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 우울증 아니라고!!

부엌에서 살아남기 2 <서바이벌 살림>

by 김국주

설거지 하다가 유리컵이 깨져서 손목을 베인 김국주. (지난 에피소드 한 줄 요약)

결국 큰 병원으로 끌려갔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거… 인대가 잘렸는데요? 깊이도 베였네. 뭐 하다가 이렇게 됐어요?”

“…… 설거지요.”

“네? 아… 그러니까 식칼 씻을 땐 조심하셔야죠.”


식칼 때문은 아니었지만 설명하기 귀찮으니 그냥 그런 걸로…


“언제 베이셨어요?”

“네, 어제 아침이요.”

“네, 어제 아침… 네? 어제 아침이요? 근데 왜 이제 오셨어요?”


이것도 안 올라다가 억지로 온 겁니다.


“허허, 이거 바로 수술하셔야 되겠는데요? 지금 입원 수속 밟으세요. 내일 오전에 수술합시다.”

“네… 네? 수술이요? 살짝 베인 걸로 수술이요? 그냥 깁스해주시면 안돼요?”

“환자분… 지금 인대가 잘렸다고요. 그것도 길고 깊게! 마치 일부로 그런 것처럼… 아…. 혹시 스스로 상처 내신 건가요?”


와우,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오해를 하는 거야.


“괜찮아요. 솔직하게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우리 병원에서 상담도 도와드릴 수 있어요.”

“…… 아뇨. 설거지 하다가 저절로 유리컵이 깨져서 사고로 이렇게 된 거예요.”

“아… 그래요? 네… 그럼 입원 수속부터 하세요.”


의사 선생님은 내 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내가 그렇다니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나는 그렇게 뜬금없이 예상치도 못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갑자기 입원을 해야만 하는 경우!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무엇일까?

입원 시 준비물? 그딴 건 천천히 챙기면 된다. 뭐 없어도 그만이고. 내 스케줄? 펑크 낸다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가족들과 친구들의 걱정? 노노. 아웃 오브 안중이다. 내 몸 걱정? 뭐… 한두 번도 아니고.


다름 아닌 바로 아이들의 하교, 하원이다.

도통이야 지 스스로 집에 올 수 있다 쳐도 문제는 토리였다. 그래서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야, 어디예요?”

“…… 응, 여보야… 나 회사지… 왜?”

(Before Corona)


왜냐고 물을 법도 했다. 나는 신랑이 회사에 있을 때는 절대로 이유 없이 전화하지 않는다.


“여보야, 혹시 반차 낼 수 있을까요? 토리 하원을 좀 부탁하게요.”

“무슨 일 있어?”

“네, 큰일은 아니고요. 저 지금 입원을 해야 해요.”


잠시 정적.


“…… 여보야… 무슨 사고 쳤니?”


허, 왜때문에 내가 입원을 한다고 하면 사고를 쳤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진짜로 아파서 입원을 할 수도 있는 일이거늘. 나한테 진정 그런 옵션은 없는걸까. 근데 뭐… 딱히 반박할 방법은 없었다.


“네, 유리잔으로 손목을 좀 그었어요.”


이번에는 신랑이 정말로 놀란 것 같았다.


“아… 손… 뭐?? 손목?!? 여보야가? 왜?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늘 생각 없이 즐거워 보였는데?”


아니, 왜 너까지 헛소리를 하는 거니? 그리고… 내가 생각 없이 즐거워 보였다니. 손목 그은 사람한테 말이 너무 심하잖아.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신랑은 계속 울분을 터뜨렸다.


“하…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을 해야지!! 그걸 숨기면 어떡해! 말을 해야 알지!! 그런 짓을 하면 어떡해.”


아… 이봐, 너 지금 사무실 아니니? 너무 시끄럽게 구는 거 같은데, 이쯤에서 제지시켜야겠다.


“아니, 여보야.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설거지 하다가 실수로 그런 거예요.”

“여보야!! 그거 정신과 상담도 같이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예약했어?”


왓더… 씨알도 안 먹힌다.


“여보야, 그냥 설거지 하다가 유리잔이 저절로 분리돼서 실수로…”

“아… 어쩐지… 여보야 어젯밤에 혼자 목놓아 울더니만. 책이 슬퍼서 우는 줄 알았는데… 아! 근데 그런 건 말을 해야 내가 알지!!”

“여보야, 책 때문에 운 거 맞아요. <소년이 온다> 책 읽다가… 그거 한강이 쓴 80년 5월의 광주 이야기인데 안 울 수가 없어요.”

“아!! 여보야, 일주일 전에도 울었잖아!”

“그건 <엄마를 부탁해> 읽다가… 그건 엄마를 잃어버리고 엄마의 인생을…”


아니, 근데 내가 이걸 왜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지?


“그보다 여보야, 토리 하원은…”

“알았어. 여보야. 토리 하원은 걱정 말고. 여보야는 손목 다 나으면 나랑 손잡고 상담 좀 받으러 가보자. 괜찮아. 정신과 상담 하아나도 안 무섭데. 내가 옆에 있잖아. 걱정할 거 없어요.”


아니. 이 인간이.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네.

그래, 뭐… 니 맘대로 생각하렴. 그리고 사무실에서는 좀 조용히 하고.


“네, 그래요. 그럼 토리 하원 좀 잘 부탁해요.”

“그래. 입원 수속 마치면 입원실 호수 알려줘.”

“네, 나 심심하니까 올 때 책 한권만 도서관에서 빌려다 주세요.”


잠시 후 입원실을 배정받아 올라갔다. 입원실은 6인실이었고 어르신 두 분이 계셨다. 그리고 그 어르신들은 나를 많이 좋아해 주셨다.


“새댁이 밥을 참 잘 먹네.”

“그러게. 병원밥 맛탱가리도 없는데 이걸 참 맛나게도 먹네.”

흠… 사랑받는 이유는 명확했지만, 어쨌든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늘 그렇듯 사랑이 과해서 넘쳐흘렀다. 어르신께서는 식사를 갖다 주시는 분께 이런 부탁을 하셨다.


“여기요. 이 새댁 밥 한 그릇 더 줘요. 이 새댁은 한 그릇이 모자라.”


뭐…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밥이 모자란 것도 사실이었고. 병원밥을 두 그릇째 비우고 있으니 다른 어르신께서 말씀하셨다.


“아이고, 새댁. 그렇게 먹으면 체해. 반찬 좀 줄까?”

“괜찮아요. 저는 체해본 적이 없어서.”


내가 괜찮거나 말거나, 어르신은 입원실 냉장고에서 커다란 업소용 김치통을 꺼내셨다. 와우, 도대체 입원을 며칠을 하시기에 저렇게 큰 김치통이 냉장고에 있을까.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기로 했다. 그 김치가 심하게 맛있었으니까.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지내고 있는데 신랑이 왔다.

신랑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있었다. 제목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였다. 당시 그 책은 신간이었기에 나에게는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는 ‘아, 유쾌한 책을 가져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펼쳐보니… 작가가 우울증을 극복하는 에세이였다. 이 새끼가 진짜…


그리고 그는 왜인지 어르신들께 나를 부탁했다.


“안녕하세요. 김국주 환자 남편 되는 사람인데요. 내 와이프 좀 잘 부탁드려요.”

“새댁? 새댁 밥 잘 먹어. 걱정 마.”

“네, 우리 와이프가 밥은 잘 먹어요. 그런 거 말고 혹시 기분이 안 좋아 보이거나…”

“새댁? 새댁이 이 병원에서 제일 즐거워. 걱정 마.”

“네, 겉보기엔 그래 보이는데 울 와이프가 마음이 좀 아파서…”


우와… 저 미친자가 지금 뭐라고 씨부리는 거니.

나는 후다닥 튀어나가서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하하하하. 어르신들. 이 사람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이 사람 성격이 좀 이상해서. 하하하하하하.”

“그려그려. 신혼이라 그런지 사이들이 좋네.”


허… 이 상태를 사이좋은 걸로 봐주신다면… 뭐 어쨌거나 나는 놈의 멱살을 잡고 병원 옥상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손목이 그어진 일은 진정 사고였다는 사실을 어렵게 설득시켰다. 그렇게 다시 입원실로 내려온 신랑은 왠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하하하. 우리 와이프가 설거지 하다가 손목이 잘렸데요. 하하하. 실수였데요. 울 와이프는 살림을 해도 블록버스터급이지요? 그래서 제가 부엌에 못 들어가게 하는데 꾸역꾸역 겨들어가네요. 하하하하.”


여보야.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예요. 내가 부엌에 못 들어가면 난 집에서 뭘 하란 말이에요.

뭐… 그래도 여보야 기분이 풀린 거 같으니 그걸로 된 거죠. 그나저나 책은 다른 걸로 빌려줘요. 스릴러 같은 걸로…


나는 다음 날 오전에 손목 봉합 수술을 받았다.

마취약 때문인지 수술을 받고 나서는 내리 잠만 잤다. 그렇게 웬종일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어르신들은 두 분 다 출타 중이신데, 이게 무슨 소리지? 나 지금 가위눌리는 건가? 눈을 슬며시 떠보니 누군가가 머리를 산발을 하고 입원실 냉장고를 뒤지고 있었다!!


‘허… 도둑이다!! 아니, 미친 사람인가? 어쨌든… 나 어떻게 해야하지?’


잔뜩 긴장을 하고 노려보고 있는데, 그 산발이 내쪽을 쳐다봤다?!? 와ㅆ 깜짝이야! 내 친구였다.

야… 너 여기서 뭐하니?


“친구야, 미리 말하지만 거기 있는 음식들은 내꺼 아니야. 훔쳐가면 안 돼. 그리고 외출할 땐 머리 좀 빗어.”

“국주야, 내가 널 많이 걱정했는데 말하는 뽄새를 보니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 그래서 왜 온 건데?”

“김국주, 너… 손목 그었다며.”


와, 미친… 소문이 벌써 그렇게 난 거야? 그리고 너는 그걸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니?


“아니야.”

“아니야? 그럼 뭔데? 그 손목은?”


오우, 내가 아까 신랑을 한 시간을 넘게 설득했는데 그 짓을 또 하라고?


“아…. 설명하기 귀찮아. 너 그냥 집에 가.”

“김국주! 이 언니가 아이스크림 사 왔어.”

와우, 베스킨라빈스 패밀리 사이즈다.


“위로해줘서 고맙다. 친구야! 입원실에 온 걸 환영한다!! 오늘 자고 가렴!! 내 옆 침대 남는단다.”

“뭐래, 이 또라이가. 하… 이런 인간이 뭔 손목을 그어.”


지금 내 눈앞에 아이스크림 패밀리 사이즈가 있는데 그 뭣이 중할까. 그렇게 나는 입원한 2박 3일간 수많은 사람들의 위로와 사랑을 받았다. 아이스크림, 피자, 치킨, 족발, 보쌈, 김밥… 에 환자식 두 그릇씩 꼬박꼬박. 퇴원할 때쯤 4킬로가 불어있었다.


이런,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친구들 같으니.

고맙다.



덧붙1.

in 2018 여름

실제 이 상처의 위치 때문에 스스로 손목을 그었다는 오해는 오래도록 지속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물어보지도 않는데,

“오해하지 마세요. 이거 제가 그은 거 아니에요. 그럴 생각이었다면 상처가 좀 더 안쪽이었겠죠. 여긴 너무 바깥쪽이잖아요.”

라고 일일이 설명하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요. 소문은 상처가 옅어지면서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오늘 찍은 사진, in 2021


저는 행복 지수가 높은 편입니다.

말은 안 들어처먹지만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고,

역시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만 잘생긴 내 신랑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잖아요.

이건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본 에피소드는 아래 에피소드와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book-kingkong/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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