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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Jan 08. 2021

내 꿈은 짜장면.

내가 직접 맛있고 싶으니까.

도통이가 6살 때였다.

어린이집에서 아이의 꿈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 중이었고 그래서 물었다.


 “도통아, 우리 도통이는 꿈이 뭘까?”

 “응. 내 꿈은 짜장면이야.”


어… 그렇구나. 우리 도통이 꿈은 짜장면이구나.

뭔가 상상 이외의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음식이 나올 줄이야. 그렇다고 선생님께 제출할 설문지에 음식물을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우리 도통이는 꿈이 무슨 뜻인지 알아?”

 “응. 커서 되고 싶은 거.”


어… 놈은 꿈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그럼 우리 도통이는 짜장면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구나?! 요리사가 되고 싶은 거야?”


제발 그렇다고 대답해 주길…

이런 식으로 답을 유도하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아이 장래희망 란에 중국집 베스트셀러를 적어낼 판이니… 우리 쉽게 가자.


 “아니! 짜장면!!”


아 이런… 놈은 중국음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단호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뭐 어릴 때 꿈이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그 이유는 궁금했다.


 “우리 도통이는 왜 짜장면이 되고 싶을까?”

 “응!! 맛있으니까!”

 “응. 그렇구나. 그래. 짜장면은 맛있지. 그런데 도통아, 굳이 니가 직접 맛있을 필요는 없어.”

 “그치만 내가 직접 맛이 없을 필요도 없잖아!”


이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아이를 키우면서 사무치게 깨달은 교훈이 있다. 말로 절대 이길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화려한 말빨과 논리로 똘똘 뭉친 달변가들이 아니다. 바로 비논리로  철저하게 무장한 저것들이었다.


다행히도 녀석은 8살이 되자 꿈이 축구 선수, 또는 수영 선수 등 음식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했다. 꽤 번듯해 보이는 이 꿈에도 역시 사소한 문제점이 있었다.


녀석은 운동신경이 현저하게 부족했다.

아니, 전혀 없었다. 지금도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운동을 할 때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실패를 경험한다. 예를 들면 학교 운동회 때 달리기를 꼴찌를 한다던가, 축구를 할 때 눈 뜨고 보기 힘든 그런 뭔가를 한다던가…


한 번은 수영학원에서 수영대회를 개최한다는 연락이 왔다. 도통이도 참여를 하라는 권유 반, 통보 반 식의 내용이었다. 도통이 같은 친구도 참여를 해도 되냐 물었더니 이미 놈이 자유형과 배영으로 참가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이벤트였다. 엄마 입장에서는 그저 내 아이가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뿐이었다.


수영 대회 당일, 역시 녀석은 자유형도 배영도 멋지게 꼴찌를 했다. 박빙의 승부도 아니었다. 먼저 도착한 선수들이 느긋하게 동동 떠내려오는 도통이를 한참을 기다려줬다. 너무나도 확실한 꼴찌였다.


이 참담한 결과에 아이가 상처라도 받으면 어쩌나… 라는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녀석은 메달을 양손에 쥐고 너무나도 기뻐하며 나에게 뛰어왔다. 옆에서 웃음을 참으며 구경하던 사람들도 함께 기뻐해줬다. 녀석이 느긋하게 동동 떠내려온 대가로 받은 그 메달은 참가자 전원 증정이었다.


도통이는 그날 받은 메달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막냉이와 한 개씩 사이좋게 나눠가졌다.


9살이 된 도통이는 과학자라는 멋진 꿈을 가지고 있다.

나의 미래의 모습 by 9세 도통

이 그림을 보면 이마저도 좀 비현실적인 꿈같지만서도… 그래도 짜장면을 생각하면 많이 발전했다.


“너 6살 때는 꿈이 짜장면이었어.”


녀석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도통이는 멋쩍게 웃는다. 십 년 후, 19살의 도통이에게는 어떤 추억을 이야기하게 될까. 다가올 미래에 살그머니 설렌다.


아빠표 과학 수업 - 아두이노

덧붙.

9세 도통이는 아직도 짜장면을 제일 좋아합니다. 하루는 외갓집에서 외할아버지가 끓여주신 짜장면을 먹고 있는데,

“아빠가 끓인 짜장면이 더 맛있어.”

막냉이가 이렇게 말해버렸어요. 순간 외할아버지의 표정을 포착한 도통이… 그 날밤에 도통이가 막냉이에게 무슨 교육을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다음 날 도통이와 막냉이가 외할아버지 옆에 살포시 앉더니,

“형아, 형아는 외할아버지 짜장면이 더 맛있어? 아빠 짜장면이 더 맛있어?”

“응!! 외할아버지 짜장면이 더 맛있지!”

“형도 그렇지? 나도 그래,”

이런 대화를 했답니다. 두 녀석이 이렇게 사회생활을 배워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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