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시작되었다.
페스티벌은 지옥의 서막에 불과했다.
페스티벌을 무사히 마치고 한동안은 신재희가 징징대는 것만 빼면 만사가 형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름다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 우리 중급반을 만들까 해요.”
와우,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주신다면야 나는 감사하다. 말이 중급이지 사실은 그 학원에서 가장 높은 등급이었고 또 최초였다. 나는 ‘너 혼자 하라’ 고 악악대는 신재희를 끌고 중급반으로 홀라당 넘어갔다. 페스티벌을 치러냈으니 그 정도는 해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물론 페스티벌의 다른 전우들도 함께 넘어왔다. 우리는 그렇게 중급반 1기로 결성되었다.
새로 생긴 팀에 신이 나신 아름다운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본격적으로 단련시키기 시작하셨다.
선생님의 모토는 ‘춤은 체력에서 나온다.’ 였다.
체력장 특급, 달리기 전교 2등, 언제나 계주 마지막 주자. 학교 체육대회 기본 3개 출전 (이거 어디선가 썼던 거 같은데...). 나는 살아생전 단 한 번도 나의 체력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빼고.
아리따운 선생님의 입에서는 아름다운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회원님들, 체력은 남겨두는 거 아니에요. 여기서 다 쓰고 가세요.”
선생님, 그럼 일상생활은 어떻게 합니까.
“휴식은 죽어서 취하세요.”
아니, 말이 너무 심...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제 종교를 가져야 하는 시점인가.
“네, 이거 좀 한다고 안 죽어요. 회원님.”
아까는 죽어서 쉬라면서요.
“회원님들, 아프시죠? 근육통이에요. 근육이 미세하게 찢어지면서 생기는 통증이죠. 그 찢어진 근육이 회복을 하면서 근력이 생기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근육을 찢어야 한다고요.”
어우, 무슨 그런 끔찍한 말씀을....
그럼 찢어진 마음은 어떻게 회복합니까.
“김국주 회원님, 그렇게 해서 근육이 찢어지겠어요? 그 따위로 할 거면 점프 스쿼트로 하세요. 신재희 회원님, 상체가 왜 안 올라옵니까? 여기가 안방입니까? 바닥에서 브래지어 선 떼세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복근을 만들어야 한다며 윗몸일으키기를 60개를 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 선생님의 카운트 방식은 다소 신선하다. 카운트를 처음부터 하지 않는다. 사람이 힘들어 죽기 직전 상태가 되면 그때부터 1, 2, 3,.... 지옥의 카운트가 들어간다. 왜냐하면 힘들어야 그때부터 운동이 되니까. 안 힘들면 진정한 운동이 아니니까. 그렇게 점점 카운트를 늘린다. 그러면 종국에는 인간이 몹시 강인해져서 더 이상 카운트를 늘리지 못하는 상태가 온다. 그때부턴 중량을 늘린다. 어깨 위로 바벨이 올라가는 것이다. 바벨의 중량은 천차만별이며 선생님의 입맛대로 기분대로 고를 수가 있다. 이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사람이 힘들면 입에서 곡소리가 나온다. 허윽, 끅끅, 흐롸압! 옹야차! 쁘리얍! 이런 소리들인데, 그런데 이런 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아직 힘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죽기 직전 상태가 되면 웃음이 나온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뇌가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신체에 마약을 자체 투입해주는 고마운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 ‘깔깔깔’ 이런 미친 웃음이 아니라, ‘흐흐흐흐’ 같은 입에서 흐느끼듯 새어나오는 웃음이 난다. 밤에 들으면 모골이 송연해질 듯한 그런 소리이다. 언뜻 들으면 우는 것 같지만 절대 우는 건 아니다. 내 근육들은 비명을 질렀고 내 뇌는 아드레날린을 분비했으며 나는 웃었다.
“흐흐흐흐흐흐흐흐흐흑”
“선생님, 김국주가 미쳐가는데요?”
몹시 놀라서 제보하는 신재희의 말에 아름다운 선생님께서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요.”
나는 살 방법을 모색했다.
너무 힘들 땐 자아를 분리한다. 선생님이 인격을 분리하듯 그렇게 자아를 분리하면 되는 것이다. 일단 자아는 ‘운동하는 나’와 ‘바라보는 나’ 로 분리한다. ‘운동하는 나’는 열심히 운동을 하면 되는 것이고 진짜 나의 자아는 ‘바라보는 나’ 안에 숨어서 ‘운동하는 나’ 를 격려해주면 된다. 그걸 어떻게 하냐고? 눈을 감고 진심으로 바라면 못 할 것이 없다. 나를 분리하여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이런 걸 자아 성찰이라고 한다.
그렇다. 그냥 미친 거다.
내가 미쳐감과 동시에 신재희도 미쳐갔다. 그런데 신재희의 정신 분열은 사뭇 결이 달랐다. 신재희는 선생님께 반항을 하는 길을 택했다.
“선생님! 우리도 사람인데!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네. 신재희 회원님. 처음부터 다시.”
그 뒤로 신재희는 물론 그 누구도 선생님께 게기지 못 했다. 재희야, nice try but sorry.
나도 안다. 우리는 당당한 수강생이며, 우리가 돈을 내는 입장이고 우리가 갑이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저건 별개다. 학원을 박차고 나오는 건 가능해도 반항은 불가능하다. 강자 앞에선 갑을 관계가 무의미해진다.
반항의 의지란 한번 꺾이면 재기가 불가하다. 이래서 초반에 잡아야 한다고들 하나보다. 우리는 체력과 근육을 사육함과 동시에 복종심도 함께 길렀다. 이때 정말 살아생전 한 번도 보지 못한 복근도 보았다. 이렇게 하면 복근이 생기는구나. 이렇게 해야 생기는구나. 나는 황천길 입구에서 내 복근을 보았다.
저승사자도 엎어치기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과 함께.
우리는 이때 20대였다. 20대의 불금은 늘 뜨거웠고, 내면의 통제 기능 따위는 없었다. 사실 이건 40대인 지금도 없다. 그리고 지옥의 극기 중급반은 토요일이었다.
어느 토요일, 언젠가는 터질 문제가 그날 터졌다.
우리는 전날 밤부터 그 당일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여기서 우리란 신재희랑 나다. 신재희는 눈에서 술이 새어 나올 것 같았고, 나는 눈에서 피가 나올 것 같은 상태였다. 우리의 오장육부는 알코올에 절여져 있어서 정상 기능을 하지 못 했고, 호흡을 할 때마다 날숨에서는 알콜이 뿜어져 나왔다. 이 알코올 군단은 핏줄을 타고 온 몸에 퍼져 뇌와 달팽이관까지 장악했다. 우리가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온몸의 알코올이 전율했다. 다시 말해 토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럼에도 지옥의 극기 중급반을 결석한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달팽이관이 기능을 멈추어 두 발로 평형 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던 탓에 네 발로 기어서 학원을 갔다.
그리고 그 날은 턴 연습을 하는 날이었다. 턴이 무엇인고 하면 한 발은 땅에 박고 다른 발로 미친 듯이 도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 육체를 뱅글뱅글 팽이처럼 돌리는 것이다. 그 뒷 이야기는 위생상 생략하겠다. 우린 결국 그날 나란히 링거를 맞았고, 병원에서는 몹시 위급한 환자들이 도착했다며 부축까지 해서 옮겨졌다.
그 뒤로 우리는 불금을 포기하고 불토를 즐겼다.
안 즐길 수는 없으니까.
그림 작가님.
거 너무 미화한 거 아닙니까.
김국주를 저렇게 샤방샤방 효과를 넣어주시면
감사합니다.
가끔 이런 요청을 받습니다.
“그림 원본 내놓으십시오.”
네, 안 될 거 있겠습니까.
어차피 작가로 성공하면(?) 까여질 얼굴인데...
이 근거없는 자신감은 근력에서 나옵니다.
덧붙1.
40대인 지금도 내 어깨 위엔 바벨이 올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체력은 그때와는 다르네요.
60대에도 바벨을 메고 싶습니다.
8화는 다음 주 수요일에 올라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