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에 글러브 끼우기.
생각해보면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욕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
우리 중급반의 고강도 훈련의 이유는 대회와 홍보 공연이었다. 홍보 공연이란, 말 그대로 학원 홍보를 목적으로 한 공연이다. 즉 우리의 춤을 보고 늬들도 여기 이 학원을 등록해라, 뭐 그런 의미인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우리 공연이 과연 홍보 효과가 있었는지는 몹시 의문이다. 효과가 있거나 말거나 우린 신났었다. 이 무대라는 게 크건 쥐똥만하건 중독성이 있어서 끊기가 힘든 법인지라.
춤에는 체력이 필요하지만 공연에는 멘탈이 필요하다. 홍보 공연은 대체적으로 학원 앞, 지하철 역 안 (물론 허가 받고) 에서 했고, 무대를 따로 마련하지는 않았다. 소위 길거리 공연, 버스킹이라는 것들인데, 그냥 맨발로 길바닥에서 춤을 추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게 상상보다 꽤 많은 멘탈을 필요로 한다. 어느 공연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이 길거리 공연은 일반 공연에 비해서도 더 힘들다. 일단 길거리 공연은 공연자와 관객의 공간이 분리되어있지 않다. 즉 무대의 경계선이란 게 없다. 시선의 방향도 다르다. 일반 공연은 관객의 시선이 내 시선보다 아래에 위치하지만 길거리 공연은 그 시선이 같은 위치에 있다. 아니 내 키를 생각하면 오히려 나보다 위에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관객이 나와 정면으로 눈을 맞추고 얼마든지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것이 길거리 공연이다. 덕분에 함께 춤을 춰주시는 고마운 관객분들도 간혹 계시다. 물론 내가 추는 춤이랑은 전혀 다른 춤이지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관객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 무대는 관객분들이 공연을 관람할 목적으로 그 장소를 찾아오신다. 하지만 길거리 공연의 관객들은 관람을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그저 길을 지나가는 행인들이다. 그분들 입장에서도 우리는 그분들의 일상 속에 무허가로 침투하여 함부로 시야를 차지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한마디로 그분들에게 우리는 불청객인 셈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흘끗 보면서 지나간다. 못 본 척하려고 애쓰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 소수의 분들이 가던 길을 멈추시고 관람을 하시는데, 물론 박수도 쳐주시고 고운 시선을 주시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그보다 걱정을 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았다. 내가 가장 많이 들은 걱정은 왜 살도 안 빼고 공공장소에서 저런 짓을 하느냐는 내 뱃살 걱정이었다. 그분들은 저것도 이미 많이 뺀 상태라는 사실을 모르셨다. 그래서 가끔 공연 중 이런 멘트를 넣었다.
“이것도 많이 뺀 겁니다. 여러분.”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많이 들은 걱정이 왜 연습도 안 하고 공공장소에서 저런 짓을 하느냐는 내 춤 걱정이었다. 이건 나도 그분들께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생략한다. 19금으로 넘어가니까.
길거리 공연은 관객과 공연자의 거리가 상당히 가깝다. 하여 우리는 그분들이 하는 걱정을 여과 없이 모두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을 들었다고 속상해하거나 화낼 필요는 없다. 수많은 버스킹 공연을 하면서 자연스레 습득한 팁 하나. 이때 민망하다는 이유로 걱정해주시는 분의 시선을 피하면 안 된다. 그러면 그분의 걱정은 점점 더 깊어진다. 오히려 그분의 눈을 지그시 응시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걱정해줄 필요는 없어요. 너나 잘 하세요.’ 라는 다정한 시선을 마주 보내며 춤을 추면 된다. 내가 장담하건대 이 순간 본인이 방금 욕한 댄서의 눈을 오래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걱정 많으신 그분은 3초 이내로 시선을 피하신다. 그리고 더 이상 그 걱정을 육성으로 내뱉지는 않는다. 글쎄, 마음 속으로는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건 내 귀에 안 들리니 내 알바 아니고. 물론 그렇게 의연하게 대처하려면 다소 강한 멘탈이 필요하다. 내 면전에서 내 욕을 하는 사람을 향해 웃으며 춤 추기란 쉬운 일은 아니니. 그래도 괜찮다. 자꾸 하다 보면 멘탈에 굳은살이 생기고 세월이 쌓이면서 그 굳은살도 두꺼워진다. 다시 말해 멘탈에 천연 글러브가 끼워진다. 웬만한 일로는 절대 깨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회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말 그대로 벨린이들의 누가누가 잘하나 대잔치이다. 당시에는 벨리댄스가 뜨는 운동이었다. 그래서 지금보다 하고자 하는 사람도 많았고 벨린이들도 많았다. 하여 대회 참가 인원이 어마어마했다. 대회가 열리면 정오부터 시작해서 저녁 9시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우리 차례가 저녁 7시라고 해도 우린 정오부터 가있어야 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하염없이 기다렸다가 지쳐서 영혼이 바스스 부서질 때쯤 비로소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탈진 직전에도 춤을 출 수 있는 체력과 대회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 있는 자제력이다. 대회 때는 아름다운 선생님조차도 관대하셨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을 대하는 마음이랄까. 우리는 그런 대회를 참으로 많이도 나갔다. 처음에는 참여하는 데만 의미를 두었다. 초보 밸린이들에게 상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여느 때와 비슷하게 대여섯 시간의 대기를 탔고, 또 늘 하던 영혼 바스스 대회를 치러냈다. 그리고 이 날도 역시 시종일관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었다. 특히 대회를 치르고 나면 집에 가고 싶은 염원이 더욱 깊어졌다. 슬슬 소심한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춤도 다 췄겠다 어차피 상도 못 탈 거 그냥 집에 가면 안 되나. 하지만 아름다운 선생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안돼요. 여러분은 언젠가는 상을 탈 겁니다. 상 탈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선생님, 우리를 믿어주시는 건 몹시 감사한데요. 그
언젠가가 오늘은 아닐 것 같으니 그냥 집에...
“장려상! 0000 팀! 축하합니다.”
우어어어억! 사회자의 입에서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를 통해 우리 팀명이 호명된 순간 우리는 하던 말을 멈추고, 먹던 과자를 집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지를 펄럭거리며 포효를 했다. 포효 소리만 들으면 우리가 그날의 대상이었다. 부끄러움은 선생님의 몫이었다. 우린 초보 벨린이들이었으니까.
그 뒤로도 우리는 여러 번의 장려상, 몇 번의 우수상, 두어 번의 최우수상 그리고 한 번의 대상을 받았다.
무려 대상을 받은 날, 우리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하였으나 첫상을 받은 날만큼 포효를 하지는 않았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초보가 아니었다.
장려상에 포효를 하는 다른 벨린이팀을 의젓하게 바라보며 체통을 지킬 줄 아는 진정한 중급반이었다.
덧붙1.
가끔 사랑스러운 걱정꾼들 오십니다.
바로 아이들이지요. 아이들은 언제나 우리의 맨발을 걱정해줍니다.
“언니들 발 안 아파요?”
이 말을 들을때마다 춤이고 나발이고 다 멈추고 가서 끌어안아주고 싶습니다.
너희들의 마음이 넘나도 예쁘고, 무엇보다 아줌마를 언니라고 불러줘서 고마워.
덧붙2.
요즘은 제 멘트에 더이상 뱃살 이야기는 넣지 않습니다. 이제 날씬해졌냐고요? 아니요. 날마다 최고치를 갱신합니다. 다만 제가 뱃살에 신경을 껐습니다.
이젠 나이 이야기를 합니다.
허리를 꺾을 때마다 허리에서 좋지 못한 소리가 나고, 제 표정이 어두워짐을 막을 길이 없더군요.
그래서 “제가 나이가 마흔이 훌쩍 넘어서” 라는 말로 미리 선수를 칩니다.
관객님들은 이해하실 겁니다. 마흔이 넘으면 뼈를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사실을....
덧붙3.
이번 편을 쓰려고 온 집안을 뒤져서 찾아냈습니다.
다 잃어버리고 이거 4장 남았네요.
요즘 글을 쓰면서 새삼 느낍니다.
세상에 아주 쓸데없는 짓은 없다는 것을.
이 상장들을 이런 용도로 쓰게 될줄이야.
다음 화는 다음 주 수요일에 올라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