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살아남기 1 <서바이벌 살림>

by 김국주

* 경고 : 본 에피소드는 부상당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일부 글귀에 아프게(?) 느껴질 만한 표현이 들어있으며, 일부 독자님들께 불편을 드릴 수 있습니다.


아이를 임신하면 뭔가를 기원하게 된다.

‘밥 좀 잘 먹는 아이였으면.’

‘제발 이번엔 딸이었으면.’

‘나 안 닮았으면.’


이런 디테일들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모든 부모들의 공통 바람은,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 주세요.”


이것일 것이다. 그렇다. 그 무엇도 건강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주양육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자, 육아를 할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성격, 체력, 교육관, 재력 등등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그 중요도는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아파도 아이 걱정, 내가 아파도 아이 걱정을 하는 우리 엄마들, 마음대로 아프지도 못하는 주양육자들에게 역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단연 ‘건강’ 이다.

우리는 ‘의무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도통이의 주양육자인 나는 굉장히 건강한 편이다.

속세 말로 헬창, 운동처돌이다. 그런데 여기에 사소한 문제점이 있으니… 나는 좀 자주 다친다.

운동 때문에? 놉! 절대로 운동 부상은 아니다. 쯧, 내가 경력이 있는데… 스스로 몸 사릴 줄 알고, 운동으로는 쉽게 다치지 않는다. (누가 작정하고 패지 않는 한은)


나는 주로… 부엌에서 다친다. 나름 주부인데…


대략 3년 전이었다. 된장찌개를 끓이려고 양파를 썰고 있었다. 그런데 식칼로 양파를 내리치는 순간 놈이 도망을 갔고, 그 자리에는 놈을 잡고 있던 내 손가락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나는 그날 양파 대신 내 왼쪽 검지 손가락을 썰었다. 깊게 베이긴 했지만 손가락이 절단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정성껏 지혈을 하고 끓이던 거 마저 끓여서 먹고 그냥 잤다.


다음날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러 갔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전날 식칼로 손가락을 썰었던 에피소드를 가볍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녀석들이 난리가 났다.


“허! 너 병원은 갔어?”

“밴드만 붙인 거야?

“미쳤어?”

“지금 당장 커피잔 내려놓고 병원 가.”


나는 갓 나온 뜨거운 커피를 두고 등 떠밀려서 위층 가정의학과로 쫓겨났다.


“아, 알았어. 딱 기다려. 이 커피가 식기 전에 올게. 손가락 좀 베인 거 가지고 왜 이리 유난들이야.”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생각은 달랐다.


“여기서 못 해줍니다. 큰 병원 가세요. 손가락이지만 관절이 베였잖아요. 이건 단단히 고정해야 합니다.”


‘선생님, 여기도 억지로 온 겁니다. 이딴 걸로 큰 병원 가기 싫어요. 그니까 제발 여기서 해결해주세요.’

라고 말해봤자 씨알도 안 먹히겠지?


“선생님, 지금은 못 가요. 애들 데리러 가야 해서요. 이따 저녁에 갈 테니까 일단 단단히 고정해주세요.”


나는 그렇게 대충 둘러대서 손가락 깁스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당연히 큰 병원은 가지 않았다. 애초에 갈 생각도 없었다. 과정은 생각나지 않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아무 문제없이 회복되었다.

그래서 그 사건을 깨끗이 잊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이번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씻고 있던 유리잔이 갑자기 위아래 반으로 분리되었다. 유리잔 안을 씻고 있었기에 분리가 되자마자 내 양 손이 어긋났고, 그 힘으로 유리의 절단면이 내 손목을 스쳤다. 그렇게 날카로운 유리는 내 손목 깨끗하게 절단했다. 출혈이 멈추지 않아 한참을 상처부위를 손바닥으로 막고 있었다. 피가 샘솟듯 솟아나서 붕대를 가지러 갈 수도 없었다. 가까스로 지혈이 될 때쯤 나는 과다출혈로 기절했다.

(아… 맞다. 이 이야기 쓰면 우리 다정하신 독자님들께 잔소리 들을 거 같은데…)


정신이 든 후, 신재희에게 전화를 했다.


“나 지금 과다 출혈로 못 일어나고 있으니 니가 좀 와줄래?”


잠시 후 신재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재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부터 큰 소리로 욕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저 욕은 지네 집을 나서면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동네 창피하니 그 흉악한 욕을 멈춰달라는 말을 할 힘도 없었다.


“야 이 미친 #^%}<¥<$|¥$|¥{£. 도대체 뭘 어쨌길래 과다출혈로 기절을 하냐. <}¥#£<£,£¥. 니는 진짜 뇌가 배터리로 돌아가냐. <#£#£~£~>£ 왜 주기적으로 정신이 나가냐고! #+~$~£|£]> 진짜 니랑 같이 살아주는 형부가 부처님이다. &34@;&;@ 그니까 형부가 니 부엌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잖아!”


‘어우 야… 그래도 내가 평범한 가정주부인데 어떻게 부엌을 안 들어가니. 참으로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정성스럽게도 하는구나.’


나는 일단 신재희가 진정되길 기다렸다. 그러길 몇 분 뒤, 드디어 신재희의 입이 지쳤다. 물론 여전히 눈으로는 욕을 하고 있었지만…


“응, 욕 다 했으면 나 여기 붕대로 좀 감아줄래? 오른쪽 손목이라 나 혼자 하기 힘드네.”

“아니, 병원을 가야지 #*~€~£~*{€{¥ 그걸 왜 나한테 해달라고 옘병이여. *}$#!#¥~ 이 미친 }£#’.”


하, 또 시작됐다.


“아, 갈 거야. 병원 갈 거라고. 그전에 붕대 좀 감게.”

“이게 어디서 후라이를 깔라고);@(!;@;’ 내가 지나가는 똥을 믿지, 니를 어떻게 믿어₩@3!@.”


허, 나에 대한 믿음이 이렇게까지 바닥인가.


“야! 진짜 갈 거야. 그때까진 이게 고정되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똥이 어떻게 지나가니? 똥개겠지.”


신재희는 욕을 하면서도 내 손목을 붕대로 감아줬다. 와… 이 인간 욕 참 잘하네. 학원 다니나.


“니 오늘 병원 안 가면 그 손모가지 내가 직접 분질러 버린다. 오케? 꼭 병원 가.”


신재희는 다정하게 신신당부를 했고, 나는 그날 저녁에 병원을 가지 않았다. 뼈가 다치지 않은 이상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음날, 나는 또 친구들과 커피 마시러 갔다가 또 커피를 기다리며 전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이번엔 더더욱 난리가 났다. 나는 또 뜨거운 커피를 뒤로한 채 그때 그 가정의학과로 질질 끌려갔다.


“알았다. 친구들, 이 커피가 식기 전에 돌아올게.”


그러나 나는 돌아오지 못했다.

나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하신 의사 선생님께서 나를 보내주지 않으셨던 것이다.


“환자분… 저번에도 큰 병원 안 가셨죠?”

“허… 어떻게 아셨어요?”

“여기 상처에 꿰맨 자국이 없잖아요.”

“헐… 그거 꿰매어야 하는 거였어요?”

“하아… 이번엔 진짜로 큰 병원 가셔야 합니다.”

“아…네… 일단 깁스부터 해주세요.”

“안됩니다. 환자분을 못 믿겠습니다. 상처는 그냥 이대로 덮을 겁니다. 지금 당장 000 병원으로 가세요. 제가 지금 그 병원에 전화해서 예약 잡을 겁니다. 지금 당장 가세요.”


허… 이분 캐릭터 파악 빠르시네.

나의 신용도는 온 동네방네 바닥을 쳤다.


그렇게 나는 우리 집 부엌에 혼자 있다가 크고 작은 부상을 여러 번 입었다. 그리고 그날 큰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깨달았다.

아, 부엌이 이렇게나 위험한 곳이구나.


그러니 아내들에게 위험수당을!





덧붙1.

저는 결국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한 에피소드로 끝내려 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지네요. 하여 남은 이야기는 여기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book-kingkong/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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