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로 동료를 샀다.
이번 편은 주인공 김국주의 룸메이트 신재희의 시선에서 쓰였습니다.
우리 언니가 미쳤다.
여기서 우리 언니란 나랑 같이 사는 룸메이트이자 나의 사촌 언니 김국주다. 최근에 미친 건 아니고 원래 좀 이상하다. 근데 요 근래 더 이상해졌다.
우리 언니는 가만히 있으면 죽는 병에 걸렸다. 1년 전에는 수영을 배우겠다고 매일매일 새벽 댓바람부터 싸돌아다녔다. 왜 수영을 배우려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쿠아리움 수족관을 닦는 일을 하고 싶다나 뭐라나. 수족관은 왜 닦고 싶냐고 물었더니 펭귄 조련사를 하고 싶단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는 법이라며. 나는 울 언니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반년이 지나자 이 언니가 새벽잠 부족으로 우울증에 걸렸다는 헛소리를 하더니 수영을 때려쳤다. 전혀 우울해하는 거 같진 않았지만 그렇다니 그냥 내버려 뒀다. 그러고 일주일 후, 어디서 하얀 도복을 구해 입고 설치길래 그건 어디서 났냐 물었더니 태권도 학원을 등록했댄다. 아니, 태권도 학원에서는 저런 인간도 받아주나.
어느 날 이 언니가 남자 친구랑 데이트를 하고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서 돌아왔다.
왜 그런고 물었더니 뮤지컬을 봤는데 거기서 덤블링을 하는 배우들이 멋있었다나.
그래, 덤블링이 멋있었구나. 그럴 수 있어. 라고 넘겼다. 그런데 그 날 저녁에 이 인간이 등 근육이 다 찢어져서 온 것이다. 뭔 짓을 하면 등근육이 찢어지나. 도대체 뭔 일이 있었던 것이냐. 하고 물었더니 태권도장에서 사부님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몰래 덤블링을 시전 하다가 등으로 착지했덴다.
으이그 인간아. 그렇게 언니의 태권도는 끝이 났다.
김국주는 한동안 정형외과를 다니면서 전기 치료라는 것을 받았다. 이제 존칭은 빼겠다. 그런데 이 인간은 그것마저도 즐거웠나 보다. 하루는 나한테 와서 한다는 소리가.
“야, 재야! 나 오늘 진짜 웃긴 일 있었어. 전기 치료를 받을라고 누워있는데 이게 너무 약한 거야. 팔이 막 팍팍 움직여야 하는데 안 움직이잖아. 그래서 강도 좀 높일라고 스위치를 올렸는데 이게 아무리 올려도 안 올라가데? 그래서 과감하게 팍 올렸다? 그랬더니 옆에서 우어어억 소리가 들리더라고. 나 알고 보니까 옆사람 꺼 올린 거 있지?. 깔깔깔.”
미친 게 분명했다.
“언니야. 너 치료는 제대로 받고 있냐?”
“그럼!! 당연하지! 나 다 나았어!”
김국주가 팔을 붕붕 휘둘러보였다.
그리고 한 달 뒤. 이 인간이 또 일을 벌였다. 이번엔 벨리댄스라나 뭐라나. 남자 친구한테 보여주려고 시작했다고 한다. 정말 가지가지한다.
벨리댄스를 하는 동안은 화요일, 목요일마다 기가 죽어서 왔다. 산 낙지가 어쩌고 중얼중얼 헛소리를 하는 것 같았지만 이번에도 그러다 말겠지 싶어서 내버려 뒀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나자 이 인간이 창문을 바라보며 허우적 대기 시작했다.
“언니야! 미쳤어? 밖에서 보면 다 보여! 뭐하는 짓이야! 쪽팔리게!”
“응! 나 연습해야 하는데 전신 거울이 없잖아.”
“도대체 뭘 연습하는데?”
“나 페스티벌 나가기로 했어.”
아, 그 페스티벌은 테스트도 안 하나? 저런 사람도 나가도 되는 거야? 할 말은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간만에 진지한 김국주가 기특하기도 했고.
그렇게 두어 달을 허우적 대던 언니가 나에게 수줍은 듯 종이 쪼가리를 건넸다. 펼쳐보니 거기엔 시간과 장소 그리고 목적이 쓰여있었다. 바로 페스티벌.
나.... 밤이면 밤마다 그 짓을 봤는데... 거의 두 달 동안.... 그걸 또 봐야 해?
그리고 사건 당일, 나는 우황청심환을 샀다. 결코 언니를 위해 산 것이 아니다. 언니와 함께 무대에 오를 전우들을 위해 샀다. 김국주가 제발 오늘만큼은 사고를 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샀다.
대기실에 들어가서 언니를 찾았다. 전원이 가부키 화장을 하고 있어서 얼굴로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빨간 옷, 빨간 옷,... 아! 저깄다! 언니에게 청심환 두 알을 손에 쥐어주고 얼른 도망 나왔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언니의 공연은 약 3분 남짓이었다. 언니는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혼자 다른 동작을 하지도 않았고, 넘어지지도 않았다.
저 3분을 위해 그 난리를 피웠던 거였구나. 괜스레 눈물이 났다.
그 날 이후 언니가 좀 더 이상해졌다. 왠지 거만해진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더 재수 없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가 선전포고를 했다.
“재야, 너도 같이 밸리 하자.”
와우,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일까. 그게 무엇이건 너랑 같이 하는 건 싫다.
“갑자기? 왜?”
“나 혼자 하기 심심해졌어.”
그럴 리가. 니가 심심할 리가.
“아, 싫어.”
“재야, 봐봐. 발끝은 십일자로 하고, 이게 발끝이 벌어지면 무릎도 벌어지니까. 그리고 무릎 살짝 구부리고. 많이는 말고. 골반 움직여질 정도로만.”
김국주가 갑자기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기 시작했다.
“재야, 멀뚱히 보고만 있지 말고 따라 해 봐. 엉덩이 넣고 어깨 내리고 턱 넣고.”
뭘 그렇게 넣으라는게 많아. 그러면서 나는 또 그걸 따라했다.
“아니!! 엉덩이 넣으라고!!!”
이 인간이 이제 인신공격까지 한다. 튀어나온 엉덩이를 어찌 넣으란 말인가. 나는 태생이 오리궁둥이다.
“아, 날 때부터 튀어나온 엉덩이를 이제 와서 어떻게 넣어!!!??!!”
“....... 그러게. 그러네... 그건 안 들어가겠다야.”
와, 저거 언니만 아니었어도. 그런데 우리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 당시에는 김국주도 초보였다. 김국주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들은 것뿐이었고, 나 역시 저 말의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서 엉덩이를 넣으라는 말은 절대로 튀어나온 엉덩이살을 정리하라는 뜻이 아니다. 골반뼈를 안으로 말아 넣으라는 말이다. 골반뼈를 제대로 말아 넣기만 하면 대둔근과 중둔근에 힘이 빡 들어가서 똥침을 해도 손가락이 안 들어... 아니, 여기까지만 하겠다. 나는 김국주처럼 이미지까지 말아먹을 생각은 아니니. 어쨌든 저 때는 김국주도 초보였다.
김국주는 내 엉덩이를 빤히 쳐다보더니 작전을 변경했다.
“내가 삼겹살 쏜다.”
“와, 이 언니.... 진짜 너무하네. 내가 그런 걸로 움직이는 사람으로 보여? 절대 안 해!”
“소고기 쏜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이유 없이 소고기를 사는 사람은 조심하라고. 그 사람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언제부터 하면 되는데?”
다음날 저녁 나는 결국 언니를 따라 벨리댄스 학원을 갔다. 딱히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소고기도 먹었고, 언니에게 조언도 충분히 들었다. 나는 주도면밀하고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 나씨티 오케이, 추리닝 바지 오케이, 힙스카프 오케이, 체력 오케이. 역시 난 완벽해. 훗.
듣던 대로 선생님은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홀로 들어갔다. 준비 운동을 하고 본격적인 동작이 시작됐다. 나는 다른 초보랑은 달랐다. 언니가 달빛 속에서 허우적 대는걸 두 달이나 보지 않았는가. 절대 당황하지 않..... 응?
젠장. 겨털......
나는 그대로 홀을 뛰쳐나왔고, 약 40분 뒤 문자 폭탄을 받았다.
“회원님, 많이 힘드셨어요? 제가 천천히 가르쳐드릴게요. 돌아오세요.”
아름다운 선생님의 문자.
“야! 먹튀 하냐?”
김국주의 문자.
“신재희 회원님, 우리 함께 해요.”
모르는 사람의 문자.
“신재희 회원님, 저도 못 해요. 같이 배워봐요.”
또 모르는 사람의 문자.
그리고 모르는 사람의 문자 몇 개 더.
와, 김국주 이 인간.....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나는 일생일대의 선택의 기로에 섰다.
겨털이냐, 바보냐.
“네, 선생님. 제가 너무 놀라서 그만... 다음 시간부터는 열심히 할게요.”
정리가 안 된 겨털때문에 쪽팔려서 뛰쳐나간 것이 아니라, 충격적인 수업 장면을 처음 목격하고 공포에 질려 도망갔다는.... 컨셉을 선택했다.
따로 설명하기 귀찮기도 했고...
그리고 나는 선생님의 집중 관리 대상이 되었다.
젠장, 그냥 겨털 고백 할껄....
그렇게 밸리댄스를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신재희를 꼬드겼다. - 김국주)
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그림작가 호출하겠습니다.
7화는 다음 주 수요일에 올라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