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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Mar 15. 2021

아이가 드럽게 말을 안 듣는다고요?

네, 제 아이도요...

 “도통이가 요즘 사춘기인 거 같아요.”


태권도 관장님께 이런 말씀을 들었다.

이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이세요? 9살짜리가 무슨 사춘기에요?’ 라고 반응하면 절대로 안 된다. 나는 8년 차 경력의 아들 둘 엄마 아닌가. 행간을 읽어야 한다. 선생님들은 절대로 속에 있는 말씀을 곧이곧대로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분들은 속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누르고 눌러서 서서히 삭힌 후에 최대한 순화하고 유화해서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저 문장은 다시 말하면,


 “이 놈의 자식이 말을 드럽게 안 들어요.”


쯤으로 해석하면 된다. 그리고 저 말이 분노를 누르고 눌러서 서서히 삭힌 다음에 나온 말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즉, 이놈시키가 말을 안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 이제 나는 무얼 하면 되는가. 일단 선생님을 진정시킨다.


 “네, 관장님. 제가 도통이랑 얘기해 볼게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선생님께서는 학부모에게 의미 전달이 잘 되었음을 아신다. 그러면 이제 전화를 끊고 녀석이랑 얘기는 개뿔… 협박을 하면 된다.


 “도통이 너! 관장님 말씀 안 듣고 자꾸 장난치면 나중에 검은띠 안 주신대.”


인과관계 같은 거 필요 없다. 치사해도 그냥 아이가 가장 갖고 싶은 걸로 협박하는 것이 제일 잘 먹힌다. 아이도 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여기서 수긍한다. 그런데 간혹 반발이 들어올 때가 있다. 그때는 아이가 진짜로 억울한 경우이다.


며칠 전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도통이가 요즘 사춘기인가 봐요.”


이번엔 수영 학원이었다. 어쩜 이렇게 다들 멘트가 비슷하신지. 다 같이 관련 교육이라도 받으시나.


 “아, 그렇군요. 도통이가 어떻게 말을 안 듣나요?”

 “네... 자유형을 하라고 하면 자유형을 안 하구, 배영을 하라고 해도 배영을 안 해요.”


그럼 그 자식은 수영 시간에 뭘 하나요?


 “네, 그렇군요. 그럼 도통이는 뭘 하나요?”

 “하긴 하는데... 제 눈앞에서만 하고 제 눈에서 벗어나면 안 해요.”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도통이랑 얘기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놈을 노려봤다.


 “김도통, 이리 와봐. 너 왜 수영 선생님 말씀을 안 들어. 선생님 말씀 안 들으면 수영 못 다니는 거야.”

 

보통은 여기까지만 협박해도 아이에게 ‘노력은 해보겠다’ 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날은 달랐다. 도통이는 똥그란 눈을 더 똥그랗게 뜨고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냐! 엄마! 나 수영 학원에서는 말 잘 들어!”


하아... 그 말 잘 듣는다는 기준이 선생님은 조금 다르신가 보지. 그리고!! 수영 학원에서는? 딴 데서는 말을 안 듣는다는 사실을 지도 아주 잘 알고 있다.


 “도통아, 너.... 선생님께서 자유형 하라시면 자유형 하고, 배영하라고 하시면 배영 하고... 좀 그러면 안 될까? (제발)”

 “엄마! 나 자유형 하라고 하면 자유형 하고, 배영 하라고 하면 배영 하는데? 억울하다!”


아니, 이게 진짜... 진짜 억울한 거 같은데?


 “선생님께서는 도통이가 선생님 눈앞에서만 하고 멀리 가면 안 한다고 하시던데?“


그때 도통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 울면 대화가 안 되니 목소리 톤을 좀 부드럽게 해 보자.


“우리 도통이가 왜 멀리서는 안 할까?”


그러자 녀석이 도라에몽 같은 주먹을 꼭 쥐고 파닥거리면서 대답했다.


 “힘드니까! 힘들어서 끝까지 못 가!”


아뿔싸!! 내가 이 녀석의 체력을 잊고 있었다.

도통이에게는 레일 하나를 멈추지 않고 달릴 체력이 없었다. 선생님 눈앞에서의 수영. 그것이 녀석에겐 최선이었다. 녀석의 쿠크다스 같은 체력은 평범한 주부인 나로서도 납득이 힘든데, 운동하시는 수영 선생님께서 이해하실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 경우에는 도통이가 아니라 선생님을 설득해야 한다. 선생님, 도통이는 운동 능력이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나도 아직 많은 선생님을 만나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나본 바에 의하면, 아이가 말썽을 부렸을 때 선생님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도통이가 7살 때였다. 이번에도 학원이었다.


 “어머님, 도통이가 너무 말을 안 들어요. 제가 여자라서 무시하는 것 같아요.”


하하, 이건 또 무슨 신박한 민원인가.


 “선생님?? 일정 부분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 도통이가 말을 안 듣는 건... 네, 그렇습니다. 말 드럽게 안 듣죠? 그런데 선생님이 여자라서 무시한다는 말씀은 오해십니다. 왜냐하면 도통이는 남자 선생님 말도 드럽게 안 듣습니다. 도통이는 모든 사람 말을 드럽게 안 듣습니다.”


도통이가 여자 선생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말을 안 듣는다는 사실이 그 선생님께 위안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빠보다 엄마를 더 무서워하는 7살짜리 도통이가 선생님이 여자라는 이유로 말을 안 들었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많이 겪어보지 않은 선생님이라면 충분히 그런 오해를 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통이를 8년간 겪어본 엄마로서 선생님의 빡치는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도 아니었다. 하지만 쌍방을 위해 그 학원은 그만두었다. 아이를 위해서도 선생님을 위해서도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도통이가 1학년 때였다. 담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머님, 도통이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안 해요. 가정에서 교육 좀 부탁드려요.”


하아, 이 글을 쓰고 있자니 또 열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살면서 ‘무소식이 희소식’ 이라는 옛말을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제발.... 전화 좀 안 받게 해 줘. 이 자식아!


놈은 집에서도 부름에 응답을 하지 않는다. 부르다 부르다 내 언성이 천정까지 높아지면 그제야 굉장히 억울한 눈을 하고 대답한다.


 “엄마는 왜 맨날 소리 질러?”


하, 이쯤 되면 내가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아이가 2학년이 되었을 때 먼저 선생님께 자진 납세를 했다.


 “선생님, 도통이는 불러도 대답을 안 해요. 그게 일부로 그러는 건 아니고 진짜 못 듣는 거 같아요. 그래도 가정에서 계속 주의를 주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께서 대답하셨다.


 “아유, 어머님, 걱정 마세요. 남자애들은 원래 그래요. 저도 아들 둘 키워봐서 알아요. 그래도 지금은 나은 거예요. 앞으로는 더 심해져요.”


응? 뭐지? 안도감과 좌절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이 멘트는?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이신지요, 걱정하라는 의미이신지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올 한 해는 제 맘이 좀 편할 듯합니다.


한때 최민준 소장님의 강의를 뻔질나게 쫓아다닌 적이 있었다. 최민준 소장님께선 늘 물으셨다.


 “혹시 질문 있으신 분? 내 아이가 좀 이상한 것 같다? 이런 행동 이해가 안 간다? 손 들어주세요.”


사실상 이때 쏟아져 나오는 질문들은 다들 비슷했다. 대충 요약하면 이런 말이었다.


 “네, 아이가 말을 안 들어 처먹습니다. 지 말은 할 줄 아는데 내 말은 못 알아듣습니다. 무엇보다 제 말을 씹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안 합니다. 밥 먹으라는 말에만 반응합니다. 대답을 하더라도 정말 대답만 합니다. 그렇다고 고집이 센 것도 아닙니다. 분위기를 감지하면 바로 자기주장을 굽힙니다. 그냥 순수하게 말을 안 들어처먹는겁니다.”


그러면 최민준 소장님께서 물으신다.


 “아이가 몇 살입니까?”

 “네, 9살이에요.”


최민준 소장님은 씩 웃으시면서 대답하신다.


 “네. 정상입니다.”


우리는 저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그렇게 강의를 쫓아다니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은 원래 그렇습니다. 정상입니다. 당신 아이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이 평범한 말이 태평양처럼 위안이 되는 것은 왜일까.


아이가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다고요?

네, 제 아이도요.


사랑해, 내 아가
덧붙_ 아예 안 듣는 건 아닌 것 같다?

도통이가 엎드려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녀석을 불렀습니다.

 “도통아.” x 3

역시 미동도 안 하더군요.
그래서 방식을 살짝 바꿔봤습니다.

 “도통아, 빵 먹자.”

저 말에 아이가 번개처럼 일어났습니다.
이늠시키... 귀에 필터가 있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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