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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Apr 05. 2021

줌(zoom) 수업, 나만 힘들어?

우리에겐 또 다른 재난...

 2019년 도통이의 1학년 겨울 방학 때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발했다. 사회가 마비되고 사람들의 대면이 불가해졌지만, 나는 아이의 방학이었기에 큰 체감은 없었다. 그리고 2020년 봄, 학교의 개학이 거듭 미뤄졌고, 비로소 코로나의 여파가 살로 뼈로 느껴졌다. 그해 5월이 되자 공교육의 무기한 연기가 불가해졌다. 그렇다고 코로나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기에 집합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공교육을 개시했다. 그렇게 국가는 우리에게 비대면 수업을 명령했다. 국가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당시 우리 엄마들 입장에서는 보도 듣도 못한 zoom 수업이라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재난이었다.


2020년 봄, 도통이네 집도 이 사태를 피해 갈 수 없었다. 하여 우리도 다음 주부터 줌수업이 시작된다. 나는 오전 시간을 녀석과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아이 혼자서 이 사태를 헤쳐나가게 해야 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줌수업 시작 전주 수요일, ebs 2교시 수업이 끝나고 녀석에게 zoom 강의에 들어가는 법을 꼼꼼하게 여러 번 가르쳐주었다. 그러면서 이 말을 한 열 번쯤 했다.


“도통아, ebs 2교시가 끝나는 노래가 나오면 줌수업에 들어가야 해. 반드시!”


그리고 줌수업 시작 전주 목요일, 또 ebs 2교시 수업이 끝나고 녀석에게 zoom 강의에 들어가는 법을 다시 거듭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이 말을 또다시 열 번쯤 했다.

“도통씨, ebs 2교시가 끝나는 노래가 들리네? 이 노래가 들리면 뭐 해야 한다고? 그렇지! 줌수업을 들어가야 해. 꼭!”


​줌수업 시작 전 주 금요일, 나는 도통이를 믿어보기로 했다. ​수, 목 이틀 동안을 줌수업에 관한 강력한 주입식 교육을 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녀석이라도 이번만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드디어 ebs 2교시 수업이 끝나는 노래가 들렸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도통아, ebs 2교시가 끝나는 노래가 나오네. 그럼 이제 뭘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에 빠진 도통이... 지도 자신이 없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글쎄... 저 노래를 즐겁게 따라 부른다?”


Naver say naver. 이 세상에 절대란 없다.

특히 아이에 관련된 것이라면 결코 확신을 해서도 그 어떤 믿음을 가져서도 안 된다. 하… 어이가 털리면서 현타가 왔다. 하지만 그 현타를 맞이할 시간도 그럴 정신도 없다. 그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도통아, (이 새끼야) 2교시가 끝나는 노래가 들리면 제발 zoom 수업에 들어가라고.”

그리고 드디어 zoom 디데이. 나는 나가면서도 도통이에게 다시 한번 거듭 당부를 했다.


 “도통아! ebs 2교시 끝나는 노래가 들리면 꼭 반드시 줌수업을 들어가야 한다! 알았지?”

 “응! 엄마, 걱정 마!


그래, 이쯤 했으면 나도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나는 일을 마치고 오전 열한 시 반에 귀가했다. 도통이의 줌수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시간이니 조심조심 조용히 들어갔다. 그런데... 응? 줌수업을 하고 있어야 할 놈이 바닥에 엎드려서 마법천자문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 눈을 의심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번만큼은 내가 영혼을 다 바쳐서 교육시켰다고 믿었는데. 저 자식이 분명히 걱정 말라고 했는데.


 “...... 도통아, 줌수업은?”

 “아... 맞다.”


 뭐? 아, 맞다? 이런 내 새끼가…

겪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감정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순간 거꾸로 용솟음쳐서 올라오는 빡침일 것이다. 본능에 충실하자면 녀석의 멱살을 잡고 탈탈 털고 싶지만.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시 한번 이를 악물고.


  “도통아! ebs 2교시 끝나는 노래가...... (생략).”


그리고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도통이가 오늘 줌수업을 잊어서 못 들어갔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아이가 수업에 들어가는 것을 잊었다는 사실… 엄마 입장에서 선생님께 이 말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아이가 자기 할 일을 잊었다는 것은 부모의 실책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나는 아이 한 명을 보지만 선생님께서는 이런 아이를 30명을 보신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다시 말해, 선생님께 서투른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고 추후 재발 방지 약속을 드리는 편이 백번 낫다. 물론... 재발이 방지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분 후 선생님께 답장이 왔다.


 “괜찮아요, 도통이 어머님. 오늘 줌수업 못 들어온 아이들 몇 명 더 있어요.”


 아, 동지들이여. 이 또한 지나가리니.


사실 줌수업의 진정한 어려움은 다른 곳에 있다.

혹시 아이의 참관수업에 들어가 보셨는지. 참관 수업을 들어가고 나서 아이가 막 흐뭇하고 기특했다면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음이다. 나는 아이의 참관 수업 내내 이 시간이 어서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딱히 아이가 사고를 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가 꼬물댈 때마다 나도 동시에 흠칫거리며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이 묻는다. 아이를 그렇게 못 믿느냐고… ㅇㅇ. 못 믿는다.


그리고 줌수업할 땐?? 아이가 내 눈앞에서 매일매일 수업을 듣는다. 즉… 줌수업은 저런 참관 수업이 온라인으로 매일 지속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내 아이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실체도 고스란히 전시됨을 의미한다. 아이의 등교가 편했던 이유는 그저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이 내 눈에 안 보였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ebs 수업을 들을 때도 늘 쌍방 소통을 하는 편이다. 화면 속에서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시면, 큰소리로 대답을 한다.


 “여러분, 봄 시를 들으니 기분이 어때요?”

 “네! 시는 지루하고 재미없어요!”

 “시에서 바람이 느껴지나요?”

 “아니요! 전혀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런 식으로… 녀석에게 대답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너무 솔직하게 말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저 꼴을 계속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오전에 집을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나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더 이상은 내 관할이 아니었다.



벚꽃이 있는 우리 동네.  by 10세 도통

 그리고 도통이가 3학년이 되었다.

지금도 녀석은 가끔씩 깜빡하고 가끔씩 쉬는 시간에 화면에서 사라지고 가끔씩 다시 복귀하지 않는다. 그리고 왠지 올해는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연락이 온다. 가장 차단하고 싶은, 그러나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번호, 학교 번호로… 물론 처음부터 전화로 오지는 않는다. 처음엔 문자가 온다.


 ‘도통이가 수업을 안 들어오고 있어요.’


여기서 살짝 억울한 부분은 난 분명히 줌수업을 들어가는 것까지는 보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왜 이 자식이 화면에 안 보이는 것일까. 보통은 화장실을 갔다가 늦는 경우이거나, 그냥 화면을 꺼놓는 경우, 아니면 쉬는 시간 복귀가 늦는 경우이기에 아이가 돌아오면 해결이 된다. 하지만 아주 가끔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가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나는 연락을 받고 도통이를 잡으러 집으로 달려갔다. 방문을 열자마자 목격된 도통이는 화면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가위로 뭔가를 오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봤더니 수업 과제인 듯한 종이를 핑킹가위로 오리고 있었다.


 “도통아, 뭐 하니?”

 “응! 선생님이 이거 오리래!”

 “근데 왜 핑킹가위로 오려?”

 “응! 그냥 가위가 없어!”


그냥 가위가 왜 없어 시키야. 저기 연필꽂이에 꽂혀있는 건 뭔데? 핑킹가위를 가지고 씨름을 하는 도통이의 강아지 같은 눈과 이미 작살이 나서 회복이 불가해진 과제물을 번갈아가면서 보고 있자니... 하아.... 빡치는데 귀엽고, 귀여운데 빡치고....

 일단 선생님께 답신부터 보내자.


 “선생님, 도통이가 핑킹가위로 과제물을 오리느라 화면에 못 들어갔데요.”


다시 말하지만, 선생님께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가능하지도 않으니 괜히 기 빼지 말자.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새삼 대한민국의 선생님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덧붙.


아들을 빼앗긴 어머니나
친구를 묻은 사람에게 종전이란 없다.
<페스트> p.367


 2019년 연말, 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현재, 백신이 개발되어 순차적으로 접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한 인간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속도보다 인류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현대 의학의 현주소이지요. 이러한 현대의학이 존재하는 한 페스트 같은 전염병은 인류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 반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단 인류의 통계치 안에서만. 한 인간의 개인사를 보면 어떨까요. 과거에 비해 사망자가 적은 것이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나의 가족, 친구라면, 저 통계치는 무의미해집니다. 역사는 코로나의 종결을 선언해도, 나에게는 죽는 그날까지 종결이란 없습니다. 그것이 전체 인류의 통계치와 한 인간사의 도달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인 것입니다.

비록 필자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생긴 작은 사연을 유머러스하게 적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이 사태를 가볍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에서 결론을 무겁게 적었습니다.


더불어 수고하여 주시는 의료진들과 봉사자 분들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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