다. 그냥 많은 분들이 해주셨던 수많은 조언들 중 하나.


 “때 되면 다 먹어. 걱정 마.”


이거 하나만 맞았던 모양이다.

안다.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주는 조언이다. ‘니가 굳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해결된다.’라는 의미와 동시에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나 역시 저 조언을 들을땐 그 어떤 말보다도 쓸모없게 느껴졌었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저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조언이 영원히 쓸모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오늘도 수저를 들고 아이 뒤를 쫓아다니며 온 하루의 시간을 바스스 태우는 수많은 어머님들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을 하고 있다는 거…  한 아이를 먹이고 한 아이를 키워내는 일은 우주 하나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사실말이다.

날씬 도통이와 통통이 중간 시절


살찌는 건 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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