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 솔직, 병맛으로 무장한

2기 전우들이 온다. (90년생이 온다 패러디)

by 김국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을 때쯤 2기가 들어왔다. 그때 이미 1기 전우들은 거의 전멸 상태였다. 하여 새로운 2기 전우들의 입성 소식에 우리 1기들은 적잖이 술렁였다.

너희들도 우리처럼 중급반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발끝부터 들이밀었으리라. 훗, 세상 물정 모르는 밸리 신입들 같으니. 우리는 텃세라는 것을 부려볼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다. 그들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2기, 그들은 세명이었다. 작고 귀엽고 한없이 순수해 보이는 친구 한 명, 크고 단단하고 한없이 강해 보이는 친구 한 명, 까맣고 이국적이고 한없이 어려워 보이는 친구 한 명. 그리고 그들은 아무리 봐도 밸리 물정을 모르는 신입의 포스는 아니었다. 그들은 전문가 복장을 입고 전문가 포스를 풀풀 풍기며 홀에 앉아있었다. 우리는 문득 겸손해졌다. 그래, 지금 때가 어느 땐데 텃새야. 그냥 저들과 친하게 지내자.


작고 귀엽고 한없이 순수해 보이는 친구는 나이 서른에 호프집에서 민증 검사를 받을 정도로 동안이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이 친구 때문에 민증 검사에 걸리니 상당히 성가셨다. 하루는 나도 모르게 이 친구 멱살을 잡고 잘잘 흔들었다.

“달희야! 너도 이제 서른이다. 액면 좀 맞추자.”

“으흥흥, 언니. 내가 키가 작아서 그래.”


뭐? 키는 나도 작... 그래, 그렇구나.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무슨 말을 하던 으흥흥과 겔겔겔로 응수를 하니 나도 더는 멱살을 잡을 명분이 없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홀로 민증 검사를 받던 이 친구는 홀로 기혼이었다. hoxy 결혼을 하면 젊어지는 것인가. 그땐 그 친구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참으로 정신 나간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친구의 얼굴은 그냥 원래 그런 것이었다. 심지어 그 친구는 나이가 마흔인 지금도 그때 그 상태다.


까맣고 이국적인 친구는 스페인에서 날아온 친구였다. 외국인이라서 소통의 창구가 막힐까 걱정했는데 한국어를 나보다도 잘했다. 아니 적어도 신재희보다는 잘했다. 발음이 유창했음은 물론이고 음담패설과 욕까지 완전무결하게 구사했다. 허나 이 친구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돌려 말하는 스킬이었다. 이 친구는 지나치게 솔직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인텔리전트한 셀카 어플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면 포토샵 막노동을 해야 했다. 하루는 아름다운 선생님께서 포토샵으로 본인 사진의 허리살을 깎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친구가 말했다.


“선생님, 그냥 살을 빼요.”


이런 미친... 순간 주위의 공기가 멈췄고 우리는 숨을 멈췄다. 지금 숨 쉬면 x된다. 다행히 천운이 작동하여 선생님의 제2의 인격은 깨지 않으셨다. 하지만 우리는 그날 저녁 그 투명하고 진실된 친구를 호출했다.


“써니야, 이 진솔한 친구야. 제발 니 마음에 있는 말을 그렇게 있는 그대로 쏟아내지 마. 뇌에서 한번 거르란 말이야. 니 말 한마디 한마디에 우리 모가지가 간당간당하다고!”

“으흥, 언니, 내가 또 뭐 실수했어요?”


뭐? .... 그래, 그렇구나. 너는 니가 한 짓을 모르는구나.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선생님이 설마 연좌제 적용해서 우리를 싹 다 죽이시기야 하겠어. 죽이려면 너만 죽이시겠지. 나도 이젠 모르겠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질문하셨다.


“여러분, 운동의 기본은 근력일까요? 유산소일까요?”


글쎄요. 뭘까요. 둘 다 중요하다는 것이 정답일 것 같지만 일단 진중하게 고심하는 척을 했다.

그때 써니가 해맑게 대답해버렸다.


“선생님은 그냥 술을 끊으시면 될 것 같아요.”


이런 ㅆ. 고심하는 척 하기 전에 저 입을 먼저 막았어야했는데. 야! 너 니 입이라고 니 맘대로 내뱉지 말라고했지? 할 거면 내 옆에서 좀 떨어져서 하라고! 저기...... 그래, 신재희 옆에 가서 해! 왜 나까지 저 전조등 같은 눈빛을 받아야 하는데! 한참 써니를 향해 눈으로 욕을 발사하고 있는데 달희가 유쾌발랄하게 말했다.


“으흥흥, 선생님, 문화적 차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써니는 조금 배려해주세요.”


으흥흥, 이것들아. 우리도 좀 배려해주지 않으련?


마지막으로 크고 강한 친구는 알고 보니 나와 같은 회사를 다니는 언니였다. 같은 회사라고는 해도 부서도 다르고 층도 달랐기에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다. 그런데 아무리 부서가 달라도 저런 포스의 언니를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을까.


나는 간만에 야근을 한 날 언니한테 톡을 날렸다.


“선화 언니, 퇴근했어요?”

“아니, 나 야근. 왜?”

“커피 한잔 할래요? 내가 뽑아갈게요.”

“콜”


나는 커피 두 잔을 사서 그 언니 부서가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언니가 있는 사무실의 문을 열자마자 그 부서 전체가 나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오~! 우리 밸리댄서님 오셨어요?”


나는 눈썹을 치켜뜨면서 선화 언니를 쳐다봤다.


“아, 미안. 너 온다고 해서 내가 얘기했어.”

“뭘요?”

“너랑 나랑 같이 춤추는 거.”


내가 언제 너랑 같이 춤췄는데요?


“김국주 대리, 우리도 벨리댄스 한번 보여줘.”


과장님, 미치셨습니까? 내가 아무리 똘끼가 충만하기로서니 왜 사무실에서 춤을 춥니까.


“과장님, 미치셨어요?”


아차차,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어버렸다. 그랬더니 우리의 갓선화가 말씀하셨다.


“어우, 국주야, 길바닥에서도 추는데 사무실에서 못 출게 뭐 있어? 오케이, 그럼 내가 할게. 여긴 바닥도 괜찮아.”


뭐? 바닥? 지금 바닥이 중요해?

그녀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옷보따리를 주섬주섬 챙겨서 화장실로 가버렸다. 야! 니가 그렇게 가버리면 나는 어떡해. 저 미친 과장이랑 단둘이 있어야 하잖아! 아니, 그보다 저 밸리 옷보따리가 왜 사무실에 있는 건데?

대략 체감으로 18년같은 시간이 흐른 후, 밸리 공연 의상을 완벽하게 갖춘 선화 언니가 깃털이 달린 부채를 흔들며 나타났다.

와우, 나보다 더 미친 사람은 흔치 않은데 너는 진짜였구나. 내가 진짜를 몰라보고 까불었구나. 그녀는 핸드폰으로 밸리 음악을 플레이시키고는 그 음악에 맞춰서...... 벨리댄스를 췄다!

아니, 벨리댄스를 가장한 막춤을 췄다. 마찬가지로 정신 나간 관객님은 열광의 박수를 쳤고 나는 눈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아니야, 저거 벨리댄스 아니야. 맘 같아선 내가 다시 춰주고 싶었지만 난 내 목에 개작두가 들어와도 저 짓을 할 용기가 안 났다. 그리고 그 날 결심했다.


2기한테 게기지 말자. 내 상대가 아니니라.





덧붙1.

임홍택 작가님의 <90년생이 온다> 책을 읽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저는 어느덧 20대와는 동떨어진 나이가 되었지만, 이제 메인 고객님이 되시는 90년대생들을 모르고 지나갈 수는 없겠지요.


90년생들은 간단, 솔직, 병맛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제 글 역시 감동이고 나발이고 오로지 재미만을 추구하지만, 그럼에도 병맛 게이지가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화는 좀 더 똘끼충만한 글을 써보았습니다. 앞으로도 마지막 이성의 고삐를 꽉 쥔 채, 기승전병에 충실한 작품 활동을 아슬아슬하게 이어가겠습니다.

법은 지켜야하니까요. 법블레스유.

저의 유일한 목표는 독자님들의 기쁨입니다.


아, 어떤 구독자분이 물으시더라고요. 1주에 3편이나 올리는데 그 아이디어는 다 어디서 나오느냐고.

아이디어라니요? 이건 전부 실화입니다만.


하지만 이번 편의 등장인물은 창작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덧붙2 - 용인시 00 도서관 초청 공연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 헨리 소로우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엎기를 원했다. - 헨리 소로우

네, 도서관입니다. 심지어 어린이 도서관이지요.

실컷 다른 사람을 미쳤다고 해놓고 사진은 왜 니네가 미친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올린거냐. 도서관에서도 저 짓을 하는데 왜 사무실에서는 못 했냐

의아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네, 궁금하실 수 있지요.


우리는 용인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용인버스킨 아티스트로서, 저 공연은 정식 초청을 받아서 했습니다.

그렇다면 또 의아하실 수 있습니다.

용인버스킨은 우리가 저런(?) 공연을 하는 팀인지 모르고 초청한 것인가.

그럴 리가요. 우리 이래 봬도 용인버스킨 짬밥이 꽤 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승전충성.


사진 아래의 글귀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에서 가져왔습니다. 고전 명작의 글귀를 저따위 사진에 붙여놓아서 죄송합니다.


춤추는 엄마 시리즈는 매주 수요일에 올라옵니다.

감사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경이로운 멘탈