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글쓰기, 어떡하지....
초등학생들이 싫어하는 숙제 1위는 뭘까??
여기저기 물어본 바로는 바로 일기 쓰기!!! 그리고 그 외에도 독후감 쓰기, 보고서 쓰기 외 각종 쓰기들이 모조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아이들의 이 ‘싫다.’ 는 의미는 ‘귀찮다.’ 라기보다는 ‘어렵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세상 쓸모없으면서도 상당히 귀찮아 보이는 짓들을 잘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어려운 글쓰기를 도대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어. 나도 잘 모른다. 어깨너머로 배운 바로는 아이가 스스로 쓰게 하고, 웬만하면 결과물에 손대지 말라고 하던데...
그런데 막상 도통이는 글쓰기를 전혀 어려워하지 않는다. 아, 오해할까 봐 말씀드리자면, 지가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결코 잘한다는 뜻은 아니다. 띄어쓰기 따위는 태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이요, 문법은 물론 철자법도 녀석의 안중에는 없다. 그저 마음에 있는 말들을 뇌의 허가를 거치지 않고 지면에 와르르 쏟아낼 뿐이다. (사실 나도 브런치를 그리 쓰기에 할 말은 없지만서도.) 그러니 녀석에게는 글쓰기가 어려울 턱이 없다. 하여 ‘아이가 스스로 쓰게 한다.’ 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정한 고난은 ‘아이의 결과물에 손대지 않는다.’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고난은 당연하게도 녀석의 고난이 아닌 나의 고난이다. 그 이유는 문법과 철자법이 개…엉망인 녀석의 결과물을 학교에 제출하는 것이 꺼려져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바로 녀석이 뇌를 거치지 않고 와르르 쏟아낸 결과물의 ‘내용’에 있다.
가독성이 몹시 떨어지니 도통이의 모든 글들은 번역해서 옮기겠습니다. 틀린 철자도 필자가 알아서 고치겠습니다.
생일파티를 했다. 아빠 생일이었다. 엄마는 춤을 춰야 한다고 했다. 나는 부끄러웠지만 춤을 안 추면 내 생일에 선물을 안 준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췄다. 케이크는 상상 이상으로 맛없었다. 선물을 주고 나는 마음이 뿌듯했다. 아빠는 밥 먹고 싶으면 춤을 춰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췄다. 그래서 아빠는 짜장면을 줬다. 밤에는 아빠가 YouTube를 보여줬다. 정말 친절하다.
춤을 안 추면 생일선물을 안 준다는 엄마, 춤을 안 추면 밥을 안 준다는 아빠. 마무리는 유튜브. 그 와중에 날씨는 맓음. 졸지에 이상한 가정이 됨과 동시에 케이크 사장님께는 못할 짓을 해버렸다. 이 일기를 본 도통이 친구들이 너도 나도 케이크의 구매처를 물었던 것이다. 신랑에게 스샷을 찍어서 톡으로 보냈다. 신랑이 말하길.
“아빠는 친절하니 됐지 뭐.”
그래, 그렇구나. 너는 결과만 보는구나. 일기 숙제가 있을 때 나는 도통이에게 일기장을 툭 던져주기 전에 몇 가지 질문을 한다.
“도통아, 오늘 우리 뭐 했더라? 그래? 그럼 뭐가 재미있었어? 그래? 기분이 어땠어?”
등등. 이런 대화들을 한 후에 일기장을 준다.
물론 아까 했던 대화를 참고로 일기를 쓰란 말은 하지 않는다.
“도통아, 이제 일기 쓸 시간이야.”
그저 이 말만 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아까의 대화가 일기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이런 거.
엄마랑 싸우기 놀이를 했다. 규칙은 침대랑 소파를 옮겨 다니면서 상대방을 매트로 밀치는 거였다. 그 놀이를 할 때 정말 재미있었다. 엄마가 1점을 얻을 때마다 승리의 춤을 췄다. 그 춤은 정말 웃기다. 엄마는 자기가 6:0으로 이겼다고 하지만 문제점이 있다. 그중 2번은 침대에서 밀쳤기 때문에 점수에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가 4:0으로 졌지만 아주 재미있었다.
분명 대화를 할 때는 공원에서 자전거를 탔던 평범한 추억을 이야기했건만, 막상 일기장에는 이런 게 적혀있었다. 그리고 난 분명 6:0으로 너희를 이겼다. 늬들이 4:0이라고 우긴다고 6:0이 4:0이 되진 않는다. 그리고 내 춤이 웃기다니… 나는 무려 춤추는 엄마인데. 그 말 당장 취소하도록.
물론 대화가 고스란히 일기에 들어간 경우도 많다.
오늘 이모네 집에 가서 생일 파티를 했다. 나는 바로 생일파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밥도 다 먹어야 하고 사진도 10장이나 찍어야 했다. 그리고 촛불을 편하게 끄기 위해 하나 불면 다른 촛불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리고 케이크를 먹고 난 뒤에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생일 선물이 왔다. 그 속에 내가 꿈꾸던 선물이 있었다. 바로 RC 오토바이였다. 그다음에 TV를 보다가 집에 갔다. 정말 재미있었다.
대화 내내 주구장창 지 생일파티 이야기를 하긴 했다. 하지만 그 대화를 할 때 파티를 위해 사진을 찍어야 했던 사실을 툴툴대진 않았다. 저 민원 사항은 아무런 예고 없이 일기에 뙇 등장한 것이다. 그래, 예고가 없었던 건 아마도 내가 녀석들에게 거듭 반복했던 이 말 때문이리라.
“내가 너희에게 제공하는 의식주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커서 갚는다는 공수표는 안 받는다. 늬들은 의식주를 받고 나에게 지금 당장 최선을 다해 이쁜 짓을 해야 한다.”
그걸 생각하면 녀석도 파티 전 사진 10장은 거저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나와 대화를 할 때는 언급을 안 한 것이다. RC 오토바이는 녀석이 한 달 전부터 노래 부른 거라 모를 수가 없었고.
쓰기 숙제가 일기에 한정되진 않는다. 언제부턴가 독서 교육의 열풍이 전국을 휩쓸었고, 한 줄 독후감 역시 필수 방학 숙제가 되었다.
<신기한 독>
원님은 왜 아버지한테 말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그런 난리가 날거란 생각도 안 하고?
<똥 섬이 사라진데요>
그 새의 똥 하나만 가지면 부자가 된다면 그럼 그 새가 우리 집에도 똥 싸고 갔으면 좋겠다.
도통이는 왜때문인지 한 줄 독후감을 거의 본인 질문으로 채운다. 보고 있자면 내가 일일이 대답을 써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든다.
<똥 섬이 사라진데요> 는 어린이들에게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고 지구를 지키는 방법을...
뭐 이런 책인데 녀석은 책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고 나발이고 그저 돈(이 되는 똥)에만 집중하고 있다.
<신기한 독> 그러는 너는 어째서 내가 난리 칠 거란 생각을 안 하고 그리 사고를 열심히 치시는 것인지.
그리고 왜때문인지 아빠에게 드리는 효도 편지도 썼다.
아빠께, 안녕하세요.
아빠, 열심히 돈 가져와 주셔서 고마워요.
또 나라에 세금도 내고 밤 11-12시까지 일 해주셔서 지금 집이 이 정도 유지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2층 침대의 돈 아직도 내고 있는 거 알아요. 아빠, 안녕히 계세요.
2020년 6월 19일.
도통 올림.
녀석이 2층 침대를 할부로 산건 어찌 알았는지 몰라도 아버지의 마음을 몹시 무겁게 하는 효도 편지였다.
동시 역시 빠질 수 없다. 특히 학교 도서관에는 동시 책장을 따로 만들 정도로 동시를 중요하게 여긴다.
와, 크다.
세상에서 제일 큰 목욕탕 같아.
가족탕에 왔어.
가슴이 설레.
와! 바로 뛰어들어야지.
하지만 엄마는 안 된다고 한다.
안돼! 이모가 올 때까지 기다려!
아! 아쉽다!
이모가 왔어! 와! 이모가 왔다.
목욕탕은 재미있어.
5m짜리 목욕탕, 다음에 또 와야지
잘 보면 지운 흔적이 가득하다. 딴엔 고민을 꽤 한 모양이다. 목욕탕이 5m라고 적은 부분은 시법 중 과장법일 것이다. 그런 게 있다면.....
가끔은 장르가 불분명한 글도 등장한다. 언제 왜 썼는지도 모르겠다. 지 이름과 선생님의 도장이 있는 걸로 봐서 이것도 숙제였던 모양이다.
<비밀 통로가 있는 수영 학원>
자전거를 타고 수영 학원에 갔다. 자전거는 재미있지만 수영장에는 비밀이 있다. 바로 비밀 통로로 이어진 다른 수영장이 있다는 뜻이다. 보지는 못 했지만 단서가 있다. 바로 TV다. TV에서 다른 수영장이 나왔다. 벌써 수영이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비밀 통로는 못 찾았다.
다시 읽어봐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그냥 녀석이 새로운 장르를 개발했다고 보면 되겠다. 여기서 녀석이 말하는 비밀 통로는 아마도 TV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지가 다니는 수영 학원의 광고일 것이다. 그걸 녀석은 CCTV 화면으로 오해한 모양이다. 저기 나오는 수영장을 찾겠다고 난동 부리는 걸 귀여워서 그냥 뒀다. 이제 슬슬 알려줄까.
그리고 가끔은 선생님의 코멘트도 재미있다.
수영에 갔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수영을 기록(?)보다는 못 했다. 하지만 나는 힘을 내어 수영을 했다. 시간이 휙 지나가버렸다. 수영이 끝난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머리카락을 쭈글쭈글하게 말아왔다. 노는 건 일찍 끝났다. 참 재미있었다.
도통이의 기록 같은 건 없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바로 녀석의 일기를 선생님께서 즐거워하셨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엄마는 머리카락을 쭈글쭈글하게 말아왔다.‘ 라는 문장이 녀석 특유의 위트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었겠지만,
슬프게도 나는 진짜로 머리를 쭈글쭈글 말았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녀석들의 가운데 앉았더니 저 꼴이 되었다.
고속도로에선 창문 닫아. 시키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