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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Jan 11. 2021

8세라고 다 같은 8세가 아니야.

아이 친구의 어머님들과 친하게 지내자

도통이는 허술하다.


일어나서부터 잘 때까지 허술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허술하다. 웬만하면 독립심을 키워주고자 좀 늦더라도 스스로 하게 하지만, 바쁘디 바쁜 아침 시간엔 그것이 불가능하다. 녀석에게 맡겼다간 점심시간에 등교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학년은 점심 먹으면 바로 집에 온다.


이것은 초등학생들의 흔한 아침이다.

바지 입는 것까지는 괜찮다. 지 눈에도 바지 구멍은 보이니까. 티셔츠부터가 난관이다. 티셔츠는 구멍이 4개나 된다. 도통이는 일단 머리를 티셔츠의 아래, 위 구멍으로 통과시킨다. 들어가는 건 한다. 나오는 것이 험난하다. 녀석의 머리가 티셔츠의 나오는 구멍을 찾지 못한다. 티셔츠 여기저기에서 녀석의 머리가 튀어나온다. 내가 놈의 머리를 잡아서 제자리에 넣어주면 그제야 팔을 넣는다. 희한하게 그때 티셔츠의 앞뒤가 뒤집힌다. 참 재주도 좋다. 다시 팔을 빼서 바르게 입힌다. 그럼 양말을 신는다. 양말도 신을 때는 쉽다. 하지만 늘 발꿈치 부분이 뒤틀린다. 그리고 그건 언제나 신발을 신을 때 발견된다. 양말을 벗겨서 다시 신겨준다. 점퍼 역시 고난도다. 가까스로 한 팔을 끼우면 남은 다른 팔은 끼우지 못한다. 한 팔을 끼운 상태에서 점퍼는 녀석의 등 뒤에서 허우적 대고, 녀석의 남은 팔도 공중에서 허우적댄다. 점퍼의 남은 팔과 녀석의 남은 팔은 절대 만날 수 없는 거리에 있다. 나는 점퍼를 들어서 놈의 팔을 끼워준다. 그리고 지퍼를 올려주다. 그건 그냥 처음부터 못 하니 그냥 내가 해준다. 그야말로 대환장파티다.


그렇게 가까스로 놈을 보내고 한숨 돌리려는데 문득 소름 끼치는 의문이 하나 들었다.


그럼 하교할 때는? 아침엔 내가 해주지만 하교할 때는 어떻게 하는거지? 왜때문에 옷차림이 그리 단정한 거지? 혹시 하루 종일 점퍼를 안 벗나? 그럴 리가 없는데. 녀석은 늘 집에 오자마자 전신 탈의를 한다. 속옷만 빼놓고. 그런 친구가 교실에서 점퍼를 안 벗을 리가 없다. 심지어 교실은 몹시 따뜻하다. 거기서 더 안 벗으면 다행인 상황인 것이다.


하여 하교 후 놈을 붙잡고 물어봤다.


 “도통아, 교실 안에서 점퍼 안 벗니?”

 “아니! 도착하자마자 벗어!”


역시... 그렇다면.


 “그럼 어떻게 다시 입었어?”

 “응! 연아가 입혀줬어!”


그래, 그렇구나. 그럼 연아는 누굴까?

녀석이 쏜살같이 놀이터로 달려가는 바람에 묻지 못했다. 놀이터로 날아가는 놈을 내버려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녀석의 가방을 열어서 알림장을 찾았다. 알림장을 여는 순간은 늘 긴장된다. 알림장에는 두 종류의 메시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반 전체에게 알리는 메시지. 예를 들면 준비물, 숙제 등등…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담임선생님의 빨간 손글씨… 거기에는 선생님이 학생에게 하는 말을 가장한 학부모에게 당부하는 메시지가 적혀있다. 예를 들면 수업 시간에 떠들지 마세요. 숙제를 안 해왔습니다. 준비물을 안 챙겨 왔습니다. 아이가 이런 짓을 했습니다, 저런 짓을 했습니다 등등… 그런데 그 소중한 빨간 메시지가 담겨있어야 할 알림장이 없었다. 그래서 녀석에게 물었다.

 

 “도통아, 너 알림장 어디 갔어?”

 “응. 잃어버렸어.”


어떻게 하면!!! 그걸 잃어버릴 수 있지??

라고 따지려는 찰나 녀석이 구겨지고 찢어진 종이 한 장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알림장이 없어서 거기에다가 지가 직접 적었다고… 그리고 거기에는…


 “내일 준비무”


라고 쓰여있었다.

도대체… “ㄹ” 은 어디 간 걸까. 그리고 뒷내용은? 내 평생 뒷내용이 이렇게 궁금한 적은 처음이었다.


 “도통아, 알림장 이게 다야? 뒷내용은?”

 “아, 맞다!”


녀석은 저 말만 남기고 자기 일 아니라는 듯 사라졌다. 그래, 그렇구나. 너는 모르는구나. 나는 녀석과 같은 반 자녀를 둔 친한 언니에게 톡을 보냈다.


 “언니, 내일 준비물 뭐야?”

 “응, 일기장, 받아쓰기장, 색연필, 국어... “

(고마워요, 언니)


나중에 알고 보니 연아는 도통이의 짝꿍이었다.

그리고 이 짝은 정기적으로 바뀐다. 하루는 도통이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이번 짝꿍이 나한테 제일 잘해줘.”


녀석이 이렇게 말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에 물었다


 “어머, 그래? 고마워라. 그 짝꿍 이름이 뭘까?”

 “응? 내가 거기까지는 모르지.”


어… 녀석은 거기까지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는 것이 없다는 뜻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내가 녀석에게서 들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녀석의 짝에 관한 이야기는 늘 소문을 통해 들었다. 나는 당시 학교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이런저런 소식들을 왕왕 들을 수 있었다. 녀석이 말한 그 다정한 짝꿍의 이름은 유리였고, 연아와 이런 대화를 했다고 한다.


 “유리야, 도통이 잘 부탁해.”

 “응? 왜? 도통이 손이 많이 가는 친구야?”

 “응. 준비물도 가끔 까먹고, 수학책 펴라고 하면 수학익힘책 펴 놓고 그러니까 그런 것도 봐줘야 해.”

 “아, 그렇구나. 알았어.”

 “고마워.”


그렇게 연아는 유리에게 도통이를 위탁했다.

고맙다. 친구들…


그리고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녀석에게 점퍼 입기 기술을 전수해 줬다. 녀석이 더 이상 친구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길 바라며…


8세라고 다 같은 8세는 결코 아닌 것이다.

눈이 오는 성   by 6세 토리
덧붙_ 15세라고 다 같은 15세다 아니다.

하루는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어떤 엄마들의 대화를 엿들어버렸다. 일부로 들은 건 아니고 저절로 들렸다. 바로 옆에서 시식을 하고 있었거든…

 엄마 1 : 언니, 한진이 성적 좀 올랐어?
 엄마 2 : 뭐? 뭔 성적??
 엄마 1 : 어제 시험 봤잖아. 아. 한진이가 성적표 안 가져왔어?
엄마 2 : 뭔 시험??
엄마 1 : 헐… 언니 그거 담임선생님한테 물어보면 성적 말해주는데… 담임 선생님한테도 안 물어봤어?
 엄마 2 : 시험을 본 것도 몰랐는데 어떻게 물어봐.
 엄마 1 : 이번에 기말고사… 어… 한진이가 얘기 안 했어?? 그거 디게 중요한 시험이었는데.
 엄마 2 : 이런 개새끼가…

저 마지막 단어는 정말 진심에서 단전에서부터 우러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마흔이라고 다 같은 마흔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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