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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Jun 07. 2021

너의 한글 공부는 너의 것.

언젠간 하겠지…

 도통이 7살, 어린이집에서 한글을 배울 때였다.

하원하는 차 안에서 도통이가 말했다.


 “엄마! 나 요즘 어린이집에서 ‘ㅂ’ 배우고 있어.”


그래, 그 말만 일주일째 듣는다. ‘ㅂ’을 꽤 오래 배우는구나. 진도를 뺄 때가 된 거 같은데?


 “그래, 도통아. 다음 주에는 뭐 배운데?”

 “응! ‘ㅇ’ 배운데.”

 “아... 그렇구나.”


 드디어 ‘ㅂ’을 떼는구나. 어?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ㄱㄴㄷㄹㅁㅂㅅㅇㅈ... ‘ㅅ’이 빠졌다?


 “도통아, ‘ㅅ’이 아니라 ‘ㅇ’을 배우는 거야?”


녀석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가나다라마바사를 읊기 시작했다. 한참을 중얼중얼거리던 녀석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모든 걸 다 알 필요는 없는 거야.”


그래... 도통아, 시람이 모든 걸 다 알 필요는 없지. 그런데...  ‘ㅅ’ 은 알아야지.


녀석은 그렇게 한글을 가까스로 떼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곳은 또 다른 신세계였다. ‘ㅅ’ 도 겨우 배우고 넘어온 녀석에게는 다소 벅찬... 아니, 녀석이 아니라 나에게 벅찬 세계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접하는 한글의 첫 번째 세계는 바로 읽기와 쓰기의 대표 주자. 독서와 독후감이다.

나는 특별하단다2 독후감 by 8세 도통
 책 제목 : 너는 특별하단다 2

사람들은 모두 특별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우정과 행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웸믹들은 왜 욕심을 부렸을까?
나는 평화롭게 살겠다.

마지막 줄 “나는 평화롭게 살겠다.” 만 진심인 듯 보이는 저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한 줄당 하나씩 보이는 저 틀린 맞춤법을 어쩌면 좋을까. 고쳐줘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해맑은 녀석의 사진을 보며 그냥 신경을 끄기로 했다. 그래... 뭐... 언젠간 맞추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금방 문제가 발생했다.

한글의 두 번째 세계, 맞춤법의 대표주자, 받아쓰기에서… 녀석이 처음 받아온 받아쓰기 시험지에는 빨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젠장. 내가 너무 신경을 껐었다. 망연자실하여 시험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녀석이 말했다.


 “엄마, 글자를 전부 다 맞게 쓸 수는 없는 거야.”


그래. 그렇지. 어른들도 맞춤법은 종종 틀리니까…

그런데… 항상 다 맞게 쓸 수는 없어도 종종 아니, 가끔은 맞아야 하는 거 아닌가? 너는 어쩌다 한두 개 맞았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막상 당사자인 녀석은 이 사태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내가 신경이 쓰였다.


 “도통아, 내일 받아쓰기 시험 있지?”

 “응! 엄마!”

 “우리 연습하자. 받아쓰기 용지 어딨어?”

 “응! 나야 모르지!”


허... 니가 모르면 누가 아는데?

책가방 속, 실내화 주머니 안, 책 속, 책장 사이... 온 방 안을 이 잡듯 뒤졌다. 없었다. 이놈이 학교에 두고 온 것이 분명했다. 그래 뭐... 빨간 비 한 번 더 보자. 하고 포기하려던 순간,


어이 없어서 사진 찍어 둠.

이걸 쓰레기통에서 발견했다.

종이비행기로 변신한 받아쓰기 용지... 이는 필시 녀석과 나의 공동 작품이었을 것이다. 받아쓰기 따위 관심 없던 녀석은 선생님께서 주신 이 용지로 종이비행기를 접었을 것이고, 역시 관심 없던 나는 확인도 안 하고 저걸 버렸던 것이다. 즉 둘 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굴 탓하겠는가. 나는 침착하게 쓰레기통에서 용지를 건져내서 도로 꼬깃꼬깃 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도통아, 이거 두 번씩만 써보자.”


그리고 다음 날 녀석은... 두 개를 틀렸다.

일취월장이었다. 쓰레기통 뒤진 노력의 대가를 받았다.


그래, 아가. 우리 천천히 가자.


세종대왕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한글은 현명한 자는 반나절이면 충분하고, 둔한 자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그럼… 대왕님을 믿겠습니다.


머리만 동동 떠다니는 저 친구는 누굴까_ 이미지 따위…


암호 일기 by 5세 막냉 _ 해독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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